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주간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찬우 Sep 08. 2020

연애란 동경과 연민의 줄타기인가 관성인가

프랑수아즈 사강, 김남주 역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자신의 이해심과 애정으로 인해 그녀가 슬그머니 그(로제)의 상담자 역을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점점 더 커져 가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바로 그녀의 삶 아닌가. 그런데 그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고, 그녀는 정말이지 존경받을 만한 신중함으로 그가 그 사실을 잊는 것을 돕고 있는 셈이었다. (p.15)

사랑(연애)이란 무엇일까. 동정과 연민은 사랑이 아니거나 사랑을 희석해버리는 감정일까? 그렇다면 동경과 연민은 사랑일까?


작가는 우리나라로 치면 '우롱차 좋아하세요..?'느낌이 들 정도로* 프랑스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아 데이트 코스로 자리 잡은 건 아니라는 브람스 음악을 제목에 넣어서 호기심을 자극하더니, 서른아홉 살 여자 폴이 사랑이라고 믿는 두 가지 관계와 현실과 허무 그 어드메에 있는 결말을 보여주며 독자의 마음이 숙연해지게 만든다.


 어? 어어어~어어! 쾅. "즐거운 시간 되셨습니까 안전바를 올리고 조심해서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느낌이랄까.



서른아홉의 폴은 성숙하고 교양 있으며 전형적으로 40대 로맨스에 어울리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폴은 손가락질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살고, 로제의 외도가 멈추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냥 적당히 눈감아준다. 그런데 이런 폴이 순수하고 저돌적이면서 어쩐지 자신의 스물다섯을 연상케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종종 원숙한 모습도 보이는 시몽에게 사랑을 느낀다.


결국 폴과 시몽은 로제가 파리를 떠난 사이 한 달이 넘게 폴의 아파트에서 함께 지낸다. 시몽은,  이런 스물다섯이 세상에 정말 있을까 싶기는 하다만, 젊은이 중에서도 상 젊은이여서 무단결근을 하고 폴을 기다릴 정도로 하루 종일 폴을 생각하고 폴을 위해 사는 일에 심취한다.** 폴은 이런 시몽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상 젊은이의 열정이 부담스럽다. 폴은 시몽이 스물다섯에 맞는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가길 원하고, 결국 기차를 타고 이태리나 스위스로 가서 아름다운 관광지를 보고 고급 호텔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행을 준비한 시몽 대신 자주 어린 창녀와 밤을 보내지만 산속에 있는 집에서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는 휴가를 가겠냐고 묻는 로제를 선택한다.


책에서 폴은 로제가 자신에게 힘든 일을 상담할 때, 이 관계는 이상하다고 느낀다. 또, 폴은 시몽에게 모성애를 느낄 때 이것은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나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모성애인지 고민한다. 아무래도 폴은 기본적으로 남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기 힘들어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연애를 하면서도 연민이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로제와 시몽에 대한 폴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로제에 대한 폴의 감정은 동정과 연민으로 느껴진다면, 시몽에 대한 폴의 감정은 젊음과 순수에 대한 동경과 연민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감정이 모두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모두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독 드라마 <밀회>가 많이 떠올랐다. 폴은 김희애 배우가 맡은 오혜원, 로제는  혜원의 남편 준형,  시몽은 유아인 배우가 연기한 이선재가 혜원을 사랑하는 방식과 닮았다. <밀회>의 혜원도 폴처럼 처음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인 선재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애써 무시하려고 한다. 이 둘은 어쩔 수 없는 끌림을 느끼면서 서로를 챙겨주고 응원하며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혜원은 자신과 음악에 순수한 열정을 보이는 선재의 모습을 보고 재벌의 페이퍼컴퍼니 만드는 일 등을 하며 일등 비서, 아니 어쩌면 비선으로 활약하던 삶을 접는다.


인물들이 서로 사랑하는 방식은 <밀회>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닮았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이 내게 주는 감정은 극과 극이었다. 전자는 왠지 모를 뭉클함을 주었다면 후자는 허탈함을 느끼게 했다. 아마도 밀회는 판타지 같은 사랑이 지나치게 현실적인 무대에서 펼쳐지고 현실과 판타지를 아슬하게 넘나들다 주인공이 한층 성장하며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뭉클함, 감동,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 같다. <밀회>의 결말은 드라마적 판타지가 충족된 느낌이라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결말이 너무나 현실에서 자주 볼 수 있을 법하다. 로제에게 돌아간다니..! 내가 봤을 때 로제와 폴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다. 내 눈에 폴은 로제와 함께하는 삶에 길들여진 것처럼 보일 뿐이었고, 로제는 사회적인 이미지, 고상한 신사 이미지를 만드는 데 폴이 적당한 여자여서 오랜 시간 함께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폴이 로제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로제가 폴 없이 사는 삶이 괴롭다고 느낀 건 그저 익숙했던 삶의 양식에 변화와 균열이 일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즉, 정지해 있던 물체는 정지하려 하고, 운동하던 물체는 계속 그 속도로 운동하려는 관성처럼 폴은 그냥 자신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삶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다는 '사랑의 덧없음'을 극대화시켜주었다고 본다.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누구나 자기만의 정의가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아직 못 찾은 것 같다. 동정과 연민도 사랑이 아니거니와 동경과 연민도 사랑은 아닌듯하고, 그렇다고 폴과 로제처럼 남들에게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끌고 가는 감정도 사랑은 아닌 것 같다. 어렸을 때에는 나와 연인이 동시에 좋아하는 무언가를 아무런 사심 없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그 모습이 좋아서 양보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겪어보니 치킨 다리 좋아하는 커플이 만나서 한쪽이 다른 쪽에게 다리 두 개 다 양보하는 것은 알아주면 땡큐고 몰라보면 호구되는 길이지, 사랑은 아닌듯하다. 아, 작가의 목적이 적어도 내겐 아주 잘 전달된 것 같다. 덧없다 정말.



*가 생각해냈지만 정말 찰떡같이 잘 달라붙는 것 같다. 프랑스 문화와 우리나라 문화를 모두 잘 아는 분께 프랑스에서 음악회 데이트 신청을 할 때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묻는 말이 대충 카페 데이트 신청하면서 우롱차 좋아하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냐고 한번 물어보고 싶다.

**생각해보니 젊은이의 패기로 열렬한 구애를 했던 청년이 있긴 하다. 「작은 아씨들」의 로리다. 조에게 네가 너무 좋다며 대학 수업도 좀 째가면서(?) 대시를 했으나 거절당하고 조의 동생과 결혼했다. 사랑이란 감정은 정말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무엇인가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섬세한 애벌레에게는 무늬만들기가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