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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Dec 09. 2023

로망 중 하나를 이루다

독립서점 책방지기 알바 일기 #0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도서관 사서나 서점 주인으로 살면 어떨까에 대해서 종종 생각을 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도서관 사서와 관련된 전공도 하지 않았고 경영이나 책과 관련된 전공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책을 구매하는 소비자로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사람으로 살았다. 


독립서점이 유행처럼 뻗어나갈 때, 나도 저런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 내가 큐레이션 한 책들을 다른 사람들이 사가고 읽어보고 공감하는 기분은 어떨까, 등등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독립서점들을 여기저기 방문해 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여행을 가면 꼭 그 지역에 있는 독립서점 혹은 일반 서점을 방문해서 책을 하나씩 사는 나름의 루틴이 생겼다. 여행지의 장면을 책으로 기억하는 것은 꽤 인상깊었다. 평소에 읽었던 책의 문장이나 메모지에 옮겨둔 수많은 문장들보다 여행지에서 구입한 서점의 모습과 어떤 책을 구매했는지, 그리고 무슨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 루틴도 만들어져서 조금씩 쌓아가는 중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독립서점들은 각자의 개성과 색깔이 짙어 더더욱 기억이 잘 나는 편이다. 


책을 고르는 방법을 누군가가 물어볼 때 추천하는 것 중 하나는 독립서점의 추천 책 항목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요새 인스타그램에서 조금만 검색해 보아도 많은 독립서점들이 다양한 서점 소식을 업로드한다. 독립서점에 방문을 해보거나, 그동안 업로드 되어 있는 서점의 콘텐츠를 살펴보면서 나랑 결이 잘 맞는 서점을 골라본다. 그리고 서점에서 추천하는 책 혹은 이 달의 서점에서 인기 있는 책 등을 참고해서 책을 고르면 광활하고 넓은 책더미에서 그나마 끝까지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건져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립서점의 큐레이션이 나와 잘 맞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난 나의 단골 독립서점의 추천 책은 믿고 사고 있고,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책 고르는 방법 중 다른 한 가지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다른 것으로 계속 사서 보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하는 책을 보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여러 번 출판한 출판사의 책을 읽어본다던가 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좋아하거나 결이 맞는 출판사나 편집자가 있다면 그곳에서 나온 책들만 읽어도 실패할 일은 많이 없다. 


퇴사 후에 짧은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지내다가 우연히 지인의 지인이 하는 책방에(이미 알고 있었고, 책도 구매해 본 책방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이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턱대고 하고 싶다고 연락해 달라고 했다. 감사하게도, 마침 한 분이 그만두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나의 이야기가 전해져 자연스레 한 달에 며칠 씩 아르바이트로 책방 지기를 하게 되었다. 


대학교 근처 작은 독립서점이고, 내가 해야 할 큰 일들은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로망이었던 책방지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고 설렜다. 책방 지기라니!!! 나는 무엇을 하나 시작할 때 생각을 많이 하고 주저하고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책방 지기의 일은 생각할 새 없이 하겠다고, 대뜸 그것도 묻지 않았는데 먼저 말했다. 물론, 지켜보고 있던 서점 중 하나이기도 하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부담이 많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나는 작은 독립서점의 책방지기를 하게 되었다. 


사장님께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러 책방으로 가는 길은 손님일 때와 사뭇 달랐다. 내가 책방에 있는 시간들이 어떻게 채워질까, 장사는 잘 되려나, 내가 모르는 것을 손님들이 물어보면 어쩌지, 등등의 상상 가득한 질문과 문장들을 품에 안고 서점으로 갔다. 사장님의 오리엔테이션은 간단했다. 출근하면 입간판을 내어놓고, 서점 불을 켜고, 겨울이니 온풍기를 틀고, 방향제와 가습기와 음악을 틀고, 결제기기를 켜고 오픈으로 팻말을 바꾸어두면 오픈 시 할 일 끝. 마감도 오픈의 일들을 마무리하는 식으로 하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책방지기들이 간단하게 일지를 쓰는 공책도 보여주셨다. 큰 서점이 아니라 판매된 책들에 대해 수기로 작성을 해두면 되고 이전 책방지기들의 기록을 보니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도 간단히 적혀있었다. "쓰윽 둘러보고 가셨어요." "책방에 불이 켜지는 것을 보고 들어오셨어요." 등등의 소소한 책방지기의 말들. 나도 있다 보면 이런 것을 쓰게 될까, 또 괜히 신이 났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이제 사장님 없이 문을 열, 첫 책방지기의 출근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잘할 수 있겠지? 민폐만 끼치지 말자고 되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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