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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Nov 10. 2019

무엇이 바뀌었을까?

주권의 권리와 책임에 대해

꽃 피던 4월 봄날, 꽃이 졌다. 깊은 바닷속, 아직 채 겨울의 냉기가 사라지지 않았던 차가운 바닷속에 꽃이 졌다. 5년 전이다. 사람이라면 슬퍼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날에 벌어진 총체적인 참사의 퍼즐들이 5년이 지나서야 겨우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 위원회>는 지난 31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세월호 참사 구조 수색 적정성 조사 내용 중간발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배경 1

안산 단원고 학생 한 명이 세월호 사고 지점 100m 떨어진 지점에 발견되어 해경 3009함으로 옮겨졌다. 발견된 5시 24분에서 35분이 지난 5시 59분, 병원에 전달된 바이털 사인 모니터는 산소포화도 69%를 가리켰다. 아이는 긴급한 치료가 필요한 '저산소증'에서 생과 사의 경계선에 서 있었다.


배경 2

36분 뒤인 6시 35분, 3009함에 응급헬기가 도착했다. 응급구조사와 해경 직원은 아이를 들것을 들고 헬기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해경은 선내 방송으로 '익수자 P정으로 갑니다'라고 지시했고 응급헬기는 아이를 두고 돌아갔다. 같은 시각 B517 헬기가 3009함에 내렸지만, 20분 뒤 아이가 아닌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을 태우고 돌아갔다. 이보다 훨씬 전인, 5시 40분에 김수현 서해청장을 태우고 날아간 또 한 대의 헬기까지 합치면 3대의 헬기가 멀쩡한 사람을 태우거나 헛걸음을 하고 날아갔다. 아이는 처음 바다에서 건져 올려진 이후 무려 5척의 배를 이리저리 옮겨타며 밤 10시 5분에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발견에서 병원 도착까지 4시간 41분이 걸렸다.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혹시 그 현장에 있었던 누군가는 해경청장에게, 서해 청장에게 아이의 상태를 말하고 헬기를 양보하라고 건의했을까? 나는 이 기사를 접하고 이 문제를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하고 있지만 아직 답변을 얻지 못했다. 골든아워 같은 현실에 맞지 않는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그 지랄맞은 '알아서 기는' 관료주의, 권위주의 문화가 드러날까 나는 불안하다.


어느 지역 군수

2015년 7월 부산 기장군 군수는 공무원 5급 승진 인사에서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 1천 만원을 선고받았다. 올해 8월 군정 질의에서 그는 민주당 우성빈 의원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거나 고성을 질렀다. 그의 무성의한 답변에 우의원은 군수에게 어떻게 군수 역할을 하는지 물었고, 그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한다고 말했다. 우의원이 '군수님은 법과 원칙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을 했다. 이로부터 그는 무려 4시간 동안 자리에 버티고 '사과하라'는 고성을 치기 시작했다. 짐작 하건데, 1심에 불복한 군수는 우의원이 자신의 치부를 지적한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로 시작된 고성으로 결국 군정질의는 무산되었다.


이 영상의 누적 조회 수가 200만을 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군수가 될 수 있느냐며 무식하고 교양이 없다고 비난했다. 과연 그럴까? 그는 울산매일신문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행정학 석사와 박사과정, 한의학 박사과정을 거쳤다. 경남, 울산지역의 교사로 9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무식과 교양 없음'과는 다른 문제라 추측할 수 있다. 혹은 다분히 전략적이고 정치적의 의도가 있었지 않았나 분석하기도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3선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 베테랑이다. 그가 한나라당을 기반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우의원이 민주당 의원이기 때문에 정치 대립과 비리 문제가 배경이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고성은 새누리당 소속 의원의 질의시간에도 계속되었다.


해석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점을 집어보고 싶다. 그는 '대통령을 함부로 오라 가라 할 수 있느냐'라고 말했듯 자신이 '기장군의 대통령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것 같다. 고성과 막무가내는 그런 권위를 드러내는 습관일 수도 있다. 우성빈 의원은 지난 의회의 기록을 모두 살펴보았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동안 군수의 태도는 늘 이런 식이었다, 갈수록 더 심해졌다는 점이었다. 우의원은 '의회는 이를 묵인해 왔으며, 그의 태도는 습관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정상적인 태도가 습관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저돌적인 성격은 산업화 시대의 여러 사회 난재를 헤쳐나가는 데, 정치표가 엇갈리는 난장 지역에서 선봉장 역할을 하기에 강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고집불통은 이런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에서 다져온 편견, '순두부 같은 너희들이 뭘 알아'라는 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 그는 마치 빨간 안경을 쓴 사람이 세상이 빨갛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일테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인지편향성이라 한다. 고집불통은 인지편향과 권위주의의 합작품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니 나라가 바뀌었다고 한지가 엊그제 같다. 이 말이 기분이 좋은 건 맞지만, 본질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이 바뀐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식적이지 않은 국정운영을 했던 그리고 그에 동조하거나 방관하거나 심지어 빌붙었던 이들이 다시 '고성'을 치기 시작하는 중이라, 과연 무엇이 바뀌었을까 궁금하다. 아마 그 결과는 다음 총선에서 드러날 거다. 지금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를 선출하는 주권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은 바뀌었는가'를 물어야 할 때가 아닐까.  정치 견해가 다양한 게 당연하고 그것이 옳다. 그러나 어젠다를 공적인 자리에서 논의하고 대화하기 위해서는 '고집'과 '불통'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내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건 간에 말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뽑았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화장실 공사를 끝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니 곳곳에 지저분함이 쌓여간다. 미세하게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공사는 시공업체의 몫이나, 청결은 사용하는 사람의 몫이다. 쉽다. 하지만 나라 고치는 사람도 사용하는 사람도 모두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이다. 주권을 가진 사람의 책임이자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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