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이였을 때가 있었어
펭수가 첫방송 되던 날, 리모컨 사수권을 쥔 나는 '지금 시간이면 그 똘기 가득한 펭귄 캐릭터가 나올 시간 아닐까?'하며 EBS로 돌렸다. 두 아이들은 '아빠가 웬일로 TV를 다 틀어?'라는 눈치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우리집에선 평일엔 TV시청 금지다. 오직 주말 아침에만 틀어준다. PD인 아빠가 TV를 못 보게 하는 건,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자녀에게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빌 게이츠가 자녀들에게 스마트폰을 14살이 넘도록 주지 않은 마음과 같다. 아동교육을 전공한 아내도 내 편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몇 번 따지고 들었지만, 그냥 포기했다. 그런데 그런 아빠가 TV를 먼저 튼다고?
이미 시작했다. 헤드셋을 낀 어마 무시하게 큰 펭귄이 갑자기 자기 유튜브의 구독자 수를 말하더니 뽀로로를 넘어설 거라고 대놓고 말했다. 뭐지? 이런 뻔뻔한 솔직함이란, 아! 유쾌 상쾌 통쾌한 천진난만한 철없음이여.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예의와 격식을 차렸던 어른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준 이 커다란 펭귄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야. 첫 방송부터 나는 펭수의 광팬이 되어버렸다. 우리 꼬맹이들? 두 눈은 펭수 눈이 되어 있었다. 100% 몰입되어, 물아일체의 경계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우린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가 생긴 거다. 나는 지금 책이나 미술작품이 아니라 펭수를 통해 내면과 만나고 있었다. 오직 아내만 그런 우리를 흘겨보고 있었다. "쯧쯧, 아빠라는 사람이.."
펭수의 눈과 입은 묘하다. 초점이 하나에 머문 상태, 넋 나간듯 금방이라도 침이 흘러내릴 것 같이 반쯤 벌어진 상태다. 무언가에 온전히 빠져들어 몸과 마음이 하나에 머문 순수한 경계에서 자주 보던 표정 아닌가? 나는 펭수의 얼굴에서 몰입의 순간을 느낀다. 시공간을 잊은 오락실에서, 빨간 책을 보다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기 직전에, 화장실에서 오래된 친구와 막 분리감을 느낄 때-. 아! 글이 저질스러워진다. 예시는 이쯤에서 그만! 그동안 쌓은 품격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펭수는 사회적 품격을 무너뜨려주는 녀석이다. 요 녀석!
나도 어렸을 적이 있었다. 세상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던 시간이 있었다. '안 돼!'라는 말을 더 많이, 아니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들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떼쓰거나 골내는 정도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시기 말이다. 괘심하긴 하지만, 미워보이지 않은 것은 그 바램이 소소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3선 의원이 되고 싶다거나, 친구나 동생들에게 분식회계나 주가조작, 향응 접대를 요구한 적이 없다. 그저 그네 한 번 더 타기, 혼자 수영해보기, 버스 타고 시내가기, 친구 집에서 자고 오기 같은 것들이었다. 아이의 막무가내 고집은 어른들이 눈 한번 찔끈 감고 해줄 만한 것들이다. 펭수의 고집도 딱 그 정도다. 그냥 귀엽다.
아이들은 뽀로로에 시큰둥한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정의의 수호를 외치지만 또한 폭력과 힘의 질서를 보여준다. 멋진 공격무기와 합체로봇 캐릭터는 어린이날이나 명절에 내 주머니 속을 훔쳐간다. 주식회사 손오공은 내게 폭력 기업이다. 그런데 왠일로 아이들이 문제집에 환호한다. 펭수 캐릭터가 그려진 문제집을 보더니 아이가 너무 좋아한다. 공부하겠다는데 무조껀 사줬다. 펭수는 적절한 정도의 버릇없음과 의외의 예의바름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지치지 않는 호기심과 탐구욕 덩어리다. 하지만, 펭수는 아이들만의 캐릭터가 아니다. 40대 아저씨의 맘 속에 어린시절까지 끄집어 냈으니 말이다. 자! 펭수애찬은 여기까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원래 제작방향은 시청자들의 반응에 맞춰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 고학년을 주요 타깃으로 했던 초기 설정값은 이제 30~40대 시청자까지 확대 되었다. 콘텐츠도 그에 맞춰 달라졌다. 뉴미디어 시대에 맞게 펭수라는 캐릭터 자체로서 존재하게 된 거다. 워크맨이나 와썹맨 처럼 펭수는 캐릭터로서 방송사와 프로그램을 넘나든다. 이슬예나PD 인터뷰를 보면,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만든 캐릭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유튜브로 빼앗긴 시청자들 EBS로 유입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젠 그 파급력이 어느 정도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펭수가 시도할 다음 이야기가 늘 궁금하다. 하지만 동시에 우려되는 지점도 이 부분이다.
포털사이트에 블로그와 카페가 생겼고, 소위 영향력이 큰 파워블로거 생겨났다. 아프리카TV가 1인 방송을 시작했지만, 수준 낮은 콘텐츠가 난무하면서 범국민적인 플랫폼이 되긴 부족했다. 그러나 유튜브는 강력한, 앞으로 더 강력해질 기준을 토대로 포털사이트의 영향력을 뛰어넘는 뉴미디어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사실상 유튜브를 뛰어넘을 플랫폼은 보이지 않는다. 틱톡? 글쎄 아직은, 그리고 앞으로도. 15초 내외의 짧은 영상이 주는 나름의 장점은 있다고 하더라도 지식, 정보, 교육 콘텐츠로는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아프리카TV가 유튜브를 반면교사 삼아 양질의 콘텐츠로 바뀌어 가고 있는 점이 더 긍정적으로 보인다.
나는 블로그에서 유튜브까지 뉴미디어 플랫폼을 관통하는 코드는 '개인'이라고 생각한다. 광고수익이 아니다. 개인 그 자체다. 개인이 이야기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졌고, 개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대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레거시 방송사 입장에서는 플랫폼의 변화가 사활이 달린 문제로 다가왔다. 프로그램이 아닌 캐릭터 자체를 내세운 것은 이런 뉴미디어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와썹맨과 워크맨은 그 중 한 발 앞서나간 선두주자이고, 펭수는 후발주자다. 하지만 더 강력하다. EBS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과거 추억의 캐릭터 모두를 TV 밖 현실공간으로 끄집어 내었다. 아육대를 흉내낸 이육대, 광고까지 진출한 펭수는 대형 방송사가 뉴미디어 시대에도 빠르게 대응해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타다. 이 지점에서 다시 개인을 떠올린다.
사실은 1인 크리에이티브의 시작은 유튜브나 아프리카 TV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방송사에서는 VJ 시스템이 있었다. 방송사에 '납품'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제작 방식은 같다. 영상편집이 PC 한 대로 가능하고, 핸드폰만으로도 양질의 촬영이 가능해지면서 영상 제작은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가능한 영역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개인이 노는 공간이 블로그에서 유튜브로 옮겨졌다. 이 중에도 오랜 경험과 팬을 거느린 이들이 선두로 치고 나왔다. 대도서관, 보겸, 양띵 등. 동시에 가능성 있는 크리에이터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MCN이 등장했다. MCN의 등장으로 1인 크리에이터가 사실상 프로덕션 수준의 제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이 꿈꾸는 자신들의 미래를 들어보면, 결국 자신들이 '작은 방송사, 기획사'가 되겠다는 것과 같다.
레거시 방송사의 막강한 자본과 기술, 인력 VS 100만 유튜브 또는 MCN의 각축장이 된 뉴미디어 시장에서 나는 과연 개인이 설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유튜브로 먹고살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필사적으로, 최선을 다해, 미친듯이 달려들어야 그나마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사업을 하든, 직장을 다니든 유튜브를 하든 9시 출근해 6시 퇴근하는 정도면 먹고 살만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시청자들은 재밌는 콘텐츠, 정성이 느껴지는 콘텐츠를 소비할 것이다. 운이 좋아 대박을 칠 수도 있다. 시기성에 얻어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양질의 콘텐츠여야 한다. 그건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잘하면 MCN에서 연락이 먼저 올지도 모른다.
이런 지점에서 블로그처럼 '내 이야기를 유튜브를 통해 해볼까'라고 생각한 개인은 어떨까? 문턱은 낮아졌지만, 들어와도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는 군중 속 외로운 곳이 될 조짐이 서서히 보인다. 파티가 열렸다. 핵인싸들이 즐비한 곳에 당신이 들어왔다. 눈길을 주는 몇몇이 있을지 모른다. 잠깐동안, 자! 이제 어떻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인가? 당신이 만약 개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개인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유튜브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한국의 유튜브 환경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펭수를 좋아하지만, 펭수와 같은 케이스가 늘어갈수록 1인 미디어의 환경은 레거시와 MCN이 장악할 것이다. 그곳에는 광고수익이라는 단물이 흐르고 있다. 큰 나무에 모여든 수많은 곤충들이 수액을 차지하려고 경쟁한다. 큰 나무는 조그만 딱정벌레부터 커다란 사슴벌레까지 품어준다. 심지어 그 벌레를 잡아 먹는 새까지 품는다. 만약 수액의 양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면, 몇몇 큰 벌레가 수액이 나오는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면? 사람의 시간은 제한적이다. 누구도 25시간을 살아가진 않는다. 광고는 무한정 늘지 않는다. 시청 시간도 유한하다. 수십 개의 채널을 구독해도, 결국 자주 가는 곳은 정해지고, 클릭을 유도하는 눈에 띄는 추천 영상도 알고리즘에 따라 좌우된다.
창의성과 아이디어가 넘쳐난다고? 개인과 전문가 집단의 싸움은 간혹 개인이 이길지 모르나, 장기전일수록 지니어스 집단이 이기는 횟수가 더 많아진다. 체력도 안되고, 누가 빠지면 다시 누군가 채워지는 시스템도 개인은 갖출 수가 없다.
김미경TV나 백종원TV는 이미 시작부터 개인이 아니었다. 촬영과 편집을 하는 팀을 갖추었고, 이미 인플루언서였다. 물론 유명인이라고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구독을 하고 보지만, 재미있으니까, 도움이 되니까 보게 된다. 그건 사실이다. 동시에 자주 들렀던 소소한 이야기의 개인 채널들에 방문이 뜸해졌다. 내 시간이 제약되어있으니까. 이번 글은 왠지 자꾸 길어진다. 이쯤에서 멈추자. 몇 마디만 더하고.
유튜브가 바라는 유튜브의 미래가 이런 모습일까? 글쎄. 그럴 리 없지만, 내가 만약 결정권자라면 이런 모습이 아니다. 뭐, 나야 수익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니까. 어쨌든 유튜브가 생각하는 유튜브의 미래가 어떤지는 앞으로의 유튜브 정책을 보면 드러날 것이다. 유튜브에서 개인의 이야기를 하기 힘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은 다른 플랫폼을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유튜브는 군림할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이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조차도 구글에서 제일 먼저 선보일지 모른다. 구글은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을 가진 곳이니까. 아! 브런치에게도 한 마디 칭찬을 해주어야지. 브런치는 '글을 쓴다 - 책을 낸다'라는 미디어의 원형을 선점한 유일무이한 플랫폼이다. 브런치 짱!
플랫폼은 영원하지 않다. 개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자,
포스트미디어 시대의 왕이 될 것이다.
-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