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관계

너를 사랑하지만 너를 미워해.

by 오후

무엇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었다.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들어가고 나서는 버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배우고 익힌 것들은 며칠이 채 되지 않아 바닥을 보였고 직군과 상관없어 보이는, 개인 비서인지 모를 업무가 늘어갈수록 내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나 싶은 의구심에 괴로웠다.

괜한 질투심에 미움을 받는 것도, 뻔히 괴롭히는 것을 알면서도 상한 마음을 속으로만 앓아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타이밍 좋게 건강이 나빠진 건지 건강마저 나빠지자 옳다구나 싶어서였는지 지금에 와서야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후 여러 회사를 노마드족처럼 전전했지만 결국 나는 무리의 일원이 되는 과정을 견뎌내지 못했다.

학교의 장학생은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회 부적응자로 전락했다.

온통 나에 대한 실망과 좌절뿐인 결과들에 얼룩져 매일 나는 다음날 눈이 떠지질 않기를 바라며 잠들곤 했다.

일용직과 다를 바 없는 드문 단기 투입 아르바이트를 찾아 생활을 근근이 연명하며 대체로 많은 시간을

살아있지만 죽은 채 지냈다.

겁도 많고 용기가 없어 죽지도 못했다.

그간 철야로 망가진 생체 리듬은 정상수치의 호르몬에서 17배나 올라있었고

코가 다 헐어버릴 비염으로 인한 콧물은 눈물을 대신하듯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호흡이 원활하지 못하니 심장도 쿵쾅쿵쾅 무리를 해대 가슴이 아팠다.

가슴을 때린다고 숨이 잘 쉬어지는 것도 아닌데 내게 얹힌 무게를 소화시키고 싶었던 건지 체증을 내리려 그렇게도 두드려댔었다.

불안은 불면을 가져왔고 원인 모를 두통을 해결하고자 찾은 병원에서 처방 내린 하루 4~5개 봉지 약을 10개월째 먹다 너무 낫지 않아 그만둬 버렸다.


그런 나를 보며 유약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이들을 잡고

나는 나를 말하지 못했다.


대신 쓱쓱 나를 하얀 화면 위에 나를 꺼냈다.

말할 수 없었던 아픔을 토해내며

어둠 속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서

스스로 만들어낸 사명을 소명이라 믿으며 애정을 담아 걸었다.


이따금 살고 싶어 택한 나의 길로 인해 초라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그림으로 담으며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글로 담으며

살고 싶어서 지우고 채우고 그렸던 나로

나는 살아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나를 먹여 살려주지 못해 미우면서도

나를 살려주어 고마운

나의 일로.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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