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회사를 지키고 싶은데, 권한이 없다

조직을 지키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by June

조직을 지키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회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퍼포먼스나 인격을 가진 시니어급, 그 이상의 직원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주변 동료에게도, 경영진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리더들에게 더 그렇다.


단순히 일을 못하는 경우라면 차라리 낫다. 배우려 하고,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개선의 의지가 있다면 시간은 해결책이 되기도 하니까.


문제는 또다른 경우다. 피드백을 거부하고, 조직의 기대 수준을 억지로 낮추고, 때로는 사내 정치로 버티려는 태도. 이쯤 되면 단순한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에 대한 태도’의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다. 한국의 노동법은 노동자를 보호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해고는 언제나 분쟁의 가능성을 내포한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옳다. 강한 권력은 절제되어야 하기도 하고, 경영진의 판단이 언제나 정의롭다고 믿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리더로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조직을 해치는 사람까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하는가? 구성원들의 의지를 꺾고, 기준을 흐리고, 성과를 방해하는 행동도 ‘근로자 보호’라는 이름 아래 같은 무게로 다뤄져야 하는가?


해고를 쉽게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조직을 지키려는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권한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법은 개인을 보호한다. 그렇다면 조직은 누가 보호할까? 성과를 내기 위해 밤을 새우는 사람, 기준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 깎아내는 사람, 묵묵히 팀을 지탱하는 사람들. 그들의 사기는 숫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닳아간다.


특히 ‘썩은 물’이라 불리는 이들의 태도는 조직을 서서히 침식시킨다. 직급이 방패가 되고, 근속이 권력이 되는 순간, 피드백은 공격이 되고, 타인의 개선 제안은 ‘감히?’가 된다.


그들이 회사 위에 서는 순간, 발전은 멈춘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배운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대충 오래 다니며 버티면 되는구나.”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나는 그 생각을 내가 속한 조직에서 배우는걸 원치 않는다.


소수 기업은 이 균형을 제도적으로 설계하려고 노력한다. 토스는 성과 기준과 조직 적합성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원칙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왔다. 평가와 피드백을 제도화하고,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분명한 조치를 취하는 구조를 갖추려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물론 모든 기업이 같은 방식을 취할 수는 없다. 업종도, 규모도, 문화도 다르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보호’만 있고 ‘책임’이 없다면 그 부담은 결국 성실한 구성원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해고가 어렵다. 그 배경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악의적 부당함, 권력의 남용, 생계의 불안 등... 하지만 지금 사회의 리더들은 또 다른 종류의 균형을 꽤 고민하고 있다. 보호와 책임 사이에서, 공정과 관용 사이에서.


우리는 대부분 내가 속한 회사를 건강하게 지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일 잘하는 기준’을 흐리지 않고자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묵묵히 잘해내는 동료들을 지키고 싶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를 인식한 사람이 분명한 경고를 줄 수 있는 구조, 권한과 책임이 함께 작동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직 정답을 모르지만, 다만 바라는 건 하나다. 구성원의 권한과 책임이 조금 더 균형을 이루는 구조를 갖는 것이다. 회사 위에 문제적 사람이 서는 순간, 조직은 조용히 퇴행할 수 밖에 없다.


그걸 막는 일 역시 누군가의 권력 남용이 아니라, 건강한 책임의 행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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