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호 탑승기

미세스 존 머레이 브라운의 탑승권

by sero


2022년 11월 어느 날, 내 이름은 미세스 존 머레이 브라운이었다. 전시 티켓 대신 받은 타이타닉호 탑승권에 적힌 이름이었다. 티켓의 주인은 1912년 4월 15일, 일행 두 명과 함께 탑승한 일등석 승객.

밝은 얼굴의 안내 직원이 실제 티켓과 똑같이 디자인한 표라 설명했고, 나가는 길에 전광판에서 내가 이날의 생존자인지 사망자인지 확인해 보라 했다.


코로나 마스크를 벗을 즈음 간 라스베가스 비행이었다. 내게 라스베가스는 뭐든 조금 넘친다.

건물들의 번쩍임도, 벨라지오 분수의 선곡마저도.

치솟는 분수는 멋졌지만, 레퍼토리 마지막 곡인 미국 국가의 웅장함은 왜인지 과하게 느껴졌다.

흉내내 만든 것들도 흔한 도시다. 자유의 여신상과 에펠탑을 본떠 세워 두었다.


후배와 올드타운에 다녀온 뒤, 피라미드 모형으로 유명한 룩소르 호텔로 향했다. 그 호텔 안에 타이타닉 전시관이 있었다. 여러 번 볼 만큼 재밌게 본 영화라 전시도 기대하며 들어갔다.


재현해 둔 갑판을 걷고, 선실을 들여다봤다. 실제 승객의 캐리어와 타이타닉호 요리사가 썼던 모자도 있었다.

덩그러니 모자만 남았지만, 바다에 떠다니는 궁전에어울릴 요리를 만들었을 그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실화란 건 잊은 채 영화처럼 들어왔는데 실제 사진과 유품을 볼수록 ‘사망자’란 단어의 막연함이 잘게 쪼개져 또렷해졌다. 점점 한 사람, 한 사람이눈에 들어와 착찹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시계 앞 계단 장면을 재현한 곳은 유료 사진 촬영만 가능했다.

유료든 무료든 전시관에서 점점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다. 묘하게 마음이 불편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다른 사람의 비극을 재미로 구경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어서였다.


와중에 갑판에서 보는 밤하늘을 재현한 곳은 제법 아름다웠다. 배 위에 서 있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진한 남색 하늘 위, 뚜렷한 별들이 아른했다.

미세스 존 머레이 브라운은 푸른빛 별 앞에서 무슨생각을 했을까.

배를 가라앉힌 빙하도 재현되어 있었다. 거대한 덩어리로 눈길이 옮겨갔을 땐 어떤 마음이었을까 떠올렸다.

문득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한 사고도 스쳤다. 시대도 상황도 다르지만, 누군가의 슬픔이라는 감정만은닮아 있을지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애도보단 흥미를 겨냥한 전시처럼 느껴졌다. 즐거움을 위한 도시에서 자연스런 일일지 모른다. 이렇게라도 타이타닉호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니, 좋게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동시에, 탑승권에 이름 적힌 사람들이 이런 방식을 원했을까도 궁금해졌다.


티켓을 살 때, 바로 옆 전시인 ‘인체의 신비전’을 할인해 묶어 팔고 있었다. 전시 대상의 동의 여부 확인이 어렵단 인권 문제로 일부 도시에서는 진행되지 못했다고 들었던 전시다.

전시 대상을 소비하는 방법과 당사자의 의사를 모른다는 점이 닮아 보였다.

그럴듯하지만 어딘가 썰렁한 라스베가스의 가짜 중 하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타인의 비극 앞에 선 마음을 생각해 보게 된 날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 한 대목도 떠올랐다.

교통 사고같은 뉴스 속 비극을 볼 때, 내 가까운 사람이나 내가 그 대상이 아님에 은연 중 안도감을 느낀다는 대목이었다. 나 역시 알게모르게 그런 기분을 느꼈을지 모른단 생각이 충격적이었어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았다.


또 가끔 갑자기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사는 건 한치 앞을 모르는구나, 내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른단 걸 상기했었다. 뭐든 미루지 말아야지.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며 살아야지.

마음을 먹기도 했다.


누군가의 비극을 즐길 거리로 만든 전시가 껄끄러웠다. 남의 슬픔을 마주해 내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교훈을 얻거나, 어쩌면 은연중에 느꼈을 안도감 사이에서 모순도 느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거기 사람을 향한 무심함은 없게 하자 마음먹었다.


전광판에서 생사 여부를 확인할 마음은 들지 않아, 그대로 지나쳐 나왔다. 손에 쥔 티켓은 스치면 사각거릴 듯 까끌거렸다.

일하며 매일 건네받던 비행기 탑승권은 매끈하고, 더 무게가 나간다. 돌아가는 길, 손 안의 표는 훨씬 얇고 가벼운 종이였지만, 가뿐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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