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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Sep 01. 2020

오늘, 개인정보와 식빵을 맞교환했다

QR코드에 저장된 내 개인정보는 누구에게 전달되며 어디까지 수집될까

퇴근길에 라이프스토어에 입점했다는 빵집에 들렀다. 홍보기사를 봤는데 식빵이 정말 예술이란다. 그렇다면 먹어봐야지!ㅎㅎ 마침 지나가는 길이라 일단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지침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인지 2~3평짜리 빵집에서 빵을 사는데 QR코드를 찍어야 한단다. 여기 앉아있을 것도 아닌데 QR을? 조금 당황스러웠다.


빵 하나 먹자고 가로세로로 알차게 저장된 내 개인정보를 넘겨야 할까? >>오찬우는 8월 31일 학교에 집으로 가는 길에 빵집에 들렀다<<라는 TMI는 대체 누구에게 전달되는 걸까? 일단 수집해놓고 쓸데가 생기면 꺼내겠다는 의도인가?


여러 생각을 하면서 빵집 앞에 서서 잠시 고민했다.

모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나 개인의 영향력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 것 같고, 퇴근길에 빵 사먹었단 얘기는 누군가에게 흘러들어 가도 코로나 19가 창궐하는 가운데 쇼핑을 했다는 질타를 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한 마디로 내 개인정보의 가치, 나의 동선이 밝혀지는 데에 대한 두려움을 빵 냄새가 이겼다는 뜻이다.


 카카오톡에 접속, QR코드 이미지를 열어서 내가 퇴근길에 빵집에 들렀음을 인증했다.

개인정보와 돈을 주고 교환한 식빵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쫀쫀하고 고소했다. 겉은 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데 결이 살아있다. 그렇게 식빵으로 두 끼를 먹고도 남아서 9월 1일 아침에 커피를 곁들여 또 먹었다.


그런데 식빵이 눈에서 사라지고 나니 다시 스멀스멀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정말 나의 개인정보를 퍼주고 살 만한 빵이었나? 내 개인정보가 정말 식빵 정도의 가치만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저 QR 에는 나의 어떤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것일까. 나의 거주지와 동선은 물론이고 내 휴대폰 번호도 저장되어 있을 거다. 개인 인증, 은행업무, 중요한 행정업무 처리 전 인증 등 오찬우임을 증명하는 업무를 모두 스마트폰을 통해서 하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QR코드에 저장된 내 폰 번호가 내 정보를 해킹하고, 내 메일 주소를 해킹하고 그 메일 주소로 접속할 수 있는 어플에 접속하여 다른 사람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나의 메시지를 클릭했는데, 알고 보니 클릭 한 번으로 돈이 빠져나간다면..?


터무니없는 공상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말 이런 제도를 국민 식음료 구매 시간 및 동선 수집에만 쓸까? 가장 근본적으로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어쩌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에게 오찬우라는 사람이 학교 갔다 집에 오는 길에 빵을 샀다는 정보를 주는 것 자체가 꺼림칙하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개인정보 공개는 어디까지 해야 하고, 움직임의 자유는 어디까지 추적 당해야 하는 걸까.


식빵 하나 사는데 내 정보를 꽁으로 넘기고, 빵이 사라지고 나서야 이성을 되찾아 이대로도 괜찮은지 고민 중인 어느 철없는 청년이 철들어 가는 과정을 담은 글이었다.

개인정보와 재화를 넘겨주고 받은 식빵을 야무지게 먹고나서야 시스템을 비판하는 나. 반성한다. -오찬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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