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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Aug 31. 2020

아프리카 출신 미국 이민-지방 출신 서울정착의 평행이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숨통> 리뷰 1

내가 어떻게 다시 나이지리아에서 살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서 오래 산 사람은 더 이상 나이지리아 사람이 아니에요. 거기 사람들하고는 다르다고요. 우리 애들이 어떻게 거기서 적응을 하겠어요? -모조품, p42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단편선 중 <모조품>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저기서 나이지리아를 지방으로, '여기'를 서울로 치환해보자. 어디서 한번쯤 들어본 것 같은 말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이 책에는

전쟁과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돌아온 엘리트(유령);

미국과 나이지리아를 오가면서 자본사업과 스스로 이태오가 되어 현실판 부부의 세계를 대륙을 오가며 찍는 남자와 미국에서 자식을 키우는 여자(모조품);

엘리트 계층이 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으나 신부는 나이지리아 사람으로 구하길 바라는 조부모와 부모의 뜻에 따라 나이지리아에서 신부를 구해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남자(중매인);

백인들에게 맞설 수 있으려면 백인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며 가톨릭 교육을 시키는 할머니와 영혼만은 백인이 된 아빠, 그 아래에서 나이지리아인으로서의 긍지를 지키며 비판적으로 교육을 받는 손녀(고집 센 역사가)

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비주류에서 주류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내적 갈등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한국 버전으로 바꿔 말하자면 지방 출신의 서울 정착기 정도가 되겠다. 능이나 드라마에서 압구정, 수유리, 강변대로, 쌍문동 이야기 할 때 대체 어디에 붙어먹은 동네 이야기인지 못 알아들어서 답답했던 지방 사람이 대학 진학을 계기로 서울살이를 하면서 수도권 사람들만 알아들을 법한 이야기를 편히 듣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과정을 아프리카 버전으로 보여주는 작품인 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해서 지방 사람이 semi-서울러가 되며 느끼는 약간의 상실감과 정체성의 혼란, 그러나 일단 서울에 속해있다는 마음에 안심이 되기도 하는 이 이상한 마음들을 지방-서울이 아니라 나이지리아와-미국 구도에서 조명했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출세하고 싶다면 가능한 한 주류가 되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길바닥에 나앉게 될 거라고요. 당신도 여기서는 영어 이름을 써야 해요. -중매인, p.228

출세란 부와 명예, 권력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출세하기,  즉, 주류에 편입되기 위해 주류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행동양식을 따라 하는 과정에서 '난 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런 부유하는 정체성을 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할 터. <중매인>에서 남자는 주류사회의 문화를 더 적극적으로 학습하면서 극복하고, 여자는 꼭 영주권을 받아 미국에 정착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남편 몰래 후라이드 치킨이 아니라 나이지리아식 물에 빠진 닭요리를 해 먹으면서 나이지리아 문화에 대한 향수를 채워준다.


자칫 남자는 사대주의자라는 좀 부정적인 이미지로, 여자는 "세계화의 거센 흐름을 마주하고 공존에 다다르려는 주변인"이라는 진취적인 이미지로 비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쪽이 되었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남자와 여자 모두 자신이 생각하는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상황이라면,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서 남자와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았다. 사실 가장 쉬운 일 아니겠는가, 미국에서 영주권을 얻고 이질감없이 살아가기 위해 미국 사람처럼 먹고 입고 말하고 쓰는 것이.


여자는 미국에서 살기를 갈망하면서도(사실 나이지리아에서 여자는 결혼 못하고 있는 노처녀 대접을 받았으며 이모집에 얹혀살았다. 이 사람에게 미국은 정말 새로운 시작의 땅이자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영어 이름보다는 아프리카 이보족어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고 나이지리아식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남자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해온 사람이고 여자는 나이지리아에서 미국으로 갓 넘어온 사람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여자를 미국발 세계화의 흐름 가운데에서도 아프리카의 문화적 긍지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녀는 그저 관성처럼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자가 미국에서 살면서 백인 주류 집단의 문화를 접하고, 흑인 차별을 경험하고,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서 누구든 노력해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마케팅(?) 문구에 세뇌당하고, 미국 내 문명 홍수에 빠지고, 그곳에서 헤엄치는 것에 익숙해진 뒤에도 아프리카 이름과 음식, 아프리카 전통신앙을 고집할 수 있을까?


작가는 곧 나의 물음에 작품을 통해 YES라고 답해주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고집 센 역사가>의 소녀를 통해 오랜 미국 생활 후에도 나이지리아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두 나라 문화의 교집합에서 건설적인 비판을 하면서 성장하는 인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그리고 교육과 존엄성의 관계, 책에 인쇄된 딱딱하고 명백한 것들과 영혼에 새겨진 부드럽고 모호한 것들 간의 관계를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교과서에서 "벽지"나 "민들레" 같은 단어들이 나오면 머릿속으로 그릴 수가 없어서 얼마나 혼란스러워했던가를. 혼합물과 관련된 산수 문제가 나오면 커피는 무엇이고, 치커리는 무엇이고 왜 그 둘을 섞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어서 얼마나 고생했던가를.  
-고집 센 역사가, p281.

수학과 과학,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너무 반갑다. 새로운 문화, 다양한 사람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통해 시야가 넓어진다는 점도 좋다. 그러나 <고집 센 역사가>는 미국식 교육 혹은 가톨릭 재단의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시행되는 교육 내용이 너무 백인 중심적이어서, 나이지리아인의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다고 꼬집는다. <고집 센 역사가>에 등장하는 소녀는 나이지리아인으로서 중심을 잘 잡으면서 건강한 비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소녀가 교과서에 "벽지"나 "민들레" 같은 단어들이 나오면 머릿속으로 그릴 수 없었고, 커피가 무엇이고 치커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수학 문제가 힘들었다는 말을 듣고 또다시 서울생활 초보 시절이 떠올랐다. 대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가 대구의 유명 장소에서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찍어 올린 사진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대구에도 데이트하러 다닐 곳 많구나'

'어, 대구도 찾아보면 많다 인터넷에서 자꾸 서울만 소개해서 그렇지'


때는 2012~2014년 즈음이었는데, 이 때는 맛집을 소개하는 글에서도 '지방은 없어ㅜㅜ' 이런 댓글을 꽤 자주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가 서울에 왔을 때 홍대에 가서 시카고 피자를 먹고, 강남에 가서 엘리게이터 팬케이크라는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크림과 소스 개수가 다양한 팬케익을 먹었었다. 내 입장에서 이 두 가지 메뉴는 미국식인데, 친구는 드디어 서울 맛집을 다녀간다며 좋아했었다. 친구에게는 시타고피자와 엘리게이터 팬케익은 서울에 가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던 셈이다. 나는 내가 말투까지 바꾸면서 서울생활에 너무 잘 적응한 나머지 서울공화국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울에 어찌되었든 기반을 마련했다는 생각에 빠져서 여러 지역 문화와 나의 정체성 사이에 건강한 비판으로 시멘트칠을 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어쩌나도 미국에 간 나이지리아인들에게 미국문화의 거대한 파도가 온몸을 처얼썩 치고 갔던 것처럼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정착해가는 과정에서 서울생활에 대한 동경, 아무도 없는 화장실임을 알면서도 바퀴벌레가 도망갈 시간을 주기 위해 불을 켜고 문을 여덟 번씩 두드린 뒤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던, 닭장 같은 하숙방 생활에 대한 환멸, 언제 까지 잠시 머물다 갈 월세방 생활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한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외로움, 먼저 취직한 오빠가 모은 돈과 부모님께서 판 지방 아파트 값을 모아 마련한 서울 거처로 얻은 안정감, 광화문 관련 뉴스 영상 속 배경이 더 이상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고 일상처럼 흘러가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생경함을 모두 겪어 온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딱 <중매인> 남자 인턴, <모조품>의 인용구에 등장하는 말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커리어를 계발하려면 서울에 붙어 있어야 해. 모든 것은 서울과 경기에서 가장 먼저 시작해. 수도권에 꼭 붙어있어야 해. 그래야 뒤처지지 않아.'

'대구에 가서 대구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과 일을 하면 따돌림당하지는 않을까? 내가 그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서울에 속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불안함과 열등감을 느끼게 되지는 않을까?'

 

이 책은 나의 이런 생각이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류문화를 접하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야기를 통해 깨닫게 해 주었고, 건강한 비판이라는 시멘트를 마련하여 부유하는 정체성을 묶어둘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변해가게 될까? 주변인이나 경계에 있는 사람을 지나 핵심에 속하게 될 날이 올까? 아니 그런 날이 꼭 와야 하나?


아직도 부유하는 정체성을 지니고서 경계선에서 맴도는 반서울반대구: 반셜반구 오찬우의 <숨통> 리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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