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주간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찬우 Sep 05. 2020

섬세한 애벌레에게는 무늬만들기가 필요해

지속가능한 노력을 위해. 김원아&이주희「나는3학년2반7번애벌레」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앞길도 보이지 않아
나는 아주 작은 애벌레  
(중략)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 YB <나는 나비> 노래 가사 중에서

노래 가사에서도 그렇고 <꽃들에게 희망을> 같은 작품에서도 그렇고 애벌레나 번데기는 나비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으로 그려지곤 한다. 생물학에서도 애벌에나 번데기는 성체인 나비가 되기 위한 준비 단계로 보기는 한다. 그런데 그건 성체가 되어서야 '자손 번식'이라는 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이나 생태학에서는 개체군을 번식을 통해 유지하는 것 혹은 자손에게 유전자를 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나비 되기"에 관심을 두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나비 단계를 애벌레나 번데기보다 값어치 있게 생각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자신들의 삶에서 70% 가까이를 애벌레로 보내는 이들의 소중한 애벌레로서의 하루하루에 "나비가 되려는"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프레임은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이어서, 애벌레의 삶에 비해 나비의 삶에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매겨서 문제다.  애벌레로 사는 동안 나비가 되는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요소가 아닌 것들은 모두 무시하고 넘기거나 그렇게 하도록 주변의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배경은 3학년 2반 교실이고,  철저하게 애벌레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3-2 담임선생님과 학생들은 성긴 방충망이 설치된 상자 안에서 배춧잎 등을 먹이로 주면서 나비 유충: 애벌레들을 키운다. 애벌레들은 태어난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지는데* 주인공 애벌레는 일곱 번째로 태어난 애벌레라서 7번이 되었다.

잎사귀에 무늬를 만들면서 양분 섭취를 하는 7번 애벌레. 아이들과 7번은 무늬를 통해 서로를 알아본다.

7번 애벌레는 다른 애벌레와는 달리 예술적 감각을 타고난 것 같다. 잎을 한 입 물었더니 생긴 둥근 모양에 감탄하고, 이내 둥근 무늬, 별 무늬, 하트 무늬 등을 잎에 만들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7번 애벌레가 만든 무늬를 알아보고 이 애벌레에게 특별히 "무늬 애벌레"라는 애칭을 붙여준다. 그러나 선배 애벌레들은 7번에게 경고한다.


- 우리의 목적은 나비가 되는 거야. 나비가 되어야 위험할 때 쉽게 도망칠 수 있어.
- 너 때문에 우리가 사람들 눈에 훨씬 잘 띄게 되면 여기 있는 모든 애벌레가 위험해지는 거야. 조심해.

어느 날, 2반 아이들이 선생님이 안 계신 틈을 타서 애벌레가 자라고 있는 상자에 손을 넣었다. 잎에 매달려 있던 어린 애벌레들이 우수수 잎에서 떨어지다가 부상을 입거나 죽는다. 선생님은 이 사실을 알고 아이들에게 집에서 애벌레의 먹이를 가져오라고 하지만, 아뿔싸 몇몇 이파리에 아직 농약이 묻어있다. 상자에 든 잎을 먹지 못하고 애벌레들이 말라가고 있지만, 2반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 잎이 많네~'라고 생각하고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비상 비상! 이제는 최고참이 된 7번이 나선다. 궁리하던 7번은 애벌레들과 몸을 움직여 X자를 만드는 예술을 펼친다.**

아이들이 이 X를 알아본다. 그리고 못 먹어서 골골대는 애벌레를 위해 애벌레 상자에 손을 넣었던 충걸이가 급식실로 달려가 쌈채소를 얻어온다. 때마침 그날 급식 메뉴는 보쌈이었다고. (ㅋㅋ이 작품에 나오는 이런 우연이 너무 재밌고 귀엽다. 학창 시절 향수를 불러와서 좋다)

충걸이가 급식실에 쏜살같이 달려가서 얻어온, 깨끗하고 안전한 쌈채소를 먹고 애벌레들이 다시 살아나고 자라난다. 7번 애벌레도 마침내 번데기를 지나 촉촉한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된다. 날개를 다 말리고 선생님이 철제 그리드 모양의 상자 뚜껑을 열어주고, 무늬 애벌레는 나비가 되어 바깥세상으로 날아간다.

 

나는 이 작품이 나비가 되기 위한 애벌레의 삶이 아닌, 애벌레로서 살아가는 동안의 애벌레의 삶의 생사고락을 조명해서 좋았다. 선배 애벌레가 말했던 것처럼 언제 닥칠지 모르는, 그러나 많은 사람이 경험했던 위험을 생각한다면 나비가 되는 데 몰두하는 게 생산적인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삶은 정말 보람차지만 동시에 고통스럽다. 고통이 계속된다면 보람이나 배움의 즐거움 따위 느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이를테면 애벌레가 잎을 너무 열심히 먹은 나머지 과식(?)으로 골골대게 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몰입에서 오는 고통을 좀 달래줄 수 있는 즐거움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나는 오직 나비가 되기 위해 잎을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못 먹을 때까지 먹고 쉬고 또 먹는 이 작품 속 애벌레들의 삶보다는 7번 애벌레의 삶이 "지속 가능해"보였다.



미련하게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 3개월은 공부가 매우 잘 되었다. 4~6개월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7개월째부터는 몸 이곳저곳이 아프기 시작했다. 9개월째부터는 손발 여기저기에 알 수 없는 수포가 생겼다. 11개월째부터는 도서관에 가려고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왠지 숨이 가빠지는 것 같았다. 시험을 잇따라 망쳤다. 방송용으로는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여서, 비방용으로는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에 수험 판을 떴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서, 나는 어떤 일에 집중하는 일은 큰 보람과 큰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내게는 때때로 작은 고통도 크게 느껴져서 보람을 잠식해버릴 때가 있다. 기회가 되어 학교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더니, 좋게 말하면 섬세해서, 조금 덜 좋게 말하면 예민해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평을 들었다. 무늬 애벌레처럼 섬세한 내가 나비가 되고 싶다면 지금 이 애벌레~번데기 생활을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요소를 갖출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을 나름대로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선배 애벌레는 무늬 애벌레에게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최대한 잎을 먹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늬 애벌레의 무늬 만들기는 7번 애벌레가 무늬 애벌레라는 정체성을 만들어가게 해 주었고, 이를 통해 애벌레로서 사는 삶에 즐거움을 느꼈으며, 바람에 한번 고꾸라져도 곧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오를 줄 아는 나비가 되었다. 나는 나를 포함하여 기쁨도 아픔도 크게 느끼는 섬세한 사람들이 아픔에 너무 젖어들지 않게끔 각자의 '무늬 만들기'를 하면서 애벌레 시절을 나름대로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다. 7번 애벌레(무늬 애벌레)처럼 말라죽기 직전의 상황에 처해도, 쓸데없어 보였던 무늬 만들기: 그 하나의 즐거움이 자신을 위기상황에서 빠져나가게 해주는 방편이 되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애벌레들끼리 매긴 것 같다. 아이들은 애벌레들을 번호로 부르지 않고 '잎에 무늬를 만드는 무늬 애벌레' 식의 이름을 붙여준다.

**애벌레 버전 몸으로 만든 타이포그래피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일어나면 너무 소름 끼칠 것 같다. 외계인이 애벌레로 변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난 이제 어쩔 수 없는 어른인가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리카 출신 미국 이민-지방 출신 서울정착의 평행이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