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면접보자마자 계약을 하고 왔다
띄워주기와 후려치기 그 어드메에 홀려 계약을 하고
어제는 서울에 폭설이 내렸다.
어제 밖을 나갔다가 두 번이나 넘어졌고 그보다 더 걱정인 것은 차들이 나보다 느리게 기어가고 있었다는 거였다. 오늘은 석사 졸업 후 처음으로 잡힌 기간제교사 면접일이었고, 나는 절대 늦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잠을 청했다가 그냥 밤을 샜다.
석사졸업이 확정된 후 25군데의 학교에 넣을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중 두 군데 학교에 원서를 넣었는데 소위 강남3구에 있는 한 학교는 내게 연락이 오지 않았고, 서울 끝자락 어드메에 있는 학교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누구나 들으면 아는 학교 이름들이 있다. 특히 강남 일대에 있는 학교나 자사고, 특목고가 그렇다. 사람들은 그런 학교에 들어가면 마치 삼성, 네이버, 카카오같은 우수하고 널리 알려진 대기업에 들어간 것 마냥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오늘 면접을 본 학교는 그 지역에서는 나름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을지 모르나, 다른 지역 사람들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비강남권 일반고였다.
잠깐 기간제교사를 하고 시감강사를 하며 느낀 점은 지역에 따라 은근한 고교서열화가 심하다는 점이었다. 우선 영재고, 과학고, 외고, 자사고를 가장 쳐 준다. 다음엔 강남 서초 송파에 있는 학교를, 그 다음엔 목동, 노원상계 쪽, 그 다음엔... 뭐 이런 식이다. 이런 레벨 나누기는 학교 문화에 악영향을 끼친다. '우리 애들은 그런 거 못해. 적당히 하자.', '그래도 강남인데/목동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이런 분위기가 몇 년, 몇 십 년을 이어진다고 생각해보자. 전자는 마치 천장이 낮은 유리병에 벼룩을 넣어둔 것과 같다. 천장이 사라져도 낮았던 천장 높이 딱 거기까지만 뛸 것이다. 후자는 천장이 높거나 없다. 더 높이 뛰려 노력하는 벼룩이 들어있다.
불안하리만치 면접 결과가 좋았다. 오늘은 수업 시연만 하는 날이었는데, 이 학교는 과학선생님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는지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집으로 보내면서 내게만 잠시 교무실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다른 내용으로 시범강의를 한번 더 시키시려는 것인 줄 알았다. 박빙이구나! 학교 홈페이지를 뒤적이며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는지 재빨리 훑었다. 나의 강점 중 어떤 면을 수업에서 드러내야할지 짱구를 마구마구 굴리는데 교장선생님께서 나를 교장실로 부르셨다.
학교에 대한 장황한 설명 끝에 그의 말의 요지를 요약하자면, '우린 또 공고내고 학교에 나와서 면접보는 수고로움을 감내하기 싫으니 확답을 주고 가라' 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찬우선생님은 사실 어디에서든 연락을 받을 만한 인재예요. 하지만 경력이 짧아서 많이 떨어질거야. 우리학교는 일 배우기도 좋고 경력 쌓기도 좋아요. 또 이 자리는 누굴 대체하는 자리가 아니니, 잘만하면 정교사가 될 수 있어요.'
병 줬다 약 줬다, 띄워줬다 후려쳤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마지막 한 방. '내가 서울시내 학교 교장들과 친분이 두텁습니다.'
나는 그가 나를 잘 봐주는 점이 좋기도 하였고, 원서를 접수하는 일에 지쳐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여기저기 찔러보고 다니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게 내심 두려웠다. 나는 계약을 하겠다고 말했고 그길로 계약서를 쓰러 행정실로 갔다.
"집이 강남쪽인데 여길 와요? 예전에 일했던 학교가 더 좋은데?"
"거긴 시간강사였대"
"아..."
사람도 학교도 급이 나뉘어져 있구나, 이분들도 이미 여러번의 학습으로 좋게 말해 주제파악을 하시면서 자신들의 위치를 특목고 자사고 학군지 일반고 다음으로 놓는구나 싶었다. 이런 환경에서 남들처럼 주제파악하며 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부디 같은 교과 선생님들은 천장의 한계를 모르는 벼룩같은 존재들이길 바라며, 내가 소위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잘 아는 학교에 근무하게 된 것이 아니라서 아쉬워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빨간 버튼으로 눌러서 지운 채 눈 쌓인 길을 복잡한 발걸음으로 걸어 내려왔다. 나만 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