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이라는 상상력을 찍다

2019 인디다큐페스티발, 국내신작전 3

by 흰지
2019 인디다큐페스티발, 국내신작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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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배우들 / 채형식 / 122min 15sec


어디에선가 읽었다.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던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좁은 프레임의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자꾸 화면 밖을 넘어서는 액션을 취해 NG를 내곤 한다고. 여기 연극배우들을 찍은 다큐멘터리가 있다. 영화 <보이지 않는 배우들>은 배우의 연기 '바깥'을 포착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영화가 자아내지 못하는 연극의 무엇, 극영화가 달하지 못했던 다큐멘터리의 어떤 것으로, 자꾸만 '바깥'으로 이탈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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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본업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배우인데 카메라 앞에선 20대 후반의 네 여성들은 조금 다르다. 연기를 '하는 도중은' 분명 배우이건만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은'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정의내려야 하는지 모호하다. 대개는 생존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뛰고 공연 준비를 하거나 선생님으로서 연기를 가르친다. 그렇게 돈이란 걸 벌지만 세상은 본업과 현업의 경계, 그 간극을 자꾸만 묻고 다그치려고만 한다. 연기가 좋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로 번져나갈 때, 예술가의 엄연한 노동, 이 노동마저 기회가 가닿기 어려운 여성배우라는 필드가 고개를 든다. 그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배우들은 한 정치극의 공동연출을 맡게 된다. 캐스팅부터 대본 설정까지 모든 회의와 조율에 참여한다. 영화는 그들의 일상과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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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회의하고 있는 이들과 연극 '바깥'의 일상을 보여주면서도 그들이 연기하고 있는 모습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카메라 앞에선 배우들이 그들의 일상의 행위를 구가할 때 각각 다른 위치에서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재차, 삼차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마치 극영화와도 같은 이 다큐멘터리 속에서 바깥이 타자의 입을 경유하여 '다시 움직이는' 것만 같다. 반복되어 재사유되는 이 상상력의 행위는 얼굴만 클로즈업된 회의 장면에서 고개가 기울어지며 프레임 밖으로 나가버리는 그들의 얼굴, 혹은 공연 연습을 하다가 상반신이 올라가며 덩그러니 남아있는 하반신과 맞닿아있다. 이는 극영화에서의 NG인가, 다큐멘터리에서의 일상성인가. 연기인가, 혹은 비연기인가. 배우의 '본업과 현업'이라는 문제만큼이나 영화 속 경계 또한 모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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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영화는 결국 제 갈 길을 간다. 검은 화면의 흰 글씨로 다큐멘터리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스토리를 서포트하는 인서트뿐만 아니라 목적이 없어 공연 일주일 직전까지 헤맸던 연극 혹은 이 길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드는 삶, 그 목적없음의 방향성은 영화의 목적 그 자체가 되어 어떻게든 이 극을 이끌게 만든다. 결국 무사히 공연을 올렸던 배우들처럼 영화 또한 이전 장면의 비연기와 그 다음 장면의 연기가 서로 합치되고 부딪히는 순간을 만들고서라도 무언가를 창작하는 예술과 노동의 경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보이지 않는 배우들>의 미덕은 바로 이 곳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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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좀비 오디션을 준비하고자 하는 네 명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물린' 이후 꿈틀대며 다시 살아서 움직이는 건지, 죽어서 썩어가는 것인지 모를 꿈틀거림은 영화 전체에서 비롯한 배우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결국 그 꿈틀거림이 이 세상을 떠돌다 증발하는 것만은 아니다. 배우들의 얼굴이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 움직이는 하나의 상으로 기록된 것처럼 한 배우가 배우는 판소리의 울림으로 연습실 공간을 채우기도 하고 발성수업을 즐겁게 따라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변모하기도 한다. 손뼉을 휘두르면 박수를 치게 되어있는 법이다. 다큐멘터리가 만드는 이 공명은 바깥을 상상하고 그것을 쓰고 읽게 만든다. 그야말로 '인용'으로써 다큐멘터리 작품 자체가 물음이 된다는 <보이지 않는 배우들>의 문답은 기대 이상의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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