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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Feb 17. 2022

7년 전 끄적인 연애 글, 결혼하고 읽어보니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의 기준은 다를까

브런치를 시작한 후 이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는 일이 많아졌다. 이전에 썼던 글 중 다시 가공해 올릴만한 글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내 경우 대학시절 기자가 돼보겠다고 글쓰기 연습을 해왔고, 메모 강박이 조금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 연습한 글을 모두 저장해 가지고 있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는 타입이다. 물론 책을 많이 읽은 적도 있었다. 20살부터 27살 정도 시기다. 그땐 하루에 1권을 읽는 날도 많았다. (만화책 제외) 그런데 내가 쓴 글이 쌓인 20대 후반부터 독서량이 급격히 줄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기 때문이다. (-_-;) 내가 쓴 기사도 읽고 읽고 또 읽는다. 솔직하게 뭔가 더 나은 글을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재미있기 때문이다..

20대 나의 책장. 대부분 만화책이긴 하다.

남편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네 기사(글) 좀 그만 읽어!” 이기도 하다. 다른 이들은 물론 나만큼 내 글이나 기사가 재미있지 않겠지만 나는 내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놈의 자기애.


여하튼 과거의 글을 읽고 또 읽어도 브런치에 올릴 만한 글은 드물다. 보통 지금의 생각과는 너무 달라서 ‘아니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아니면 쓸 만한 문장이 아니거나, 시의성이 너무 떨어져 읽을 필요가 없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오늘은 2015년의 글까지 거슬러 올라가 버렸는데 읽으면서 웃기고 귀여운 20대 중반의 내가 쓴 연애에 관한 글을 발견했다.


이때는 결혼하기 전의 나인데 결혼을 한 지금의 내가 읽으니 아주 재밌기도 하고, 나름 지금의 생각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오랜만에 내 글에 공감이 갔다.


올릴 사진이 마땅치 않아 20대 시절 나의 모습 사진을.

대학 끝물의 연애 이분법


대학 끝물의 연애를 거칠게 나누면 두 종류다.

첫 번째 타입은 ‘아직 안 끝난’ 타입이다. 대학에 다니던 중 만난 인연을 계속 만나고 있는 부류다. 2년 이상 된 커플이 많다. 둘 다 결혼을 생각하지 않은 나이에 만났다. 학벌이나 집안 같은 조건을 따지기보다 어쩌다 만나서 연애하게 된 경우가 많다. 토익학원에서 만난 커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만난 커플, 대학 동아리 커플 등.


두 번째 타입은 아마 첫 번째 타입의 연애가 끝난 후, ‘고심해서’ 만난 타입. 신생 커플이 많다. 대학 끝물에 시작하는 연애라 신입생 때 얼렁뚱땅 시작한 연애와는 다르다. 이 전에 만난 연인과 반대 성향의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 '이 사람과는 결혼할 수도 있겠다'까지 생각한 경우도 있다. 학벌이나 조건도 따져본다. 소개팅을 한 경우가 많다.


이 글은 2015년6월10일 오후 5시8분 아이폰 내메모에 저장해놓은 글이다.

최근 내 주변 두 타입의 부류 모두가 고민을 털어놨다. 첫 번째 타입의 연애를 하고 있는 A와 B는 서로 술을 자주 마신다. 둘의 고민이 같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연인을 탐탁지 않아하신다는 거였다. 특히 최근 취직을 한 A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부모님이 ‘직장에서 너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라며 매일 잔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은연중에 A 보다 학벌이나 직장이 좋지 않은 지금의 연인을 떼놓으려는 마음이 드러난다며 속상하다고 한다.


B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취업을 못했기에 그저 취업 외의 고민을 유예하고 있을 뿐이다. 또 다른 C. 최근 C는 부모님이 좋아하심은 물론이고 생판 모르는 남들도 부러워할만한 조건의 연인과 헤어졌다. 사는 방식이 맞지 않는다나. 두 타입의 세 사람 모두 20대 초반과는 다르게, ‘결혼’을 의식할 나이가 되자 연애가 삐걱거렸다.


대학 끝물, 이십 대 중후반의 연애는 그렇게 어정쩡하다. 연애와 결혼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거나 결혼을 생각하지 않던 어릴 적 연애가 그립다. ‘내가 이렇게나 속물이었나’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 연애를 지속하기도, 그렇다고 끝내기도, 아예 시작하기도 모두 어렵다. 이럴 때 전설같이 내려오는 이야기는 장수 커플이 헤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한 첫 번째 타입의 연인들이 헤어졌다는 소식이다. ‘5년 사귀어도 별 수 없더라’, ‘걔넨 7년이었대’ 등등. 만난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야기의 임팩트는 강해진다. 대학을 오기 전 ‘독하다’의 기준이 잠을 몇 시간 잤느냐에 따라 달라졌다면, 이십 대 후반의 ‘독하다’의 기준은 결혼을 위해 무슨 짓까지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3년 뒤 결혼했네.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의 기준은 정녕 다른 것일까.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왜 이 기준이 달라져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아침 지하철에서 ‘앉았다, 못 앉았다’ 여부를 보고해도 되는 사람. 내가 오늘 겪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절대도 되는 사람. 내 주절댐이 끝나고 바통 터치하듯 영혼의 리액션해주지 않으면 서운함을 느낄 사람. 그 서운함을 표현해봐도 될 사람. 잠깐 사이 전화를 걸 사람. 맛집 포스팅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 결국 내 하루를 같이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은 같지 않을까.


나의 하루를 공유하고 싶고, 또 상대의 하루를 알고 싶은 사람이어야 연애가 가능하고 결혼은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고등학생 때 나는 하루에 잠을 두세 시간 잔다는 독한 아이들을 보며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나는 저렇게 못해’라는 결론을 내고, 그냥 잠을 실컷 잤다. 아마 결혼을 할 때도 비슷할 것 같다. 그렇게까지 독하지 않았어도, 지금까지 나름 괜찮게 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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