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오롯이 혼자서

제주 여행기 #2

by 소하



그렇게 오롯이 혼자서 꽉찬 하루

IMG_5580.JPG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제주에 살았던 지인이 제주에 가면 가봐야할 몇 군데를 추천했었는데, 그 중 언젠가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이 "김영갑 갤러리"였다. 사실 김영갑 작가님을 알지도 못해서 검색을 해보았는데 왠걸. 꼭 가봐야만 하는 갤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니터를 통해 보여지는 작가님 사진을 직접 가서 보고 싶었고, 제주에서 사진을 찍다 생을 마감하신 그가 왜 그렇게 제주의 사진들을 찍으려 했는지가 궁금해졌다.

나는 늘 도시에 살았기에 1년 365일, 사시사철 큰 변화가 없는 풍경을 보고 자랐다. 기껏해야 가을에는 노랗게 변하는 은행나무와 곳곳에 익은 은행들이 바닥과 내 코를 더럽히는 일,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 매년 보는 꽃인데도 반갑고 아름답게 바라보았던 벚꽃들, 여름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매미소리와 초록초록하다못해 파아란 느낌도 살짝 나는 푸릇푸릇 잎사귀들, 그리고 겨울이면 모든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추운 겨울바람을 이겨내는 나무들의 변화들만이 내가 바라보는 풍경의 큰 변화였던 것 같다. 하지만 김영갑 작가님이 남겨놓으신 제주는 사시사철 다른 모습뿐 아니라 하루하루가 다른 풍경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하늘에 구름이 옮겨가는 풍경, 그림자가 각도를 달리하는 풍경, 바람에 따라 갈대와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풍경, 파란하늘이 어떤날은 보라색, 어떤날은 붉은색, 어떤날은 분홍색으로 변해가는 풍경, 하루하루 달라지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제주의 모습을 감탄하시며 카메라에 차곡차곡 담아두셨다.

김영갑 갤러리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는 그의 삶을 담아놓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았다. 영상을 보면서도 그가 정말 제주를 사랑했고, 제주의 오름들을 사랑했다는 것이 느껴졌었는데 그만큼 내가 모르는 제주가 궁금해졌었다. 첫 날 잠깐 만났던 나만의 시골느낌 제주도 그렇게 사랑스러웠는데 김영갑 작가님을 제주에 눌러앉힌 제주는 어떤 모습일까. 영상을 보고 천천히 걸으며 만난 김영갑 작가님의 사진은 우울하기도 했고, 상쾌하기도 했으며, 쓸쓸하기도 했지만 정말 아름다웠다. 이런 제주를 만났으니 그는 눌러앉을만 했구나. 이런 제주가 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도시빌딩 속에서 일쟁이로 살았구나 싶었다. 내가 가진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때의 그 모습의 제주를 남겨주신 작가님께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눈으로 마음으로 담은 김영갑 작가님의 제주 풍경을 간직하고 바로 세화바다로 이동. 이번 제주여행에서 701번 버스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동쪽의 왠만한 곳을 다 지나가는 이 버스는 제주 중고등학교 아이들의 등하굣길도 책임진다는 것을 정말 몰랐다. 물론 중고등학교를 졸업한지 꽤 되어서 평일 이 시간에는 아이들의 하굣길이라는 것 자체도 701번을 탔을 때 알았다. 서울에선 아이들이 이렇게 떼로 버스를 타거나 하는 일이 드물고 대체로 나의 이동경로가 아이들의 하굣길보다는 회사들이 모여있는 동네 혹은 나름 놀거리가 많은 동네들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중고등학생을 봐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제주 701번 버스에서는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제주 동쪽을 달렸다. 정말 죽은듯이 자는 아이도 있었고 게임하는 아이, 노래듣는 아이, 멍 때리는 아이 등등 어린 친구들을 보며 참으로 고생이 많다고 속으로 어깨토닥의 격려를 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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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타서 친근한 701번을 타고 세화에 내려 세화바다를 보러가서 한 한시간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바다다. 제주는 어딜가도(물론 내가 제주 중간쪽으로 거의 안다니기는 했다)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최고 매력이다. 나중에 우연히 들렸던 커피집 사장님의 이야기로는 제주 바다는 시시각각으로 색이 변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봐도 참으로 이쁘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몇 시간만 시간을 내어 세화 바다를 보고 온 것이 그렇게도 아쉬웠었다. 세화 바다는 나에게 어깨토닥, 무슨 이야기든 다 받아줄테니 털어놓아봐, 인생이 좋은 것도 오고가고 나쁜 것도 오고가는 거더라, 그래도 참 예쁘고 반짝이지 않느냐 등의 말을 걸었다. 한 곳에 앉아 한시간을 앉아 있어도 내 눈엔 질리지도, 못생겨지지도 않고 예쁘고 반짝이는 세화바다는 결국에 내 마음속에서 감사함을 꺼내게 만들었다. 팍팍하고 고된 삶 가운데 제주에서 반짝이는 세화바다를 눈 앞에서 볼 수 있음에 절로 감사함이 생겼고, 그 감사함은 제주를 다녀온 지금도 다시 제주에 가고싶어하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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