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참나무 식탁, Table 009
10월의 둘째 주 일요일 아침 10시,
나는 그의 집 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마지막으로 이 곳에 온 것이 한 달 하고도 열흘쯤 지났다.
문 안쪽에서 잠시만, 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어 딸깍, 소리가 났고, 문이 열렸고,
그가 보였다.
한 달 열흘만에 보는 얼굴이
웃는 것 같은 어색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와 헤어지던 날,
그는 10월 둘째 주 일요일 아침에 그의 집에 와줬으면 한다고,
다시 만나자거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그래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몰아치다가 소모되어버렸던 날이었다.
그의 이야기에 깔린 뜻 같은 것을 헤아릴만한 여유도 감정도 없었다.
그래서 무심히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돌아섰다.
무심할 수 없었던 한 달 하고도 열흘이 지난 뒤,
나는 멋쩍은 몸짓으로 현관에 서 있었다.
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공간에 머물러 있는 생활의 냄새가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내가 알던 냄새의 일부와 그렇지 않은 일부가 가려내기 힘들게 섞여있어
마음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말없이 창문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그를 따라 걸어가 창문 앞 테이블 앞에 섰다.
테이블에는 2인 분량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갓 한 듯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에는 콩이 드문드문 보였고,
콩나물국이 밥그릇 옆에 놓여있었다.
아몬드를 넣어 볶은 멸치가 있었고,
노른자가 새어나온 계란 프라이가 있었다.
그가 앉으라는 손짓을 해서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먹자,라고 그가 말했고 나는 그래,라고 들릴 듯 말듯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가끔 들려왔지만
비교적 조용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부옇게 흐린 날씨 탓에 창밖의 세상은 밝은 무채색 공기로 꽉 차있는 듯했다.
우리는 천천히 밥을 먹었다. 뚜둑, 하고 아몬드 씹는 소리와
그릇에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밥알을 한 알 한 알 터뜨리듯 느리게 먹었다.
밥알이 고슬고슬하였고 씹을수록 단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가 먼저 밥그릇을 다 비우고 수저를 조용히 놓았다.
나는 남은 한 숟가락의 밥을 먹고 옆에 놓인 물을 마셨다.
물이 내 목을 타고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후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왜 10월 둘째 주 일요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웃음의 여운을 얼굴에 잠시 담고 있었다.
그냥, 아무 날도 아니니까,라고 그가 말했다.
개천절도 한글날도 아니잖아. 그리고 더는 아무 말도 않았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한 그릇 더 줄까.
응, 내가 대답했다.
그는 공기를 떨치듯 자리에서 일어나
밥그릇 두 개에 다시 밥을 퍼왔고
우리는 동영상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다시 말없이 밥을 먹었다.
아까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은 여전히 고슬고슬했고,
아까처럼 아몬드 씹는 소리와 젓가락 소리가 들렸다.
날이 개이려는지 뿌연 공기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한 달과 열흘 동안 내 머릿속을 헤매던 구름들도 옅어지고 있었다.
궁금했던 것들도, 물어보고 싶던 것들도
내 입에서 사라져가는 밥알처럼 하나둘씩 흩어져 사라져갔다.
그가 나에게 지어준 처음이자 마지막 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