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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Nov 13. 2023

이곳에서는 안전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인터뷰] 글쓰기 리추얼을 하는 윤아의 이야기

11월에 진행되었던 국내 최대 규모의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참여한 리추얼 글쓰기 팀이 있다는 소식에 팀원 중 한 명을 만나고 싶어 연락을 드렸다. 독립출판을 위해 리추얼을 시작하지 않았을 사람들일텐데, 어떻게 글쓰기 리추얼을 하다가 독립출판물 발간까지 하게 되었을까. 윤아님을 만나보았다. 


Q. 윤아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저는 김윤아, 엔터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이에요. 보리님이 하고 계신 “내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쓰기" 리추얼을 2월부터 9월까지 계속 참여했어요. 리추얼을 하면서 퍼블리셔스 테이블이라는 독립출판 페어에 리추얼을 하는 메이트들과 함께 참여하기로 하고 책을 쓰기 시작해서 지난 10월에 '와글'이란 팀으로 함께 나가기도 했어요. 


Q. 글쓰기 리추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지 궁금해요. 

제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원래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글을 혼자서 쓰면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것만 남고 앞뒤 상황 설명 같은 것이 남지 않더라구요. 저 혼자 보는 일기니까 무슨 일인지 다 알기 때문에 추가적인 설명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죠. 저의 글쓰기 능력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독자가 필요하더라구요. 저는 소심한 관종이라 관심받고 싶은데 인스타는 너무 노출이 많다고 생각이 들고 안전한 독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첫 리추얼 미팅 때에도 안전한 독자가 필요해서 왔다고 이야기했어요.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 하지만 부담이 없는 것을 찾다 보니 리추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Q. 리추얼을 통해 매일 글을 쓰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먼저 글 쓰는 양이 많이 늘었어요. 예전부터 책을 쓰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두 가지 이유가 있었거든요. 하나는 무슨 주제에 대해서 써야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책을 쓰려면 50페이지 이상은 뭔가 줄줄 써야 되는데 제 삶을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서 못 썼고, 두 번째는 제 글들이 다 짧은 거에요. 인내심이 없어서 계속 쓰지 못하고 그냥 생각나는 것들을 잠깐잠깐 쓰는데 어딘가에 내보이는 글에는 그렇게 길게 쓰지 못하더라구요. 6-7월쯤 되니까 제가 한 번에 쓸 수 있는 글의 양이 늘어있는 것이 보였어요. 기승전결까지는 아니어도 글의 단락이 생겼어요.  

그리고 보리님 리추얼에서 일기도 좋지만 주말에 한 번 정도는 에세이를 쓰면 좋겠다고 리추얼 할 때마다 이야기를 해주세요. 리추얼 중간에 줌으로 에세이 쓰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시거든요. 처음 한두 달에는 에세이를 못 쓰거나 쓰다만 에세이를 인증했었어요. 나중에 더 쓸게요 이러면서 했는데, 어느 순간 일기랑 에세이랑 구분이 없어질 정도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글이 길어졌다고 좋은 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더 잘 표현하게 된 것 같아요. 또 쓰다 보니 처음에는 어디까지 쓰고 어디까지 보여주지 이런 것이 있었는데 쓰다 보니 부담이 줄어들었어요.  


Q. 최근에 독립출판 페어인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리추얼 메이트들과 ‘와글'이라는 팀으로 참여하셨다고 들었어요. 독립출판 페어에 나갈 결심을 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기존에 있던 독립출판 모임에 참가했을 때는 3월이었는데 카톡방에서 독립출판은 참여하지 않고 다른 분들의 활동을 구경했어요. 다음 독립출판 모임은 고민이 되긴 했어요. 들어가서 한다고 했다가 혹시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독립출판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 같은데 지금 안 하면 또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그냥 일단 하겠다고 결정하고 온라인, 오프라인 모임을 하면서 점점 마음을 굳혀갔어요. 뭐가 있어서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해놓으면 내가 부담스러워서라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Q. 책의 주제도 없는 상태에서 독립출판 모임을 같이 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리추얼을 하면서 독립 출판을 하겠다고 결정하고 생각을 해보니 제 일기가 일주일에 4번 중에 3번은 덕질 일기인 거예요. 패턴을 발견하고, 이거에 대해 쓰면 얇더라도 한 권을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주제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덕질에 대한 이야기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어요. 


Q. 명확한 주제나 글을 재료가 확실하지 않았어도 함께하는 사람들의 영향이 조금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엄청 크죠. 같이하니까 책임감 같은 것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저처럼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는 분들이 없었어요. 같이 준비하는 메이트 중 한 분인 지완님은 이미 책이 나왔고, 그런 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팀원으로서 나도 완성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키므네님 경우는 이미 인스타툰을 하고 계셔서 그림이 엄청 많이 있다 보니 그분들 보면서 약간 자극도 받고 어떻게 하는 건지 물어보기도 하고 이러면서 동기부여가 진짜 되었던 것 같아요.  


Q. 그럼 자연스럽게 윤아님 책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덕후는 사랑으로 자란다’라는 책인데 원래는 어느 덕후의 일기장, 감정 일기 등등 많은 후보가 있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를 좋아했었어요. 항상 누군가를 좋아하고 남자친구도 오래 사귀고 아이돌을 좋아해도 오래 좋아하고, 그래서 사랑이 저한테 키워드인 거예요. 사랑으로 인해서 제가 변화한 게 많아서 덕후가 되고 난 다음에 이 사랑으로 나는 자랐다 이런 식으로 제목을 짓게 되었어요.  

책 내용은 덕질을 하면서 저에게 일어났던 변화들, 제가 새롭게 경험한 것들 예를 들면 저는 한 번도 혼자서 어디 멀리 가거나 여행 가본 적이 없는데, 평창이나 부산에 간다든지 이번 연도에는 미국도 갔다 왔어요. 도전들을 할 수 있지만 강력한 동기가 되어준 것이 덕질이었고 좋아하는 아이돌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나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그림도 그리고, 예전에 좋아했던 아이돌은 춤을 잘 췄는데 그게 멋있다고 생각해서 나도 배워봐야겠다 해서 춤도 배우고. 덕질하면서 너무 재밌어서 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러면서 친구랑 사업처럼 무언가 해본 적도 있어요. 이런 식으로 제가 진짜 절대 안 해볼 만한 일들을 많이 해서 30살부터 5-6년간의 덕질로 인한 변화를 책에 담았어요. 

최근에 최애가 군대를 가면서 식물 하나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원래 식물을 못 키우지만 최애가 전역할 때까지 잘 키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키우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잘 살아 있어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성장한다는 것은 이렇게 돌봐주고 관심을 가져주면 되는 거구나 생각이 들어서 책 제목을 짓게 되었어요. 


Q. 책을 쓰시고 만든 기간은 얼마나 걸렸어요?

글 쓰는 것은 7월부터 시작해서 8월 말쯤에 끝났어요. 오탈자 잡고 편집 프로그램에 올리는 과정이 어려웠어요. 오히려 글을 쓰는 것은 쉽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파트는 아니었어요. 금요일이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나가는 날인데 수요일에 책을 받았어요. 마지막까지 친구들에게 오탈자 점검을 도와달라고 하고 편집 일을 하는 친구가 도와주고 해서 6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했어요. 


Q. ‘와글'이라는 팀명이 귀여워요. ‘와글'팀은 리추얼 메이트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지, 팀 소개를 간단하게 부탁드려요.
저희 팀은 ‘와글'이고, 원래는 제가 윤아니까 윤아'와 글' 이런 의미였고, 와글와글 이런 의미도 있고 영어로는 와우(wow) 글이거든요. 글쓰는 놀라움, 함께하는 즐거움 이런 것을 담으려고 와글을 선택했어요. 지완님, 두두님, 키므네님, 구르벌님, 기대님, 보리님, 솔지님, 저 이렇게 8명이에요. 보리님 빼고 모두 첫 책으로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나가게 되었어요. 주제는 다 다르지만 첫 책을 가지고 나간다는 것으로 신청했었어요.  이번에 같이 하지 않았지만 리추얼 단톡방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시는 메이트도 있고 그래요.  


Q.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같이해서 해낸 느낌이 큰 것 같아요.

저희도 자주 만나지는 못했거든요. 다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카톡이나 줌 같은 것으로 소통하고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와글이 아니었으면 이런 경험은 못해봣을거라고 진짜 모두가 진심으로 서로에게 감사하다고 했어요. 


Q. 처음 만든 책인데, 책을 내어놓고 누군가가 사가는 느낌은 어땠어요?

대부분은 지인들이 구매해 주셨고 적은 인원이지만 지나가시다가 사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신기했어요. 제 책은 한정되어 있는 주제잖아요. 덕후라고 하면서 덕후이신 분들이 사 갈 때도 있고 어떤 나이 드신 분도 있는데 대화는 못 나눴지만 혹시 따님이나 자녀분이 덕후이신가 이런 생각이 들고 선물하시려고 하시는 건가 생각이 드는 분도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전에 책을 구매했던 작가님에게 책을 들고 찾아가서 저도 책을 내게 돼서 인사하러 왔다고 이야기했는데, 전에는 독자와 작가의 관계였다면 지금은 작가와 작가의 상태에서 보니까 너무 신기했어요.  


Q. 책을 만든 것도 큰 성취인데 이것을 통해서 완전 다른 세계의 문을 여신 것 같아요.

맞아요. 만약에 독립 출판 안했으면 이 세계는 진짜 몰랐겠다.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서 이렇게 많은 작가분들이 계시고 다들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계시는데 나도 이분들과 같은 줄에 앉아있다니,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인데 신기하다. 이 문을 열고 또 새로운 것을 하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Q. 글쓰기 리추얼을 처음부터 독립출판을 생각하고 시작하신 것은 아닌데,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은 안전한 독자분들이었어요. 메이커인 보리님도 열심히 댓글을 달아주시고 치어리더 분들도 열심히 댓글을 달아주시고, 같이 리추얼을 하는 다른 메이트분들도 서로의 글을 엄청 잘 읽어주시고 그거에 대해서 본인의 경험을 댓글로 많이 달아주세요. 일기이다 보니까 힘든 일들을 많이 쓰잖아요. 그러면 경험담이 나오는 거예요. 예를 들어 회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저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제 주변에도 나쁜 상사가 있었는데 이러면서 일기이지만 이번에는 무슨 댓글을 달아주실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글 쓰기 전에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면서 이런 일이 있으셨구나 이런 표현을 하시는 분이구나 하면서 저도 댓글 한 줄 달아보고 좋아요 누르고 그래요. 그런 분들이 꾸준히 계시니까 얼굴은 모르지만 서로에 대해서 잘 아는 친구가 되어가는 느낌이었어요. 또 하나는 글을 계속 꾸준히 쓰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소정의 금액을 내고 하니까 운동 다니는 것처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윤아님에게 기억에 남는 메이트 혹은 메이커나 치어리더 이야기가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치어리더님이랑 보리님도 늘 따스하게 댓글로 도움을 많이 돼주셨어요. 보리님은 댓글을 늘 길게 남겨주셔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엄청 감명받았어요. 지금 기억나는 것은 얼굴은 모르지만 한나님이라고 글을 엄청 감성적으로 길게 잘 써주시고 댓글을 남기실 때도 아름다운 칭찬을 써주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또 기억나는 분은 주부리님이라고 호주에 살고 계시는데 밑미를 하면서 알고 보니까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분이어서 급격히 친해졌어요. 그렇게 두 분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Q. 리추얼을 하면서 책을 만들게 된 것 외에 스스로가 느낀 변화 같은 것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책을 쓸 때 가장 두려웠던 건 지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었거든요. 완전히 모르는 독자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제가 보여주는 대로만 보는 거잖아요. 이 사람 이런 사람인 것 같다. 근데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 모습은 좀 아닌데 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제 책을 읽으면서 너무 포장했는데, 꾸며냈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도 하니까요. 그런 두려움이 되게 컸는데 글을 꾸준히 쓰고 일기를 20~30명의 독자에게 계속 노출을 하면서 약간 용기가 생기고 무던해지는, 그렇게 해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다는 걸 계속계속 경험했어요. 자유함이라고 해야되나 그런게 조금씩 생겼던 것 같아요. 용기도 생기고 그렇게까지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이 있어서 여기까지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윤아님이 생각하는 "내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쓰기"는 어떤 곳인가요? 

우리 리추얼은 실수해도 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글의 실수라는 게 있을 순 없지만 쓰다 보면 이거는 조금 별로인 것 같아라든지 이 글은 쓰지 않는 게 낫겠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기분이 안 좋거나 그럴 때는 리추얼을 못 할 수도 있고. 그런데 용기 내서 뭐라도 썼을 때 다 반응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이래서 실수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실패작이다 아니면 별로 안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보였을 때도 용납이 되는 느낌의 리추얼이었어요. 


Q. 마지막으로, 윤아님에게 글쓰기 리추얼이란? 

글쓰기의 근육을 만들 수 있게 해준 좋은 루틴, 운동 같은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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