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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Dec 12. 2020

왜 우냐고 묻지 마세요. 저도 모릅니다.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은데 우는 이는 당사자도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른다

석사 논문 심사를 받았다. 

감히 00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겠다는 사람이 이런 논문을 써 왔냐며, 너무 단순하다는 평이 과반이었다.

 단순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대로 진행하면 정말 단조로운 논문이 될 것을 알고 지도교수님과 박사과정 서생님께 조언을 구했었다. 그러나 내가 계획한 논문 개요는 박사과정 가서나 하고, 석사과정 논문은 단순하지만 성실하게 쓰라는 조언과 함께 아래와 같은 말을 들었다.

"정 쓰고 싶으면 공부해서 써."

공부해서 써도 된다는 건지, 그건 무리라는 건지 혼란스러웠지만 맥락상 후자일 거라 생각했다.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 중에 자주 '자료 분석을 왜 이렇게 해야 하는 걸까? 자료를 그냥 죽 늘어놓기만 해도 내가 쓴 내용은 다 알겠는데, 이걸 이렇게 써서 논문이 되나?' 의구심이 들었고, 박사과정 선생님과 교수님께 도움을 청했다. 질적 연구란 데이터를 귀납적으로 열심히 들여다보고 묶으면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겸손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의심이 들더라도 지우자. 시키는 대로 착실히 하자. 하다 보면 뭐라도 나온다는 마음으로 자료 분석을 하고 논문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논문 초고를 완성하고 심사를 받았다. 결과는 조건부 통과. 

심사 진행을 맡은 교수님께서는 일주일도 채 안 되는 남은 기간 동안 지도교수님의 지도 아래 잘 수정하고, 다시 검토를 거쳐 통과시켜 주시겠다고 하셨다. 순진하게 '이런 결정도 있구나. 수정 잘하면 통과시켜주신다는 말씀이신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도교수님께서 졸업논문 심사도 화상회의로 진행한 이 시국에 나를 학교로 불러서 해 주시는 말씀을 듣고서야 정확하게 알았다.  그건 불통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고, 나에게 (지도교수님의 면을 봐서) 심사 기회를 한 번 더 주신 거라고.

지도교수님께서 우리 학교에 부임하신 이후 석사논문심사에서 불통을 받은 건 내가 처음이라고 덧붙여 주셨다.



심사위원들의 피드백은 대부분 수긍이 됐다. 

논문 개요가 개요라기엔 중요하지 않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OK), 자료 분석과정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실제 데이터를 가져와서 어떻게 정리했는지 더 자세히 보여줘야 한다(OK), 서론 앞부분 연구 배경이 이상하다(... 연구 배경이 아니라 수업을 개발하게 된 배경이었던 것 같다 OK), 그림에 대한 언급이 앞에 있고 정작 그림은 뒷장에 나온다(OK), 이론적 배경이 너무 적다(OK), 연구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바꿔라(너무 세부적이어서 고친 것인데, 이번엔 너무 포괄적이었나 보다. 다시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하게 바꿔야겠다. 이것도 OK)

그러나 받아들이면 졸업을 포기하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어서 외면하고 있던 내 내면의 목소리를 심사위원이신 교수님의 말씀으로 전해 듣게 되었다.


"이걸 꼭 이렇게 분석해야 알 수 있는 건가요? 이거 석사 논문 치고는 너무 단순한 거 아니에요? 뭐 이론적으로 이렇다거나 하는 게 있어야지 그냥 봐도 훤히 보이는 걸 분석이라고 하면..."

 

맞는 말씀이지만 그 자리에서 내가 동의를 하거나, 디펜스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줌 회의로 진행되었던 논문 심사에서 나는 저 피드백을 들은 후 바로 대기실로 옮겨졌고, 다시 화상회의 화면을 통해 교수님들과 만났을 때는 '합격 유보' 상태로 만들어 놓을 테니 수정을 해 오라는 결론이 난 상태였다.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 고치라는 거 잘 고쳐서 졸업장만 따자.' 

그런데 왠지 속이 많이 상했다. '그러게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해도 되는 거냐고 그렇게 질문을 했건만!! 그리고 교수님께서 하라는 대로 연구결과를 구성했고, 서술했는데 왜 지도교수님께서는 심사위원들께서 대체 이걸 분석해야 알 수 있냐는 말에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걸까.'

그러다가 또 나를 탓했다. '그러게 자료를 더 열심히 꼼꼼하게 들여다봤어야 했는데, 나란 사람 자료 정리 더럽게 못하나 봐. 논문 형식도 꼼꼼하게 안 챙기고... 아휴 한심해라...'


그런 혼란 속에서 교수님과 대면했다.

아노미라는 말이 딱 맞았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을 꼭 고쳐서 다시 제출하고 싶었다. 좋은 결말을 맺고 싶었고, 무엇보다 내가 그 정도로 지진아는 아니라는 사실을 심사위원이셨던 교수님은 물론 나에게도 입증해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완성된 논문 제출일이 1~2주 앞으로 다가온 지금에 와서 연구결과를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지도교수님께서는 논문 수정에 성실하게 임해줄 수 있냐고 내게 물으셨지만, 나는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걸 왜 망설이냐는 물음이 뒤따랐다. 대답을 하려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마스크를 써서 숨은 막히고, 하필 눈물이 살짝 맺히는 것도 아니고 흐윽흑 꺽꺽 숨이 막힐 지경으로 터져 나와서 더 당황스러웠다. 

지도교수님께서 자꾸 대체 왜 우냐고 물으시니 더 미칠 것 같았다. 우느라 숨이 차서 말도 못 하는데 그 사이에 왜 우는지 어떻게 생각해서 대답까지 뱉으려니 더 숨이 찼다. 차라리 소리를 내면서 오열했으면 좀 나아졌을까?



시간을 두고 돌아보니 혹시 내가 너무 막막해서 울었나 싶지, 다시 그 상황이 되어도 내가 울었던 이유를 바로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은 뇌에 일종의 경험 데이터베이스, 요샛말로 빅데이터를 가지고 사는 셈이니, 넘어져서 울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나의 기억 데이터 모음의 귀납적 해석에 따라 '아, 넘어져서 눈물이 나는군!'이라는 판단을 내려 줄 것이다. 고추냉이를 먹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 매운 것을 먹으면 눈물이 나는군!'. 이런 경험이 모이면 '통각 자극이 크면 눈물이 나는군!'이라는 결론이 저절로 도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석사과정 논문 심사는 처음이고, 지도교수님 앞에서 눈물을 쏟는 것도 처음이다. 모든 게 처음인 상황이라 내가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통각 자극이 큰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데 숨이 넘어갈 듯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런데 옆에서 묻는다. "왜 울어? 이게 울 일이야? 아니 내가 뭐라 했어?"


아니 내가 왜 우는지 당장 어떻게 아나. 눈물은 신경과 호르몬의 불협화음으로 쏟아지는 건데,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질 때, 그것도 윗사람이 "왜 울어?"라고 하면 난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건가. 옆에서 자꾸 왜 우냐고 물으니 대답하기가 더 곤란해졌고, 눈물이 왈칵도 아니고 콸콸 쏟아졌다. 


다시 말하지만 눈물은 알레르기 작용이거나 호르몬과 신경 작용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왜 눈물이 나는지 아는 이유는 오랜 시간 축적한 경험 데이터베이스가 '나는 슬플 때, 매울 때, 외로울 때 운다'라는 데이터 해석 결과를 이미 도출해놨기 때문이다. 쌩판 새로운 경험을 하다 눈물이 났는데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아니고 통각을 자극한 것도 아니다? 그럼 당장은 왜 눈물이 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는 사람 옆에서 섣불리 왜 우냐고 물어보지 마시길.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은데 우는 사람은 자기도 그 당시엔 왜 우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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