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웠어요. 감사합니다.
코로나가 번지기 몇 해 전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숙소에서 여유 있게 출발한 것 같은데 어느새 빠듯한 기차 시간. 교통 신호가 바뀌자마자 급히 발을 내디뎠다. 그때 다리 각도가 이상했는지 지면에 발이 닿는 순간 무릎이 틀어진 느낌이 들었다. 심상치 않은 고통이 느껴졌지만, 이번 기차를 놓치면 족히 4시간은 기다려야 하기에 아픔을 감수하고 계속 뛰었다.
그런데 역에 가까워질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탁탁탁탁”에서 “타 닷 타다”로 발소리가 늦춰지다가 이내 ‘뒤뚱뒤뚱’ ‘절뚝절뚝’ 거리며 걷게 되었다. 여행은 고사하고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쉽게도 뛰어서 도착한 역은 집으로 가는 방향의 기차가 없었다. 기차 환승을 두 번을 더 해야 했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 기차에 몸을 실었다.
환승역에 도착 후 다시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게이트로 걸음을 옮기는데 몸이 평소 같지 않아서인지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평소보다 4~5배의 시간이 더 걸렸다. 시간이 언제 다 가버린 것인지 이내 안내 방송이 들렸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무궁화호 1952 열차가 곧 출발하오니 탑승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안돼... 기다려줘요.’ 빠르게 기차를 향해 돌진하고 싶었지만, 극심한 고통이 느껴져 뛸 수가 없었다.
눈앞의 기차를 놓치면 이 몸 상태로 꼬박 하루를 다시 기다려야 하기에 속도를 내보려 했지만 발을 내디딜수록 고통이 진해졌다. ‘악’
“후후 하하” 고통을 감소시켜 볼 요량으로 복식호흡을 했다. 호흡과 다르게 빨라지는 심장 고동에 맞춰 무릎 신경은 끊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등줄기를 따라 굵직한 땀방울이 타고 내렸다.
부디 운행하시는 열차 승무원분께서 제가 열차에 오를 수 있도록 기다려주시면 좋겠다는 생각만 머리를 가득 메웠다.
“타다다다 타다다”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처럼 승차 시간이 빠듯한 승객이 뛰어오는 것 같았다.
‘아 저분 마음도 급하시겠다.’ 싶은 순간, 빠르게 내 옆을 지나던 이가 돌연 내 앞에 멈춰 선 뒤 거친 숨을 내몰며 자세를 낮춰 자신의 등을 내어줬다. 놀란 마음으로 바라보니 열차를 안내하는 역무원분께서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달려와 주신 거였다.
도움을 가릴 처지가 아니라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업혔다.
참 따뜻한 등이었다. 체온이 전해져서가 아니라 마음의 온기가 전해져서.
자신의 감정해소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해하는 소식이 잦아져 살기 험한 세상이구나 싶다가도 , 또 이렇게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몸을 먼저 움직여 선의를 베푸는 분들이 계셔서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살만한 곳 같기도 하다.
그때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장소에 덩그러니 남겨진 섬처럼 홀로 앉아있었을지도 모른다. 통증과 배고픔을 느끼며 기차가 떠나간 자리에 어둠이 짙게 내려앉는 풍경을 텅 빈 눈으로 바라보며 고독한 외로움을 느끼며.
어떠한 계산 없이 건네주신 그 따뜻한 호의에, 기꺼이 등을 내어준 헌신에 늦게나마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이 이야기는 그날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분께 드리는 감사의 편지이기도 하지만,
타인에게 다정한 손을 내미는 모든 분께 드리는 감사 글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당신의 친절한 마음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친절이 모두의 마음에 깃들어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고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감사 편지가 되길 바라봅니다.
내게 친절했던 당신들로 인해
저 역시 모르는 누군가의 짐을 잠시 들어주기도 하고
문을 붙잡아주기도 하며
티슈나 사소한 칭찬,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작은 손길을 보냅니다.
잦은 나의 호의가 또 다른 이의 호의를 부르는 세상을 만들기를 바라며
당신들이 주신 마음의 온기가 나를 거쳐 돌고 돌아 당신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대단하진 않아도 작은 불씨를 건네고 전해 조금은 더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 수 있길 소망합니다.
나의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삶의 행복으로 이르기를 바라며 짧은 편지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