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그렇게 별로인가요
말로 맞으면서 뇌가 굳어가는 대학원 생활
석사 논문 심사가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논문에 매진해야 했던 한 학기 동안 지도교수님과 대화를 하다 보면 왈칵 눈물을 쏟는 증상 때문에 한동안 고생을 했고, 논문 데이터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교수님께서 A라고 말씀하셨다고 이해, 왠지 불만족스러운 곳이 있어도 거기에 맞춰가려 노력했다. 그러나 다음에 가져가면 A는 너무 갔다거나 좀 아닌 거 같다는 말을 듣기 일쑤였고 나는 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계속 혼란스러웠다.
여차저차 현대의학과 심리상담의 힘을 빌어 졸업논문의 골격을 갖춘 글을 거의 다 완성해서 방 세미나에 들고 갔다. 당신의 글이 좀체 무슨 말인지, 왜 그런 목차로 글을 쓰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사람들의 말에 눈앞이 캄캄했다. 비문도 없고 오탈자도 없는 글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니. 그렇게 반복해서 내 글의 핵심이 무엇인지 단락 앞에도 쓰고 뒤에도 썼는데.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탓으로만 돌리기엔 왠지 모를 서운함과 원망이 위장부터 등뼈, 명치를 지나 어깨까지 올라와서 나를 짓누른다. 점점 어깨가 안으로 말리고 허리도 함께 구부정하다.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방문을 멍하니 바라본다.
'시작은 이렇지 않았는데.'
또 과거가 나에게 불쑥 다가오는 걸 보니 얕은 우울함이 찾아오나 보다.
논문을 고치고 또 고친다. 내 마음에 드는 걸 생각하는 게 아니라 독자와 심사위원의 맘에 들 걸 생각하면서 고쳐나간다. 잘 배우고 싶다, 연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 따위는 사치고, 어느새 졸업만을 바라보고 그냥 꾸역꾸역 글자를 채운다.
대학원에서는 무엇을 배워 나가는 걸까
대학원은 어떤 배움을 가르치는 곳인가
자꾸만 작아지는 내 모습에 속이 상한다. 나는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내 글이 그렇게 이해가 안 되나? 내가 혹시 사람들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괜히 상처를 받는 걸까?
심사는 다가오고 마음은 심란하고 뇌는 돌아가질 않는다. 백질과 회백질이 아니라 누렇게 떠서 황질이 되는 건 아닐지.
오늘도 말로 맞아서 뇌가 좀더 굳어진 느낌으로 잠을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