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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Jul 29. 2020

방에서 잃어버렸다는 재난지원금카드, 그거 내가 찾아줄게

(not) to you: 틴탑To you가사를 단편소설로

"재난지원금 받은 거 어디다 썼냐?"

"... 나 그거 집에서 잃어버림.."

"집에서?? 야, 그럼 찾아 봐. 그거 8월 말까지인데."

"없더라고."

"야, 너 혹시 방구석 엉망으로 해 놓고 사냐? 얼마나 어질러져 있으면 물건을 못 찾아~"

"청소가 잘 안 돼."

"... 도와줘? 같이 하고 저녁 먹자! 밥은 당연히 네가 사고."

"..."

"형석이랑 지수 불러서 같이 갈게. 물티슈 없으면 좀 사놔."

"... 고마워."


이상하다. 요즘 주변 정리가 잘 안 된다. 방이 계속 지저분해지고 있지만 치울 기력이 없다. 원룸에 살면서 무슨 말이냐, 그것도 안 치우고 사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일어나는 것도 씻는 것도 힘들다. 단 한 가지 그나마 정줄을 부여잡고 하는 일은 실험실에 출근하는 일이다.



나, 의민이, 지수, 형석이는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나 한 학기를 같이 살면서 부쩍 친해졌다. 나는 생명과학과, 의민이는 건축학과, 지수는 컴퓨터공학과, 형석이는 회화과였다. 과, 성격, 출신지역과 학교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통하는 게 있었으니, 네 명 모두 밤을 새면서 과제를 하는 날이 많았다.

서로 친분이 별로 없었던 기숙사 생활 초기에는 밤에 자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다들 도서관이나 작업실에서 아침이 될 때까지 과제를 하다가 졸다가를 반복하고 다음날 퀭한 얼굴로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마다 침대가 너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다들 일찍 다니나보다'


서로의 생활 패턴을 알게 된 건 4월, 중간고사 기간 즈음이었다.


"저기, 중간고사 기간 언제세요? 밤 아예 새실 거예요? 새벽에 방에 들어오는 시간 정하면 어떨까요?"


의민이는 이때도 어떤 문제상황을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계획이 서면 질문을 한번에 여러 개 우다다다 쏟아낸다. 어떤 질문에 대답하라는 건지. 다 대답하려면 질문 기억하는 것도 일이지만, 이제는 이런 화법에 익숙해졌다. 형석이는 의민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있다가 핵심을 딱 짚어낸다. 미술하는 사람 맞다 싶다. 각종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압축해내야하는 일에 숙달되어서인지 대수롭지 않게, 그리고 편하게 대답한다.


"저는 원래 야간작업이 많아서 작업실에서 계속 지내요. 3시부터 작업실에서 자기는 하는데... 다들 몇 시에 들어오실 거예요?"


형석이는 그간 작업실에서 서너시간 정도 잠을 자다가 바로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잠시 기숙사에 들러 씻고 나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작업실에 잘 공간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없었을 거다. 우리학교 미대 작업실은 열악하기로 유명했다. 학교 명성에 맞지 않는 시설일 뿐만 아니라, 화재에도 노출되어 있고, 학생들의 등록금에 비해 작업실 환경 개선에 투자하는 비용이 없다시피하다며 미대 학생회에서 달달이 대자보를 써서 붙였고, 방학이 다가올 때 쯤이면 광장에서 플랜카드와 확성기를 들고 미대 학생회에서 시위도 했기 때문에 학교를 한 학기 이상 다닌 사람은 미술대학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형석이가 회화과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회화과와 비슷하게 야간작업, 즉, 밤샘과제가 많은 건축학도인 의민이가 좀더 일찍 새벽에 기숙사에 들어와도 되겠느냐는 제안을 했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하면 좀 황당한데, 입소 시기가 조금씩 달라서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일찌감치 개강 전에 입소한 나와 의민이는 서로 통성명을 하고 무엇을 전공하는지 이야기를 한 상태였지만, 지수는 개강 한 지 한 주 지나고 입소했고, 형석이는 2주나 지나고 입소를 했다. 개강 첫 주는 헐렁헐렁하게 보냈지만 개강 두 번째 주부터는 모두가 학과 생활을 하면서 과제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 그냥 얼굴보고 인사하고, 12시에는 소등하니까 그 전에는 방에 들어오라는 얘기 정도만 나눴다. 박완서 선생님의 <옥상의 민들레꽃>에서 봤던 도시인의 인간성 상실을 한 방에 살면서 직접 체험한 셈이다. 적어도 <옥상의 민들레꽃>에 나오는 이웃들은 서로 다른 호수의 집에 살긴 했다.


서로 중간고사 기간에 몇 시까지 어디에서 공부하고 들어올 건지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아차, 우리 아직 이름도 서로 몰랐네요'라고 하면서 통성명을 하고, 사실 전공이 뭔지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서로 얘기한 적 있는 것처럼 '아참, 과가 어디랬죠?' 라고 물으며 전공도 확인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모두 21살 동갑내기였고, 실험이나 실습, 과제가 많은 학과를 다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날도 할 일이 많았지만 동갑을 만나서 편했던 건지, 시험기간에 무려 방에서 같이 밤 새울 동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지, 이제 밤샘 작업 후에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마음에 기뻤던 탓인지 서로 돈을 모아 치킨을 두 마리나 시켜서 양념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그 날 이후, 나와 지수는 기숙사 방에서 의민이와 형석이가 돌아오는 새벽까지 각자의 책상에서 전공 공부나 코딩작업을 이어갔고, 의민이와 형석이는 학과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우드락을 자르고 붓질을 하다가 새벽 두세시에 방에 들어와서 서로 건축학과와 회화과가 얼마나 그지같은지 토로했다. 옆에서 듣고 있으면 서로 '우리가 더 힘들다'라고 하면서 유치한 겨루기를 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그래 힘들지?'하면서 같이 공감해주는 모습이 짠하다 못해 코믹했다. '힘들다' 컴페티션에 종종 나와 지수도 합류해서 배틀을 벌이다가, 마지막에는 꼭 밤도 없이 과제를 하게 만드는 교수님들을 욕하면서 각자 자러 갔다. 같은 부류의 적(?)을 두어서 훨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매 학기 기숙사 신청에 성공했고, 4인실은 신청자끼리 사용해줄 수 있는 제도를 이용하여 졸업할 때까지 같은 멤버가 이사만 반복하면서 한 집 식구처럼 같이 살았다.



우리는 같은 개체군을 적으로 두고 있다는 점 외에 각자의 전공을 정말,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속한 생명과학과 선배들은 전공을 바꿔서 취업하지 않는 이상, 국내든 해외든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이 많았다. 전공과 관련된 새로운 실험을 해 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선배들의 진로선택에 영향을 받아 나는 1학년 때부터 대학원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자신의 연구실에서 함께 연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고, 해외대학원 한 곳과 고민하다가 자대대학원 연구실로 거취를 정하여 현재 3학기차가 되었다.

 건축학과인 의민이는 중간에 군 휴학을 2년 했다. 군대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운동 많이 하면 근육이 탄탄해져서 돌아올 줄 알았더니, 하필 자기 부대에 맘스터치가 있어서 1일1버거, 1주1치킨 하셨단다. 안그래도 허연 얼굴이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더 하얘졌고 통통하고 기다란 모습이 무같아서, 우리끼리 정의민이 아니라 무의민이라고 놀려댔다. 무의민은 건축학과 막학기를 다니면서 여전히 밤샘을 거듭하며 졸업작품을 만들고 있다.

지수는 취업과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다가 의민이가 해주는 군 생활 이야기를 듣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수나 나나 군대 얘기는 많이 들었어도 대학원 얘기는 별로 들을 생각도 안 했던 것 같다. 우리끼리만 뭉쳐서 공부하고 놀러다닐 게 아니라 선배들을 좀더 많이 만나고,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읽었어야 했나보다. 아무튼 지수는 나와 같은 건물에서 원룸에 살면서 똑같이 대학원 3학기차를 맞이했다.



오늘은 졸업하고 입대한 형석이가 휴가 나오는 날이어서 넷이 만나기로 했었다. 형석이가 학교로 오면 밥을 먹고 넷이서 지수네 자취방에 모여 밤새 술이나 마시자고 했고, 우리는 그럼 우리 스타일대로 3시 반까지 얘기하다가 둘은 지수네 방에서, 둘은 내 방에서 자자고 약속했다. 그게 지난주였다.


일주일이면 논문과 전공책, 일회용 도시락 용기, 쌓여있는 설거지, 설거지를 못하겠어서 사용한 종이컵 더미, 밤 샐 때마다 사 마신 플라스틱 커피컵, 코 푼 휴지, 책상을 점령한 옷가지가 다 정리될 줄 알았다. 내가 조금씩 구역을 정해서 정리하면 정리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년 전의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거다. 아니, 애초에 방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청소를 미룬 채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고, 힘들게 일으킨 몸으로 샤워를 하고 실험실에 제때 나가는 일도 버거워졌다. 그렇게 한번은 자다가 실험실에 아예 출근하지 못했고, 두어 번 지각을 했다. 박사과정 형, 포닥 누나에게 혼나고 교수님께 깨졌다.


"이럴 거면 나오지 말든가. 너 말고도 실험할 사람 많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권력이다. 존경하던 교수님은 언제나 학생 편에서 생각해주시고, 학생들이 즐기는 문화에 관심을 가지셨으며, 종강 즈음이면 사이버캠퍼스 게시판에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글귀를 남겨주시던 분이셨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니 내게 종종 사적인 이야기도 해 주셨다. 더 가까워진 줄 알았는데, 너무 가까워졌나보다. 그의 말에 필터가 없다.


"이 자리는 네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지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야."

"실험과 관련된 이론적 배경이라고 생각하여 자세하게 넣었습니다. 혹시 연구에 불필요한 내용일까요?"


그의 눈썹이 크게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미간이 찌푸려진다. 알아서 잘 고쳐오라고 하시고 발표는 마무리 되었다. 포닥 누나에게 물어본다.


"교수님께서 왜 대답이 없으셨을까요... 저 이론적 배경 완전히 고쳐야하는 거죠?"

"이번 버전 일단 따로 저장해놓고, 몇 개는 살리고 몇 개는 새로 찾아서 가져가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누나 저 뭘 잘못한걸까요..? 자랑이라고 하시니 잘못한 게 있나해서요."

"그건 나도 잘... 잘 버텨보자 정우야."


그냥 교수님과 내가 다른 성향의 사람인 거라 생각하며 실험실을 나온다. 우리는 정말 성향이 다르다. 특히 표현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작년 말, 여차저차 하던 실험을 정리하여 학회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을 때, 교수님께 연구 진행상황을 메일로 쓰면서 발표 소식을 함께 전했었다.


"그거 많이들 나가는 거야. 굳이 내게 그걸로 메일 쓸 필요 없어.

그런데 그 실험 계속 진행할거야? 수업조교도 안 한다고 하고 시작한 실험이 고작 그건가 싶은데."


그렇구나 넘겼지만 애썼다 한 마디 안 해주는 교수님이 낯설었다. 그에게는 작고 보잘것없는 실험일 수 있으나, 내게는 연구자로서 첫 성과였다. 내가 기억하는 학부시절의 교수님이었다면 잘 했다고, 이제 연구자로서 첫 발을 디뎠으니 앞으로 더 정진하라고 해주실 것만 같은데 아니었다. 기대와 현실은 늘 거리가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고, 나는 그에게 확인 한번 하지 않은 채 '교수님은 내가 수업조교를 거절한 것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신가보다. 사실 수업조교를 내게 맡겨 푼돈 쥐여주고 수행비서처럼 날 쓰고싶으셨던거야.' 라고 넘겨짚었다. 그러나 차마 여쭤볼 수가 없었다. 내가 당신을 그런 사람으로 여겼다는 걸 들키면 남은 대학원생활이 힘들어질 것 같았고, 여쭤보기에도 상당히 까다로운 질문이었다. 다 지난 일. '수업조교를 안 한다고 하고 시작한 실험이 고작 그거라니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할 수도 없고, '혹시 제가 수업조교를 했어야 하는 것인지'라고 말하는 것도 적절치 못한 것 같다. 어떻게 질문하든 어른께 무례한 질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서운함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한 일이 생겨도 '내가 참으면 되는데.' 하고 넘기는 일에 더 익숙해졌다. 그냥 내가 참고 넘기면 혹시 모를 불상사를 아예 겪지 않아도 된다. 나의 마음만 컨트롤하면 된다. 그게 가장 쉬운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3학기 차가 되었는데, 누구보다 성실하고 의욕적이었던 내가 실험실 출근을 자느라 펑크내고, 지각을 일삼으며, 자잘한 물건을 자꾸 잃어버리고, 주변 정리가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우 너 요새 어디 아파?"

"누나 그냥 대학원생활이 녹록지 않다 싶어요."

"힘든 거 있어도 그냥 다 잊어. 그리고 버텨. 그게 대학원생활이야."

"..."


"정우군, 요즘 왜 그렇게 지각이 잦죠? 뭐 힘든 거 있음 말을 하든가."

'교수님 때문에요'라고 말씀드려도 될까? 쓴웃음이 지나간다.

"괜찮아요. 저 괜찮습니다."



"야, 여기 발 딛을 곳이 없다. 한정우 진짜 지저분하게 사네. 다른 집에 살아서 다행이야~"

집에 있는 청소도구 몇 가지를 챙겨서 올라온 지수가 성격 좋게 말한다.


"사람이 머릿속 정리가 안 되면 자기 사는 공간도 정리가 안 되는 거야. 그래도 오늘 지나면 좀 나아질걸? 우리가 같이 대학원 욕 해줄게."

"이게 대학원 때문이라는 증거 있냐? 대학원 생활 한정우 너만 힘든 것도 아닐건데 왜 너만 이렇게 망가져?!"

"이게 군대가서 머리가 어떻게 됐나. 위로를 할거면 제대로 하고, 힐난을 할거면 그냥 나가."


무의민의 말에 오랜만에 휴가 나온 형석이가 입을 삐죽거린다. 무의민, 아니 정의민은 이름대로 정의롭다. 불편한 소리를 하는 사람을 모두가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정리해준다. 어쩌면 우리 넷의 우정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의민이 덕분일지도 모른다.

너만 힘든 것이냐는 형석이 말이 조금 따갑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늘 맨 뒤에 있다. 못 본 사이 왜 이렇게 망가졌냐는 말이 그의 진심이다. 소중한 군 휴가에 나를 찾아와서 기꺼이 청소를 도와주겠다고 한 것만 봐도 그가 나를 살뜰히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친구들의 방문에 어딘가 무겁고 우중충한 기운이 돌던 방에도 활기가 생긴다. 나도 몸을 움직여서 방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쓰레기봉지에 주워 담고, 친구들에게 설거지를 부탁한 뒤 미뤄뒀던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형석이는 군대에서 침구 청소하는 법을 배워왔다며, 침대 매트리스를 반대로 감은 테이프를 돌리면서 먼지를 걷어내고, 침대 밑까지 말끔히 치웠다. 지수는 설거지를 끝낸 뒤 "그릇 위쪽에 있는 장에 둔다"라고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곳에 넣는다. 아무렴 어떠랴. 아래를 열어보고 그릇이 없으면 다시 위를 열어보면 되지. 의민이는 밖에 나와있는 겉옷을 옷걸이에 걸었다. 네 명이서 30분 가량 뚝딱거리니 방이 훤해졌다.


'30분이면 될 걸 내가...'


짧은 시간 투자해서 끝낼 수 있었던 일을 이토록 미루고 또 미뤄뒀다는 사실에 조금 괴로웠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입술을 꾹 닫고 큰 숨을 넘기면서 눈물도 함께 넣었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민이가 어깨동무를 하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카드를 흔든다.

재난지원금카드. 이름대로 자기 몫을 톡톡히 한다. 덕분에 의민이가 친구들을 모았고, 그들이 날 찾아와주었으며, 드디어 방을 정리했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모든 크고작은 일을 미루고 살았던 것인지, 그냥 게을렀던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히 나의 상태는 의민이, 지수, 형석이의 재난지원 덕분에 조금 나아졌다. 슬러지처럼 질척하고 까만 늪에 빠져 헤엄치다가 어느 순간 멈추었다.

'팔과 다리는 이제 그만 저어야겠다, 빠져나가려고 해봤자 소용 없는 일인가봐'

까맣고 질척이는 늪에 서서히 몸이 잠기고 숨이 막혀오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곳을 어떻게 벗어나야할지 알지 못했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 상황을 다시 복기해야 하니까.


의민, 지수, 형석의 방문, 나를 힐난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투덜거리면서 함께 해 준 청소는

'이 늪은 깊이가 어느정도일까? 발로 한번 가늠해볼까? 설 수 있나?' 라는 생각에 이르게 해 주었다.


"얘들아 너무 고맙다. 내가 저녁 살게. 뭐 먹을래? 형석이 너 뭐 먹고 싶냐?"

"나 없는 사이 비건됐거나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 있음 얼른 말해. 삼겹살 먹으러 가고 싶으니까."


역시 형석이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삼겹살을 먹고 싶다는 일병 차형석의 말을 따라 우리는 여러가지 맛 장을 주기로 유명한 삼겹살집으로 갔다. 내가 고기를 굽고, 지수가 능숙하게 쌈과 명이나물을 추가 주문하고, 의민이가 무심한 척 형석이 쪽으로 잘 구워진 고기를 몰아줬다. 형석이가 군대에서 회화과를 나왔다는 이유로 각종 구기시합을 할 때마다 땅에 줄긋고 있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뻥치지말라며 고기 한점 집어먹고, 의민이가 잠결에 만들던 졸업작품을 손으로 툭 쳐서 작품이 망가졌고 중간발표 전날 작품의 1/4를 다시 만들어야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애 썼다고 잔을 서로 부딪친다. 지수가 대학원에서 학계에서 오래도록 골치였던 문제를 해결했는데, 알고보니 미국 모 기업에서 이미 특허를 준비하고 있었단다. 들고 있던 젓가락을 놓고 경청한다. 말없던 나도 초파리의 수를 어떻게 늘리는지, 빨간눈을 가진 개체수와 흰 눈을 가진 개체수를 어떻게 세는지 조잘거려본다. 재미 하나도 없을텐데, 이 녀석들 잘 들어준다. 고기를 입에 넣어줘서 그런가?



원곡: 틴탑 <To you>

https://youtu.be/qaAbtVbRJ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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