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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Nov 22. 2019

유니클로, 일본은 변하지 않았다

첫째, 먼저 그 사람들이 자기의 일과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고 그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만들고

둘째, 그 다음 그 모든 선인들의 무위와 무능, 악행을 들춰내고 과장하여 가르침으로써 조선인 청소년들이 아버지와 조상을 경멸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만들며

셋째, 그리하여 그것이 점차 자아 혐오증으로 발전하게 함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미 배움에 갈증이 심한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관하여 왜곡된 지식을 얻어 경멸적 혐오증에 걸리게 되면 그들은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질 것이니, 그때에 장식, 미화, 과장된 일본사적, 일본인물, 일본문화를 전하면 그 주입효과가 클 것다.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 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과 첩경이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문화통치의 수단으로 하달한 교육시책이다.

사이토 마코토(왼쪽) / 일제 전쟁영웅을 찬양하는 글을 쓰는 밀양 초등학교 1936 - 출처: 경남교육청

일제는 우리의 일과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고대사를 왜곡, 말살, 부정했다. 한국의 역사 영역에서 만주 등지를 제외하고 역사연구의 범위를 한반도 내로 국한시켰다. 위만조선이나 기자조선처럼 중국의 눈으로, 또는 일본의 눈으로 한국의 고대사가 기록되었다. 임나일본부를 한반도 남부에 한사군을 한반도 북부에 비정하여 우리 역사의 첫 시작이 식민지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논리를 정착시키려 했다.


선인의 무위와 무능을 과장하기 위해, 중세사를 부각했다. 당파싸움과 사화의 부정적인 면을 상세히 연구기술하고, 왕의 무능과 계층, 신분 갈등이 부각되었다. 맞다. 조선왕조의 기록과 유적, 유물이 상대적으로 많다. 누천년에 걸쳐 고대의 기록은 수거되거나 불태워지거나 사라졌다. 유적은 무너지고 그 위에 새로 지어지고, 유물은 부서지고 도난 당했다. 결국 역사는, 기억은 사라진다. 그래서 남겨진 것이 이야기이고, 겨우 신화라면, 그 신화를 역사의 범주로 불러들여 그 시대의 눈으로 재해석하려는 '관점'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역사연구에서 특히 고대사 연구에서 다양한 '관점'은 허락되지 않는다. 삼국시대부터만 하더라도 2천년이 넘는 한국사 임에도 유독 조선사에 집중되어있는 역사 연구서, 역사 대중서를 보면, 머리 잘리고 몸통이 잘린 고깃덩어리를 보는 것 같다. 살아 숨 쉬지 못하는 역사다. 사대적이고 식민주의적인 고대사는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높고 견고한 성이다. 그 성의 기초는 일제가 다져놓았고 광복 후에도 무너지기는 커녕 더욱 견고하게 지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친일은 정치의 문제만이 아니다. 역사, 문학, 법,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거미줄처럼 엮인 질기고 견고한 카르텔이다.


그리하여 이런 말이 생겨났다.

'조선놈은 때려야 말을 들어, 한국놈은 거짓말을 잘 해. 조선놈은 냄비근성이라 오래가지 못해.'

태어나서 서른이 넘을 때까지 일본 사람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말은 같은 한국 사람에 의해 들어온 말임이 분명하다. 마치 남 이야기를 하는 듯한 멸시와 비아냥, 조롱의 말의 출처는 어디일까? 굳이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 테다.


한국의 불매 운동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임원의 발언이 불씨가 되어 유니클로 불매운동이 크게 확산되었다. 이 말이 꼭 한국을 비아냥대기 위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유니클로의 매출에 영향을 줄 것이지만 정치 상황이 그리 길게 가지 않을 것이고, 곧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 만약 80년도 넘은 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뜬금없는 광고가 나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확대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래, 어저께 히트텍을 무료로 나눠주고, 텀블러와 쿠폰까지 주는 행사가 열리기 전까지 말이다. 줄 서서 들어가는 사진을 보고 우리들도 비난하고 일본에서도 조소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 말이다. 글에는 맥락이란 것이 있다. 역사에도 맥락이 있다. 모든 이야기에는 맥락이 빠지면 이해하기 힘들다.


유니클로의 행사도 맥락이 있다. 스마트폰 시대, 짧은 글이 유행임에도 사이토 마코토가 내린 교육시책을 서두에 길게 쓴 이유다. 정확히 10년 전 일본의 한 민속학자의 연구를 취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그는 일제시대 조선의 민속, 풍속, 민족종교, 신화를 수집 연구했다. 그가 한 연구는 일제가 조선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데 사용되었다. 긴 이야기이기에 구체적인 내용을 생략한다. 결론은 일제는 조선의 독립과 자주성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요소들을 찾아내 말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기껏 35년 정도를 지배하려고 그랬을까? 그러려고 우리 말을 없애고, 우리 역사를 없애고, 우리의 정신을 없애려고 했을까?


일본은 패망하고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친일파는 남겨졌고, 35년간 심어놓은 식민의식은 쌀독에 모래처럼 남아있다. 씹힐 때마다 아프다. 호사카 유지 교수가 밝힌 대로 일본 우익의 지원을 받은 '신'친일파가 유튜브를 통해, 책을 통해 소리를 키우고 있다.


나는 일본이 싫지 않다. 취재진이 왜 그녀를 찾았는지 짐작할 텐데도 그 민속학자의 따님은 우리에게 따뜻한 도시락을 준비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 손녀가 어머니께서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고 싶어 한다며 연락해 왔다. 나는 영상을 보내며 그녀에게 아직도 그때의 친절을 잊지 않았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나는 맹목적인 불매운동을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본과 중국과 미국, 동남아 제품의 구분의 경계가 무의미한 경제통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방송 장비만해도 소니나 캐논 제품이 없다면 대체상품이 당장 찾기 힘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이기 때문에 더더욱, '의식없음'을 경계한다. 그냥 '자존심'이라 표현하자. 자존심, 주권의식,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없음을 경계한다. 그래서 이 맥락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우려된다. 우리는 아직 온전한 광복을 맞은 적이 없다는 맥락 말이다. 식민사학이 버젓이 민족사학을 비난하고, 친일파가 버젓이 사회 지도층이 될 수 있는 나라가 과연 광복을 했다고 할 수 있는가 말이다. 아직 이 부끄러운 시간을 살아가며 그저 시간만 지났다고 광복 몇주년 기념행사를 하고 축하할 수 있는가 말이다. 유니클로 매장에 줄을 선 사진을 보며 비웃는 그들의 얼굴이 그려진다. 퉤!


유니클로가 펴는 전략은 일제의 문화정책과 맥락이 같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경험을 계속해서 경험하도록 하는 것. 결국 '한국인은 안 돼'라는 패배의식을 은연중에 심어두는 것, 일본의 극우세력이 아닌 한국 안에서 갈등을 부추기는 것. 그런 다음 일본의 제품을 문화를 의식을 심어 주는 것, 그래서 아베 정부와 극우세력들을 경계한다. 그들은 비열하다. 한국 내의 친일파라는 '바이러스'를 심어두었다. 겨울이 되면 독감이 유행하고, 백신을 만들어도 신종 바이러스가 생겨나듯,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늘 변종을 일으켜 살아남을 것이다.


우린 면역력이 필요하다. 변하지 않은 일본의 극우, 끊임없이 모습을 달리하는 친일파, 식민사관 이것들에 대해 대응하고 역사와 문화와 정신을 지켜내는 면역력 말이다. 그 시작은 '자존감'이다. 한국이라는 정체성이다. 내가 나를 자부할 때, 남에게도 당하지 않고, 남도 포용할 수 있다. 품격 있는 문화의 나라를 꿈꾸던 김구와 독립운동가들 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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