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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Aug 16. 2020

아직도 학자들은 백인들의 신발에 발을 욱여넣는다

페르디낭 요요노(심재중 옮김) <늙은 흑인과 훈장> 리뷰

 서너 명의 마음 맞는 사람이 모여 독서모임을 한 지도 어느덧 1년 5개월 정도가 되어 간다.

최근에는 문학책을 많이 읽었는데 해외문학은 주로 영미권이나 프랑스, 독일 작품을 읽어왔다. '해외'문학인데 너무 영미권, 프랑스, 독일 작품만 많이 읽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면서, 아프리카, 중남미, 동유럽, 동남아시아 등 평소에 잘 접하지 못했던 지역의 문학을 읽어보자고 뜻을 모았다. 시작은 프랑스어권 흑아프리카 문학 작가로 분류되는* 카메룬 출신 작가 페르디낭 요요노의 <늙은 흑인과 훈장>이다.



이 책은 백인이 원주민이 살던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 들어와서 땅을 빼앗고 개종을 강요하자, 기존 지역 유지였던 메카가 아들을 전쟁에 보내고, 가톨릭 세례를 받으며, 땅의 일부를 기부(?)하여 파리에서 온 고등판무관으로부터 훈장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훈장을 받을 정도로 백인에게 꽤 협조적이었다는 이야기인데, 결국 메카가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흑인 사회에서 지주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이면에는 백인에게 협조적인 자세가 있었다. 즉, 흑인 사회에서 메카의 위치는 스스로의 힘으로 존경을 얻어낸 것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자에게 복종하고 얻어낸 감투인 셈이다.


아내 켈라라는 자신들이 두 아들을 백인들의 전쟁에 내몰고 얻은 것이 고작 훈장 하나라는 사실에 오열한다. 메카도 곧 백인이 하는 말은 겉치레일 뿐, 백인은 자신들을 결코 친구로 받아 줄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쇠 채찍으로 맞고 유치장에 갇혀 혐오가 가득한 시선을 받은 뒤 처절하게 깨닫는다.


메카는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새똥을 머리에 맞고 그 똥을 문지르면서 "새똥을 머리에 맞으면 길하다"는 아프리카의 격언을 생각하고, 표범쥐는 길을 잃지 않지!라고 아프리카 속담을 외치면서 길을 찾는다. 마을에 도착해서는 여느 때와는 다르게 가톨릭 식의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 아프리카 식으로 춤을 추고, 양의 창자를 먹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점차 착한흑인증후군**에서 벗어나 다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의 배경은 1950년대로 추정되며, 이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이자 카메룬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기 10여 년 전이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이 확정되고, 홍콩에서 영국 국기가 내려갈 때 영국 사람들은 대영제국의 내리막길을 체감하고 눈물지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식민지 지배를 받는 곳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아직도 제국주의의 잔재는 음식, 복식, 건물, 언어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남아있으며 현대에는 미국 발(發) 문화 제국주의가 세계를 휘감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근까지 피부로 느낀 부분은 학계에서 영어의 파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어권 연구자와 비영어권 연구자의 다른 출발선

아비투스라는 단어,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을 거다. 이 용어를 가장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로디외다. 부로디외는  계층에 따라 향유하는 문화가 다르며, 학교에서는 상위계층의 문화에 더 밀접한 방식으로 지식과 관습을 가르치기 때문에, 상류계층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하류 계층 학생들은 구조적으로 학교에서 성적을 잘 받기 힘들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때 만든 계층에 따라 향유하는 문화가 곧 아비투스다. 교육학이나 사회학 외에 많은 곳에서 활용되는 '아비투스'가 처음 실린 논문은 프랑스어로 작성되었다. 따라서 이 논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건 논문을 출판한 지 3년 후, 어떤 학자가 로디외의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면서부터다.


이 사실을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한 후 한 달째가 되던 때에 알게 되었는데,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서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EU와 UN의 공용어 중 하나인 프랑스어로 혁신적인 개념을 소개하는 논문을 썼는데도 영어로 번역되고 나서야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연구자의 핸디캡을 알려주는 가장 적절하고도 충격적인 일화인 것 같다. UN의 공용어로도 쓰이는 프랑스어로 몇십 년 동안 회자되는 개념을 소개하는 논문을 써도 연구 성과가 묻히는 마당에,  국제기구 공용어도 아니고 식민지배로 인해 한국어를 제2외국어처럼 쓰는 나라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한국어로 논문을 쓴다면 어떻겠는가?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석회로 그린 원 안에 차렷하고 가만히 서 있는 메카의 모습은 마치 영어실력의 한계로 고립되어 있는 연구자처럼 느껴졌다

결국 한국에서 연구를 하더라도 학계에 속한 다양한 학자들과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영어로 글을 쓰고 말을 해야 한다. 솔직히 영어를 일상에서 쓰지 않은 비영어권 대학원생의 입장에서는 영어가 곧 석회로  원이다. 언제든 폴짝 뛰어넘어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쉽지 않다. 비영어권 연구자에게 영어로 소통하는 학계의 환경은 투명한 장벽과 같다. 이 장벽을 깨지 못하면 석회로 만든 원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벌 받듯 혼자 고립되어있었던 메카 같은 처지가 된다.


'저 사람들은 구두를 신어도 아프지 않아서 좋겠어'.... 메카의 발은 백인들이 신는 구두에 들어가도록 생겨 먹지가 않았던 것이다. (p.95)


백인들의 복식에 맞는 구두에 발을 욱여넣고 원 안에 서서 백인 고등판무관을 기다리면서 메카는 백인들은 자신의 신체에 맞는 신을 신어서 좋겠다며 부러워한다. 나도 영어를 원어민만큼 잘하는 사람이나 그에 준한 실력을 가지고 영미권 대학원에 유학을 간 사람이 종종 부럽다. 그들에게 국내 학회에 논문을 투고하는 일은 국내 무대 데뷔이자 국제무대 데지 않나. 내가 한국어로 논문을 써서 투고하면 영어로 초록(요약)과 제목을 싣는다고 할지언정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외면받은 거다. 초록에 제목만 알아들을 수 있어서 어디 인용조차 할 수 없는 논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할 테니까(나도 아랍어, 독어 등 내가 모르는 언어로 쓰인 논문은 같은 이유에서 그냥 건너뛴다... 허허.. 내가 모르는 언어를 번역기를 써서 번역해 읽을 정도의 열정은 없고, 또 누군가 영어로 비슷한 내용의 논문을 썼을 거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학문 분야는 영어로 정리되었고, 새로운 지식 또한 영어로 남겨진다. 또 언택트 시대의 중요자원인 인터넷 서버는 어떤가. 서버를 구축하는 데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영어를 기반으로 만든 언어들이고, 서버 주소는 월드 와이드 웹(www)으로 시작하는 알파벳 단어 조합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지식과 정보가 결국 영어로 정리/표현되는 문화식민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메카는 결국 백인들의 신발을 벗어던지고 다시 흑인의 신발로 갈아 신었다. 나는 백인들이 짠 교육과정을 한글로 옮긴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을 받고, 미국과 서유럽 세계를 동경하는 분위기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그 나라의 패션과 요식업 프랜차이즈를 소비하면서 살아왔다. 대학원에 와서 그래도 나의 영어 실력이 영어 논문을 검색해서 읽어나갈 정도는 된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곤 했다. 나는 어쩌면 이미 백인들의 신발을 신고 있는 게 디폴트가 되어서 어떤 것이 내게 편안함을 주는지 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일 수도 있다. 과연 대학원생인 나는 메카처럼 내 발에 맞는 편안한 신발로 갈아 신을 수 있을까?비영어권 연구자로 출발하여 국제무대에 영어 없이, 혹은 최소한의 영어로, 혹은 그들의 연구 문법을 최소한으로 따르면서 데뷔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이상 영어제일주의 연구 생태계에서 한국어로 연구 내용을 남기고 졸업장을 착즙 하여 대학원 생활과 연구의 의의를 찾으려고 했던 한 대학원생의 프랑스어권 흑인문학 <늙은 흑인과 훈장> 감상기였다.



*작가 소개글에 의하면 페르디낭 요요노는 카메룬에서 태어나 프랑스 대학에서 경제학, 행정학을 전공하였으며 카메룬 독립 이후에는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하여서, 이 작가의 작품을 아프리카 문학이라 하지 않고 프랑스어권 흑아프리카 문학이라고 분류하는 것 같다.

**'착한아이증후군'을 문맥에 맞게 변형하여 쓴 것이다. 착한아이증후군은 남들이 '착하다'라고 평가할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일탈을 하고 싶거나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어도 그것을 억제하는 증상을 뜻한다. 착한흑인증후군이라는 단어를 통해 권력자인 백인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메카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2000년대 중반 베이징올림픽을 하기 전 즈음에는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수도 있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꽤 있었던 것 같다. 뉴스에서, 주변 어른들의 논쟁에서, 학교 수업시간에 자주 위와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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