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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Sep 11. 2020

오늘, 나 때문에 학생이 울었다

타는 마음에 탄산수를 술처럼 벌컥이면서 하루를 반성하다

오늘 나 때문에 학생 두 명이 담임선생님께 크게 혼났다.


온라인 실시간 수업 시간에 조별 활동을 하였는데, 두 명의 학생이 화면만 켜 놓은 채 아예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한 명에게는 수업시간에 주의를 주었고, 다른 한 명은 솔직히 나중에 제보를 받아서 알게 되었다. 나도 수업시간에 제대로 체크를 못한 부분이 있는 셈이다. 온라인 수업도 수업이고, 학생도 수업에 참여할지 말지 정할 권리가 있을 수 있으나, 조별 활동은 문제가 다르다.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팀의 활동이 돌아가지 않고, 남은 학생들이 활동 마무리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으며 불만이 폭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내가 다 했는데 쟤도 같은 점수를 받아요?!" 맞는 말이다.


학생 1은 비디오는 켜 놨지만 수업시간에 천장만 보여줬을 뿐, 모습을 드러내지도 반응을 하지도 않았다. 이를 수업시간 중에 발견하여 여러 번 채팅과 음성으로 혹시 몸이 아파서 수업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라면 답을 달라고 말하였다.

학생 2의 비디오는 책상 의자를 비추고 있었다. 출석을 부를 때는 자리에 있었기에 '왜 학생이 자리에 없지? 화장실에 갔나?'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같은 조 학생의 제보로 학생 2가 조별 활동에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생 2가 왜 자리를 비운 것인지 의아해하면서도 때마침 다른 팀에서 나를 호출하는 메시지를 보내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이때 2야, 거기 있니? 조별 활동에 참여해야지!라고 말을 했어야 하는데. 혹시 몸이 아파서 자리를 비운 거냐고 채팅이라도 남겼어야 했는데 나의 큰 실수였다.


조별 활동은 25분가량 진행되었다. 50여분의 수업시간 중 20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준결석처리가 된다. 결과라고 하던가. 나는 수업이 끝난 직후에도 나타나지 않는 학생 1과 2에게 1:1 채팅으로

- 20분 이상 공석이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사정이 있었으면 미리 나와 같은 팀 친구들에게 사정을 설명했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출석에 반영할 것이며 같은 팀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사과하고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길 바란다-라고 아주 딱딱하고 사무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학생 1은 복통이 있었노라 답을 해주었고, 학생 2는 반응이 없었다.

1에게는 다음에는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해달라고 다시 채팅을 보낸 뒤, 출석부에 [학생 1 몇 시 몇 분~몇 분 결과(복통)]이라고 적었다. 2는 아무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20분 이상 결과라고만 적었다. 나는 학생들의 사정을 충분히 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찝찝했으나 내 할 일은 제대로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서상 기록을 제대로 했을 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한 것은 아니었다.



내 수업 시간 바로 뒤에 이 학급 담임선생님의 수업 시간이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채팅을 보내느라 쉬는 시간까지 그 교실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할 거 많으세요? 다음 시간 세팅을 좀 해야 하는데
- 아, 제가 수업시간에 자리를 비웠던 학생들에게 채팅을 좀 보내야 해서요. 금방 마무리될 겁니다.
누구예요? 여기 우리 반인데! 누구예요? 얘들 정말.. 얘들이 첫 번째가 아니거든. 좀 뭐라 해야겠어.


그때 나는 하필 음소거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학생들은 나와 담임선생님이 나눈 모든 대화를 들었을게다. 이게 나의 첫 번째 치명적인 실수였다. 두 번째 실수는 담임선생님께 내가 학생들과 이미 소통을 끝낸 상황이라는 점을 알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담임선생님과 위 대화를 나눈 후 종이 쳤고, 나는 다음 수업을 하러 황급히 짐을 챙겨 이동했다.

점심시간에 들어보니 담임선생님께서 두 학생을 크게 혼내셨고, 한 학생은 눈물을 흘렸단다. 이들의 입장에선 담임선생님 시간이 아닌 때에 저지른 일로 혼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담임선생님의 권력을 빌려 자신들을 크게 혼나게 했다는 생각에 짜증 나고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쌍방향 온라인 수업에서 비디오 켜 놓마치 자신이 자리에 있는 것처럼 위장한 채 조별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은 부분은 마땅히 혼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수업시간에 일어난 일이니 만큼 내 선에서 마무리지었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리를 비운 사정을 조금이라도 들어줬어야 했다. 소통하려는 마음이 있는 선생이자 어른이라면 왜 그랬냐고 먼저 물었어야 했다.


 학생들에게도 담임선생님께도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학생들은 상황을 "전달받은", 그 상황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담임선생님께 혼나야 했으니 억울한 부분이 있었을 테고, 담임선생님께서는 자기 학급의 학생이 수업시간에 불참했다는 말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사명감에 학생들에게 더 큰 소리를 내셨을 테다. 이래저래 내가 융통성 있게 일을 잘 처리하고 마무리 지었다면 모두가 행복했을 일들인데.. 나의 잘못이 크다.



학교를 나서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휴대전화 메모장에 학생 1과 2의 이름을 썼다. 다음 주에 잊지 않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다음 주 쉬는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1:1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루에 일곱 시간이나 컴퓨터 앞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배가 아팠다는 아이의 건강 상태를 물어봐주고, 조별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조원들에게 꼭 양해를 구하라고 말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낼지 머릿속으로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학생들의 마음에 흉이 져버린 후에야 그들에게 대화를 건네는 셈이 될까 봐 걱정스럽다. 그들의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습윤밴드를 붙여주고 왔어야 했는데... 아직 어린 10대의 마음에 선생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않고 담임 선생님께 자신이 잘못했다고 알린 점, 그것 때문에 다른 친구들 앞에서 크게 혼나야 했던 점이 수치스러움과 억울함으로 남아 하루 종일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봐 걱정이 되어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넌 이런 잘못을 했고 이만큼 점수를 깎을 거고, 출석부에도 적을 거야. 담임선생님께도 말했어.


그들이 받아들인 나의 채팅을 요약하면 위와 같을 것이다. 소통의 의지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잘한 일은 크게 칭찬해주고 힘을 북돋아주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사정을 들어주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알려주면서 다음에 나아지는 모습을 기대하겠다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여러 모로 나의 바람과는 한참 동떨어진 선생님이 되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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