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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Sep 16. 2021

코드 어드벤처

악뮤 <낙하>를 듣고_2

상담 선생님은 지마에게 왜 전학을 왔는지, 이전 학교가 1지망이었는지, 학교 수업은 잘 따라가고 있는지, 친구랑 사이는 어떤지, 동아리 활동은 만족스러운지 물었다.

지마는 질문에 짧지만 솔직하게 답변을 하면서, 자신은 곧 선생님들 사이에서 '더 나은 면학 분위기를 찾아 전학 온 아이', '수업 수준을 못 따라오는 아이', '대인 관계를 힘들어하는 아이' 혹은 '1반에 그 상담받았다는 아이'로 통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선생님들은 자신이 커다란 보청기라도 끼고 온 사람처럼 바라볼 지도 모른다. 때론 자신을 동정해서 코로나 시절에 무리해서 만든 조별 활동을 함께할 구성원으로 착한 모범생들을 일부러 끼워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마네 반 아이들은 더이상 대인관계에 에너지를 쏟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들 이미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요새를 다지기에 여념이 없다. 지마는 그 네트워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을 넘어 닿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상담을 받고 교실에 돌아오자 지마의 휴대전화 진동벨이 울렸다. 담임이 보낸 링크였다. '한번 들어가 봐. 네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지마가 링크를 누르자, 스마트폰 화면 가까이 메타버스가 실행됐다. 지마는 기본 캐릭터를 골랐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스킨 중에서 '코드 어드벤처'라고 적혀있는 것을 골랐다.


그러자 3차원 공간에 하얗고 불투명한 천장과 검은 창살, 남쪽 하늘에 금색 코린트 양식의 기둥 모양의 빛줄기가 드리운 스킨이 나타났다.

지마에게는 어디선가 많이 봤던 것처럼 익숙한 공간이었다.

지마의 캐릭터는 협곡처럼 보이는 낭떠러지 위에 서 있었고, 그곳은 아주 깊었다.

어찌되었든 이곳은 지마가 선택한, 지마의 세상이었다. 이 메타버스를 꾸미고 일구는 일은 이 세계에서는 오롯이 지마의 몫이었다.


지마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굴러떨어질 위험이 있는 협곡 지대였지만, 뒤에서 다가오고 있는 어둠과 대비되는 빛이 한쪽에 드리워 있다는 사실에 괜히 가슴이 뛰었다.

'천장은 불투명한데, 저 빛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지마가 화살표 위쪽 버튼을 누르자 캐릭터가 금빛 하늘 쪽으로 걸어갔다. 지마는 화살표를 3초간 화살표를 꾸욱 누르자 3D 맵이 등장하며 원하는 곳을 클릭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지마는 차분히 맵을 들여다보며 금빛이 나는 구역을 찾으려 했다. 이 맵은 가로가 세로의 5배는 되는 직사각형 위에 높이가 가로 길이만 한 벽이 4개 둘러싸고 있었고, 그 벽 사이사이에 기둥이 있었다.

'내가 봤던 협곡은 어디에 있는 거지?'

지마의 위치가 표시된 파란 화살표 쪽을 손가락으로 주욱 확대했다. 그리고 협곡을 꾹 눌렀다.


- 높이 5cm -


!!

지마는 자신이 깊고 좁은 골짜기라고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높이가 고작 5cm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별 거 아니었잖아? 메타버스 세상에서 캐릭터의 키를 키우면 이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가 될 것 같았다.

지마는 곧바로 설정에 들어가서 캐릭터의 키를 160cm으로 조정했다.


설정을 마친 후 메타버스 스킨으로 돌아왔을 때, 지마 앞에는 의자 하나와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지마는 다시 3D 맵을 켰다.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도를 잡았다.

유레카!

지마가 찾던 금색 빛줄기는 피아노 안쪽에 있는 스프링이었고, 지마가 봤던 천장은 피아노의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었으며, 오로라처럼 흔들리던 빛줄기는 바깥 소리에 반응한 작은 떨림이었고, 지마가 서 있던 낭떠러지는 피아노의 페달이었다.


지마가 자신이 답답할 때마다 갇혀있던 방이 사실 피아노 내부같은 곳이었다. 이 방에서도 스케일을 달리 할 수 있다면? 자신을 가두고 자꾸만 작아졌던 방을 울림통으로 쓸 수 있다.

지마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을 피아노 위에 동그랗게 올린 뒤 곰곰이 자신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 본다.

-- 나와 코드가 꼭 맞는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대인관계에 에너지를 쏟지 않으니, 나 혼자 친구를 사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이긴 싫었다

-- 친구가 없다는 사실, 아무도 내게 관심을 주지 않는 상황은 나를 조용한 아이로 만들었다..


'띵동' 메타버스에서 메시지가 왔다.

'chord를 입력해주세요: *chord는 accord(동의하다)의 줄임말로 화음을 의미합니다. 한번에 한 개의 음을 입력할 수 있습니다. 4개 이상의 음이 모이면 코드가 맞는 조합끼리 화음을 쌓아 줍니다'

지마는 시, 높은 도, 솔을 꾹꾹 눌러서 일단 세 개의 음을 입력한 뒤 메타버스를 나왔다.


'라--'

여느 때처럼 교실에 있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에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방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스스로 더 큰 배포를 가지면 이 마음도 잘 구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마는 '라--'소리를 조율음으로 삼아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번 크게 했다.

지마는 텀블러를 들고 정수기로 걸어갔다. 종종 지마에게 말을 걸어주던 시마가 물을 뜨고 있었다.


"저... 시마야.. 얼음물 좋아해?"

"어? 어...?"

"나 다른 텀블러에 얼음 있는데 그거 좀 나눠줄까?"

"어? 아니 괜.. 아, 그래 그럼!"


지마의 손가락은 박자에 맞춰 낙하했다.

시 레b 솔 도 미b 솔

잘 맞는 듯 잘 맞지 않은 듯 맞춰가는 듯한 음들이 서로 합을 맞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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