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시작되는 그 순간 다양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대화가 잘 된다는 것과 막힌다는 것은 저에게 하루의 기분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슬플 때에도 대화하면서 풀어지기도 하고 기쁠 땐 대화를 하면서 기쁨이 더 배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화의 티키타카가 저의 인생에서 큰 범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30대 초반이 지나가고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억울한 일이 발생해서 싸우기도 하고 손절하기도 하고 말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제대로 알아가고 있는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말에 있어서 언제쯤 익숙함이 자리 잡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아직은 어리둥절하게 최대한 말을 줄이며 꼭 필요한 말을 하면서 분별력 있게 살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말실수가 없는 완벽한 하루가 쉽지는 않습니다. 말의 의도와 진심을 상대방이 모두 알 수는 없기 때문이겠지요)
완벽한 말이라는 게 어려운 것도 맞는 말이지만 제가 생각하는 말실수의 정의는 두 가지로 존재합니다.
첫 번째, 진짜로 악의적인 의도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말을 한 경우입니다.
이 입장은 사실 말실수라고 정의하기보다는 말 공격이라는 정의가 더 자연스러운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떠한 의도이든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한 것이니 말실수로 정의합니다. 본인이 듣기 싫은 소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 정답입니다. 말실수는 한 끗차이가 될 수 도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생각하고 말을 뱉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의도와 진심을 상대방이 오해하는 경우입니다.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준 사람에게 상대방이 상처받을까 봐 어울린다고 말하는 선한 거짓말(?)이 해당됩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한 사람이라도 긍정의 말을 해준다면 칭찬으로 해석될 수 도 있지만 진짜 안 어울리는 사람에게는 말실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시는 예시일 뿐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서 대화를 하려는 노력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어리고 분별을 잘하지 못할 테니까 하고 이해하려는 어른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의 말실수는 어른이 어른을 생각하고 듣는 대화이기에 철이 없다는 이미지를 주게 될 뿐입니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철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신중해지고 진중해지는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생각의 패턴도 달라지는 건지 예전에는 뽀루퉁했던 일들이 이제는 훌훌 털어내는 털털한 여유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점은 앞으로 저에게 좋은 방향성이기에 바뀌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말을 하다 보면 학력이 높아도 생각이 어떤 틀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과도 종종 대화를 하게 됩니다. 학력이 괜찮고 공부를 잘하면 당연히 대화의 깊이도 다를 줄 알았던 저의 선입견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 깨지고 있습니다. 대화는 결국 그 사람의 경험과 지내온 환경이 결정짓는 입장에 더 큰 동의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대화가 조금 더 생기 있고 진실되게 들리기 때문에 그만큼 티키타카도 재밌으며 주제도 다양합니다. 주제가 다양한 사람과의 대화는 나 또한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 대화를 하고 있을까? 가끔 객관적인 입장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다음 저의 브런치 북은 말에 대한 주제들을 구성해 보려고 합니다.
정답은 없지만 다양한 말로 이루어지는 "대화(converstation)"
그리고 다양한 감정들을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