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끈 손
식사하면서 TV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찬을 꺼낸 후 TV를 켰다.
채널을 돌리다 보니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이 방영하고 있었다. 아직 미혼인 나지만 나이가 이쯤 먹으니 미래 대비?를 위해 종종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데, 수위의 차이, 빈도와 기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도 부모님 입장에선 한 번쯤 금쪽이 시절을 거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그날 내가 본 회차는 시지각 장애를 가진 금쪽이가 나온 방송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금쪽이는 혼자 있는 것에 대한 공포가 많았다.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탔는데도 버스카드를 대는 것에도 어려움을 느꼈고 버스를 타고나서도 두려움에 엄마에게 매미처럼 딱 붙어있었다. 정차역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벨을 누르라는 엄마의 말에 버스의 누름 벨을 찾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다.
'나도 처음 혼자 버스를 타고 낯선 곳을 향할 때면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귀를 쫑긋 세우며 창밖을 살피곤 했지' 속말을 하는데, 나는 딱히 엄마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교육을 받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럼 나는 언제부터 어떻게 자연스럽게 대중교통을 이용했을까.
가만 보자... 언제였더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교에 들어가는 첫걸음, 새 학년의 시작을 들뜬 마음을 안고 필기구를 사러 갔던 날. 그래 그날. 돌아오는 버스에 방금 새로 산 필기구를 잔뜩 넣은 필통을 두고 내려 많이 혼나 진한 인상이 남아서일까. 대중교통을 이용한 최초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새로 산 필기구를 잃어버린 것도 속상한데 혼나기까지 해 설렘으로 가득 찼던 내 시작과 앞날이 다 망가져버린 것 같아 서러웠던 날. 그 버스를 언니들과 함께 탔다. 그날을 떠올리면 버스를 타고 미지의 영역인 낯선 동네로 향하던 두근거림도 함께 되살아난다. 언니의 손을 놓칠세라 손바닥 가득 눅진하게 배던 땀도.
이렇게 해야 돼. 따로 행동 요령이나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도록 표본이 되어준 언니들이 내겐 있었던 것.
언니들과 나이 차이는 5살과 7살. 자신을 챙기기 바쁜 나이에 동생을 데리고 나섰던 책임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들의 긴장감은 또 어땠을지. 지금의 내가 그녀들에게 갈 수 있다면 그 기특함에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고 싶다. 칭찬은 다 커서 들어도 좋기만 하니, 청소년에 접어든 그녀들도 기꺼워할지도 모르지.
어린 나의 손을 이끌었던 언니들은 내 학창 시절 졸업식 유일한 참석자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고등학교 졸업식은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중학교 졸업식 땐 대학생의 아우라를 뽐내며 더없이 멋지게 차려입고 와주었었다.
대학교 졸업사진을 찍을 때 입었던 첫 정장도, 고등학교 시절 변변한 사복 하나 없는 동생에게 첫 힙합바지를 선물해 준 것도 다 그녀들이었다.
언제는 다 자란 나를 보면서 아직도 꿈에서는 너는 어린아이로 나오고 구해줘야 하는 꿈을 꾼다는
내게 많은 처음을 안겨준 그녀들은
내 곁에서 나도 모르게 나를 성장시키고 챙겨주던 고마운 영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