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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Jul 24. 2020

오늘, 양말을 짝짝이로 신었다

나를 나답게:  대충 신은 양말이 주는 쿨링 타임

오늘, 왼발에는 흰 양말을 오른발에는 노란 양말을 신었다. 그리고 슬리퍼를 신은 채 복도를 활보했다.

그게 뭔 대수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도하나의 짝짝이 양말이 유행이던 재작년에도 짝짝이 양말을 신 10대는 드물었다. 양말을 짝짝이로 신는 건 누가 봐도 발에 착용하는 직물은 같은 색, 같은 모양, 같은 길이로 짝 맞춰 신는 인류의 오랜 관습을 깨부수는 일탈이다.



짝짝이 양말을 신게 된 건 대충 살고 싶지만 대충 살 수 없는 내 삶에 숨통을 틔여주기 위해서였다.

작년에 집에서 편도 1시간 50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했다.


"선생님 대단하다 정말~ 나라면 여기 근무 안 했어"


교무실에서 나와 대각선에 자리해있고 종종 점심을 같이하곤 했던 베테랑 선생님은 첫 차를 타고 출근한다는 내 말을 듣고 혀를 내둘렀다.


집에서 편도 1시간 50분 거리에 직장이 있다고 가릴 처지는 아니다. 때는 2019년, 인턴조차 경력 있는 사람을 찾아대는 통에 경력이 없으면 취업하기 힘든 세상이었다. 나는 대학원에서 이력서에 넣을 만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문과대학원생이 대학원에서 배운 내용은 자연대나 공대대학원생과 달리 사회에 나가서 할 일과 1:1 매칭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박사 진학을 하지 않는 이상 대학원에서 공부와 연구에만 매진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있을 때쯤 이 기간제 교사 자리 공고를 봤고, 그래도 편도 2500원 선 안에서 다닐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싶어서 냉큼 지원하였다. 서로의 니즈가 맞아떨어져서 합격한 케이스가 아니었나 싶다.

 


통근시간이 도합 3시간 40분에 이르는 생활은 와이파이와 함께하니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다만 본래 아침 8시쯤 일어나는 사람이었던지라, 7시 50분까지 출근하기 위해 6시에 집을 나서는 게 너무 힘들었다. 6시에 집을 나서기 위해서는 아무리 늦어도 5시 25분에는 딱딱한 바닥에 두 발 딛고 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섯 시에 일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은 대학원에 가서 야간수업을 듣고 9시에 마친 후 집에 밤 10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다음날 수업할 내용을 한번 훑고, 연습하고, 대학원 과제를 하고 나면 새벽이었다. 평균 수면시간이 3~4시간이 된 지 1달 반 정도가 지나자 9 to 6로 일을 시키는 노동시계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9 to 6로 사람들이 일을 하러 가니 학교가 그전에 시작하는 것 아니겠는가! 모두들 11시부터 일을 시작하면 학교도 10시에 시작할 수 있을 텐데. 대학원 수업은 또 왜 9시에 마친단 말인가. 왜 우리 집은 여기인가. 집에 들어와서 잠자고 씻고 빨래만 하는데 내 방은 왜 자꾸 더러워지는가. 주 4일 출근 및 등교는 대체 언제쯤 실현될 수 있는 건가..!!


세상에 대한 불만이 치솟고 한숨이 일상이 되었다. 지켜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직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일을 하는 데 있어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기준도 만족시켜야 한다. 빈틈없이 살기 위한 긴장의 연속, 그럼에도 생기는 실수를 메꾸기 위한 허둥거림, 더 바짝 조이는 긴장감, 숨이 차올라 한번에 몰아쉬는 삶.

그 무렵 인터넷에서 뒤늦게 '대충 살자' 시리즈를 접했다.

"대충 살자. 걷기 귀찮아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북극곰처럼(원 출처: 트위터 포고미 님)"

대충살자라니 얼마나 반가운 말인지. 그러나 일을 대충 할 수는 없었다. 대충 하다가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방 청소를 대충 할 수도 없었다. 방이 너무 더러워지면 나만 자던 방에 다른 개체묵게 될 수도 있으니까(곰팡이류, 곤충류와 방을 셰어 하고 싶지 않다. 특히 바 선생은 정말 싫다). 빨래를 대충 할 수도 없다. 출근할 때 입을, 퀴퀴한 냄새나지 않는 깨끗한 옷은 있어야 하니까.


주 5일 낮을 보낼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면서도 반복되는 출퇴근, 다른 사람들 눈에 거슬리지 않게 행동하려고 조심하기, 처음 하는 행정일에 적응하기가 벅찼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었고, 기왕 할 거면 잘 해내고 싶었다. 또, 잘 해내야만 했다. 실질적 경제활동인구가 되기 위해서는 대충 살 수 없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거슬리지 않게, 그리고 실수 없이 일하는 것까지 모든 게 다 내 평판 관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긴장하고 살았다.



기간제로 일 한 지 2달 정도 지난 뒤부터 양말을 빨래건조대에서 걷으면 짝을 맞춰 정리하지 않고 그냥 양말 바구니에 휙 던져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쁜 아침, 양말 짝 찾기가 어렵다는 핑계를 대며 그냥 짝짝이로 신고 다녔다.

운동화에 양말이 가려져 있으면 아무 생각 안 든다. 그런데 직장에 가서 운동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순간, 색이 다른 짝짝이 양말이 묘한 희열감을 준다. 검은색 슬랙스 아래 왼발은 흰 양말 오른발은 회색 양말. 왼발은 초록 양말 오른발은 노란 양말. 때는 겨울이라 목이 긴 양말을 신었는데, 짝 안 맞게 신은 내 양말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 덕분에 짝짝이 양말 일탈 효과는 배가 되었다.


"아니, 검은 바지 밑에 노란 양말을 신어요? 근데 반대쪽은 초록색이네?? 오늘 바빴어요?"

"아 네.. 제가 아침에 좀 서둘렀더니..."


말은 그렇게 하지만 '히히 일부러 그런 건데' 생각하면서 뇌로만 웃는다. 말괄량이 삐삐가 된 것 같다. 지켜야 할 규칙이 한가득이고 표에 입력하는 숫자 하나라도 틀리면 온 직장을 뒤집어엎어야 하는 곳에서 짝짝이 양말을 신은 발을 슬리퍼에 집어넣고 나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뭐든 대충 할 수 없는 일상, 정해진 규칙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쌩깔 수 없는(?) 생활에서 인류의 오랜 패션 관습을 깼다, 내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출퇴근길,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일들, 단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서류들, 다른 사람들의 말과 시선 속에서 늘 긴장하고 살았다. 적당히만 하자고 생각하지만 막상 시작하면 '기왕 하는 거 잘하자'가 되어버린다. 쓰는 에너지에 비해 비축되는 에너지가 현저히 부족한 삶, 점점 지쳐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짝짝이 양말은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하루 종일 긴장하고 살 적에는 '나란 사람의 삶은 어디로 간 걸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들 때가 많았다. 그런데 양말을 짝짝이로 대충 신고 다니다 보니 중간중간 긴장이 좀 풀어졌고, 때때로 일을 하면서 재미난 상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잠 보충하기에 바빴던 주말에 산책을 가기 시작했고, 긴 시간 생각하지 않고 대충 할 일을 결정해서 일단 해 보았다. 완벽해지기 위해, 남들이 다 가진듯한 번듯한 직업을 갖기 위해 늘 쥐고 있던 긴장감을 조금 내려놓자 본래의 나, 호기심이 많은 내가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이후로도 학교에서 일하면서 종종 짧지만 확실하게 대충 결정하고 대충 행동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강 시간에 아메리카노에 허브티 티백 우려 마시기,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레모네이드 넣어서 먹기처럼 그냥 간식코너에 있는 재료, 남들은 잘 섞어먹지 않는 재료를 조합해서 먹어보았다.

출근 전, 머리 만질 때 쓰라고 나온 고데기로 셔츠 깃과 덜 마른 속옷을 다려보기도 했고, 비싼 아이크림을 한쪽 손바닥에만 계속 발라주면서 잔 지문이 펴지는지 확인해보는 실험도 해보았다(육안으로는 효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날에는 순환선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2바퀴를 돌아 내려보기도 하고, 세 번째에 오는 버스를 타고 여섯 번째 정류장에 내려 다시 세 번째로 도착한 버스를 환승하기를 세 번 반복한 후, 그 동네 아무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도 있었다.

 맛이 있든 없든, 옷이 잘 다려지든 살짝 탄 내가 나든 상관없다. 비싼 아이크림을 손에 발라도 상관없다. 까짓 거 어디로 갔는지 잊은 채 아무 데도 못 바르는 것보다야 어디든 챙겨 바르는 게 낫지!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일, 그런 엉뚱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노출될 때면 그 순간만은 권위가 있어야 하고, 품위를 지켜야 하고, 일을 빈틈없이 해야 하며, 공손해야 하고, 옷을 단정하지만 맵시 있게 입어야 하고, 잘 웃는 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냥 내가 되는 느낌이었다.  사회에 첫 발을 디딘 그 해, 나는 그렇게 직장에서 일 잘하는 사람 아니 일 빵꾸 내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잠들기 전부터 긴장했던 마음을 잠깐이지만 확실하게 내려놨다.. 가 다시 주워 담았다.



나는 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살고 싶은 직장생활 6개월 차 계약직/시간제 노동자이다. 고용안정이 보장된 직장에서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평온함을 얻고 싶고, 적 없이 둥글게 살고 싶고, 평판이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직생활을 하려면 대부분의 순간 one of them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 같다. 아니, 조직생활을 시작이라도 하려면 one of them의 느낌을 팍팍 티 내야 하는 것 같다.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가질 수 있으나 표출은 하기 힘들다.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고,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하면서 새우잠을 잔다.

조직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한 주의 대부분을 긴장한 채로 보내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가끔은 내가 조직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일을 멈추고 싶다. 그럴 때 소소하지만 확실한 일탈들은 주 5일, 하루 8시간~11시간 동안 오 선생으로 지내기 위해 바짝 긴장하고 있던 나에게 잠시 오찬우가 될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해줬다.


매일 짝짝이 양말을 신고 나가지는 않지만, 아직도 종종 짝짝이 양말을 신고 출근을 한다. 수업을 하기 위해 계단을 올라갈 때, 책상에 앉았을 때, 부장님께 결재를 맡고 온 후 짝이 맞지 않는 두 발을 바라본다. 다른 색의 양말 속에서 발가락을 꿀렁꿀렁 움직이면서 발가락 관절춤까지 춰 본다. 아무도 관심 없는 나만의 외적댄스, 대놓고 일상탈출. 잘 추고 못 추고는 상관없고 대충 발가락만 꿈지럭 대 본다. 속으로 피식 웃으면서 잠시 '실수하면 안 된다', '일을 잘 해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밉보여서는 안 된다', '오늘 수업은 반응이 좀 좋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잊는다.


오늘, 오랜만에 양말을 짝짝이로 신었다. 복도를 지나가시던 교감선생님의 시선이 잠시 내 발에 머물렀다가, 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는 걸 주변시로 확인하고 뇌로만 키득거린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빈틈으로 오늘도 오 선생으로 지내는 시간 사이에 잠시 오찬우가 되는 간을 가졌다.


직장에서 갖는 쿨링타임. "뇌적웃음"을 지으면서 긴장감을 잠시 내려 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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