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기 #1
나는 날 때부터 도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도 쭉 도시에서만 살았다.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사가는 경우 뿐 시골에서 살아본 기억은 없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때 가장 부러웠던 친구가 여름 방학에 시골 할머니 집에 다녀왔다고 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들은 할머니 집은 화장실이 집 밖에 있어서 무서웠다는둥, 냇가에서 고둥을 잡았고 개구리를 만났었다고 자랑을 하고, 여름 내 신나게 잘 놀았다고 온 몸이 까맣게 타서 방학 전보다 건강함과 신남을 배로 충전해 돌아온 것 같았다. 나의 친할머니, 외할머니 모두 도시에 살고 계셔서 할머니 댁에 놀러간들 건강함과 신남을 배로 충전한 친구들처럼 놀 만한 동네도, 개구리도, 냇가도, 밖에 있는 화장실도 이야기로만 듣고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문인지 어디론가 여행갈 생각을 했을 때 내 머릿속에 펼쳐지는 것은 바다를 앞에 둔 조용한 동네 자그마한 카페에서 살랑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거나 멍때리고 있는 나의 모습이 하나의 프레임에 가득차 나타난다. 입사한지 벌써 6년이 지났고 일과의 권태기를 넘어서 지쳐 아무것도 못하겠다싶어 갑작스럽게 제주행 티켓을 끊고 머릿 속 프레임을 꼭 실천해보리라 다짐을 하며 제주가서 꼭 할 일 리스트를 적었다.
' 하나, 매일 바다 꼭 보기
두울, 매일 해지는 풍경 보기
세엣, 바다 앞에서 멍 때리기
네엣, 김영갑 갤러리 방문
다섯, 독립서점 방문
여섯, 카페에서 책 읽기'
2박 3일의 짧은 일정치고 이정도면 괜찮치않은가 싶었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갈 길 닿는대로 갔어야하는데 숙소를 찾아 예약하는데 며칠, 숙소 근처 혼밥하기 괜찮은 밥 집을 찾고, 김영갑 갤러리와 그 외 가보고 싶었던 몇 곳을 가려고 이리저리 검색하며 루트를 짜보니 나는 너무 욕심쟁이었다. 실컷 신나서 알아보다가 막상 제주에 가는 날은 조금 지쳤던 것 같기도 했으나 버스에서 내 집처럼 꿀잠을 취하고 독립서점을 방문하기 위한 동네에 내리니 몇 시간만에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는걸까 싶게 정말 조용한 시골 동네가 나타났다.
약간은 따갑다고 느껴질 햇빛을 받으며 낮은 담벼락을 가져 마당 안까지 훤히 보이는 집들과 돌하르방이 지키고 서있던 초등학교 정문과 집 사이사이 골목을 벗어나니 무언거 덩그러니 있던 정자까지 내가 초등학교 때 부러워하며 상상했던 시골의 풍경이 펼쳐진듯 했다. 아무도 없어도 이상하지 않았고, 누군가 나를 봐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고, 그곳에 사는 이는 사는 이대로, 여행온 이는 여행온 이대로 순간을 살아감이 너무 달라보이기도 하면서도 이질적이지 않은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찾아간 아주 작은 독립서점에서 주인장이 손글씨로 꼭꼭 눌러쓴 메모들을 통해 새로운 작가들을 소개받았다. 책 100권만 팔아보는 것이 소원인 아저씨의 책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그림책도 있었고, 언젠가 태어날 내 아이와 함께 읽고 싶은 책도 보았다. 그 작은 서점에서 서울에서 자주 사람에 오르내리던 책들이 아닌 책들을 만나는 것 또한 조금은 나만 아는 시골을 가진 느낌도 들었고 나도 이제 시골 할머니 집이 생겼다는 느낌도 들었다. 얼마나 그곳에 서서 책을 뒤적거렸는지 한참만에 책 한권과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집어들고 나오면서 천천히 마을길을 걷는데 내일도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내가 방문한 그곳도 아주 시골은 아닐 수도 있지만 시골바라기 도시 촌년은 할머니가 없는 제주를 제맘대로 자신만의 시골이라 일컫고 재방문 의지를 굳혀보았다.
시골을 왜 그렇게 가보고싶어했을까,를 생각하면 새로운 곳에 대한 동경도 있을테지만 따뜻한 느낌을 쫓았던 것 같다. 나에게 할머니는 늘 생선 살코기를 손을 다 발라서 밥 숟갈 위에 얹어주고 고기도 손으로 뜯어 내 밥그릇 위에 쌓아주던 기억이기에, 어쩌면 나는 딱딱하고 복잡하고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도시보다 조용하고 넉넉하며 할머니 같은 따뜻한 시골을 쫓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노래처럼 조용한 낮은 없고 외로운 밤은 많은 서울에서 매일을 치열하게 일하다보니 따뜻한 밥위에 얹혀지는 고기같은 넉넉하고 다정하며 고생했다 다독이는 작은 위로를 바라며 버텨왔기에 더욱이 여행은 시골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나보다. 혼자 가서 만난 제주는 누가와도 누가 오지 않아도 아름다운 하늘빛과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섬 바람 그리고 시시각각 다채로운 파란빛을 띄고 있는 바다가 같은 자리에 서서 내가 오길 기다렸다 말해주는, 도시 촌년이 바라던 시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