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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Apr 04. 2022

두 번째 만남에서 좋아진 것들

삶에서 더 좋은 것들을 만날 수 있는 태도

보통 첫인상이 많은 걸 결정한다고들 한다. 어떤 이들은 "첫인상이 안 좋은 건 끝까지 안좋아,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아"라고들 한다. 나는 저 말을 들을 때면 맞다, 틀리다를 떠나 저 말을 꺼내는 이를 두고 "단정적인 어투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강단 있다고 보여지고 싶나 보구나"라고 생각할 뿐이다. 너무 국어 지문 풀이처럼 생각하나.


왜냐면 나 역시 4월4일(오늘)의 내가 다르고, 작년의 4월 4일에 달랐고, 내년 4월 4일엔 다른 사람이 돼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1년은 당연하고 어쩌면 하루하루 다를지 모른다. 나에게 "사람은 변하지 않아"라는 말은, "어린이는 성장하지 않아"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상한 말이라는 뜻이다.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두 번째 만남에 좋아진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 인생에서 지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상들이다. 하나는 요가다.



몇 년 전 아는 언니를 따라 요가학원을 등록했다. 회사에서 집에 가는 도중 내리는 지하철역에 있는 요가학원이었다. 아마 미아역인가 미아삼거리역 앞에 있는 요가학원이었다. 프랜차이즈 요가 학원(?)이었는데 당시 요가라는 운동이 처음이어서 어떤 수업에서 뭘 배우는 지조차 몰랐다. 요가 학원에서 나뉜 인요가, 아쉬탕가 요가, 하타 요가, 빈야사 요가의 구분을 알게 된 것도 작년쯤이었다. 당시엔 어떤 요가 수업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학생들을 가르치는지 전혀 몰랐다.


나는 요가 수업의 그 어떤 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수업은 아쉬탕가였다. 처음 들어가자마자 매우 빠르게 여러 가지 활동이 연이어졌다. 내가 수업을 아예 이해를 못 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그 학원에서는 '수리야 나마스카라'의 구성 속 대부분의 용어를 하나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수리야 나마스카라 안에는 사마스티티, 우르드바 하스타사나, 우타나사나, 아르다 우타나사다, 차투랑가, 우르드바 무카스바나아사나, 아도무카스바나사나, 아르다우타나사나, 우타나사나, 우르드바 하스타사나, 사마스티티라는 동작들이 이어진다.


보통 요가 학원에 가면 다양한 회원들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사마스티티'라고 말하고 '손바닥을 앞으로 펴고 차렷 자세로 서세요' 등의 한국말 풀이를 해준다. 우르드바 하스타사나, '손을 하늘로 드세요' 라는 식이다. 솔직히 이 용어들을 풀이 없이 모두 알아듣는 건 내 기준 요가를 2~3년은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것 같다.


수리야 나마스카라A.


내가 배움이 느린 캐릭터인 것을 감안해서도 새로운 학원에서 요가를 정기적으로 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최근에도 한국말 풀이가 없으면 조금 헷갈리는 용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아르다 우타나사나'와 '우타나사나'가 계속 헷갈렸다. 상체를 접고 가슴을 펴고 앞을 보는 '아르다 우타나사나' 자세를 할 때면 '아르', '개가 아르르 거린다', '개가 아르르거리려면 앞을 봐야 한다', '앞을 본다'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나만의 연상법을 사용한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런 식으로 잘 안 외워지는 용어들을 내 마음대로 외워대서 공부를 잘 못했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아르다'라는 말의 뜻과 어원을 찾아보면서 자세를 이해하려고 했겠지.


다시 돌아오자면 몇년 전 그렇게 3개월을 '아쉬탕가'를 다녀도 내 요가는 전혀, 단 1도 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하고 그걸 왜 바보같이 3개월 동안 다녔을까 느껴진다. 당시에 나는 인터넷을 찾아 자세를 공부해볼 생각은 안 하고 대충대충 옆사람을 따라 하면서 "요가는 정말 어려운 운동이구나", "나와는 맞지 않는 운동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몇 달 전 어깨서기를 했을 때 선생님이 찍어주신 사진. 옆에는 남편.



그 후로 또 몇년이 지났다. 2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선유도로 이사 와서 남편과 함께 요가학원을 등록했다. 몇 년 전 요가를 했을 때 안 좋은 경험 때문에 꺼림칙했지만 남편과 함께 하니깐 '좀 더 나아지겠지'라며 별생각 없이 등록했다. 그런데 새로 등록한 요가학원에서는 '다운 독'이라는 한 동작에 대해 거의 10 문장을 할애해 자세를 설명하는 곳이었다. 10 문장이 뭐냐. 매번 다른 문장으로 설명하니 그걸 다 모으면 30 문장은 될 것 같다.


'개가 기지개를 펴는 것처럼 엎드려서 등을 펴세요'라는 동작 기본 설명부터 시작해서 귀와 어깨를 멀리 떨어뜨리세요, 손바닥 중앙을 꽉 누르세요, 손가락을 하나하나 펼치세요, 손가락이 하얘지도록 힘을 주세요, 허리를 꺾지 말고 등을 조이세요, 엉덩이를 더 드세요, 다리를 쫙 펴세요, 발바닥이 바닥에 닿도록 하되 닿지 않는 사람은 등을 펴는데 집중하세요 등. 대충 생각나는 티칭만 이 정도고 더 자세한 설명들이 매번 따라붙었다. 거의 모든 동작에 이런 식의 설명이 붙었다. 게다가 선생님이 내 옆에 와서 나에게 필요한 티칭을 따로 해줘서 내 수준에서 해당 동작을 최대한 느낄 수 있게 가르쳐줬다.  


선생님마다 티칭 스타일은 달랐지만 맨 처음에 다녔던 학원처럼 한국어 풀이가 없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머리로 이해를 하면서 용어를 익히니 요가는 아주 재미있어졌다. 첫 번째 만남에서는 아주 인상이 안 좋았는데, 두 번째 만남에서야 요가의 진짜 매력을 알게 된 것이다.



남편과의 소개팅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친구의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첫 만남 이후 둘 다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물론 첫 만남도 매우 재미있는 시간이었고 대부분의 대화에서 아주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음, 좋은 사람이고 나랑 잘 맞지만 막 완전 스파크가 튀는 건 아닌데?'정도의 생각이었고 남편도 비슷했던 것 같다. 당시엔 20대라서 남녀의 사랑은 스파크가 튀어야지만 이뤄진다고 생각했나 보다. 첫만남이 20대 후반이었으니 각자 어느정도 사회생활을 했기에 남을 배려하는 말투를 나름 알고 있었고, 공통된 친구의 소개이니 어느 정도 성향이 비슷한 것은 예측 가능했다.


그러나 우리가 잘맞는다고 해서 꼭 연인이 돼야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첫 번째 만남이 지나고, 남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딱히 서로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갔다.  


며칠 후 주선자 친구가 나에게 소개팅이 어땠냐고 물었고, 나는 '응, 재미있었는데 그 뒤로 딱히 연락은 안 했어'라고 대응했다. 다만 나는 '아니 그런데 그분은 내가 밤늦게 들어갔는데 잘 들어갔느냐고 물어보거나 하는 것도 없더라'라고 한마디 덧붙이긴 했다. 첫 소개팅에서 저녁 7시인가에 만나 새벽 1시가 넘어 헤어졌는데 '집에 잘 들어가셨나요'라는 문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에 안 들었어도 '잘 들어가셨나요. 오늘 만남은 즐거웠지만 인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보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물론 나도 안보냈지만..사실 어련히 알아서 들어갔겠지..)


센스 있는(?) 주선자는 나의 덧붙임 말을 아주 명료하게 '오빠, 왜 언니한테 연락 안 해?'라고 전달했다고 한다. 남편은 내가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는 건가 싶어 나에게 연락했고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됐다. 첫 만남 이후 1~2주가 흐른 뒤였다. 당시 막 서로 좋은 건 아니었지만 마침 서로 심심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뒤 다사다난한(?) 일이 있고 우리는 만난 지 1년 반 정도 지나고 결혼했다. 결혼 준비 기간이 6개월은 됐으니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을 결정한 셈이다. 꽤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렇게 두 번째 만나서 좋아진 것들이 지금 내 삶에 가장 큰 비중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됐다. 두번째 만남에서 좋아진 남자가 남편이 되었고 두번째로 만나 좋아진 요가를 함께하는 삶이 됐다.


첫 번째 만남에서 별로였거나 어정쩡했던 것들이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에서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믿는 게, 삶에서 더 많은 좋은 것들을 맞이할 수 있는 태도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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