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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Nov 17. 2019

생애 첫 번째 '독서'

몰입하는 독서

어렸을 적 우리 집엔 동화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 대신 아버지께서 이발관을 하셨기 때문에 만화책이 가득했다. 사내가 미장원에 가면 부랄 떨어진다고 믿었던 시절, 이발관은 떨어지지 않은 남자들로 늘 북적였다.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할 것 없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누렇게 낡은 만화책을 보았다. 99.8%는 무협만화나 스포츠 만화였다. 가끔 잘못 끼어든 순정만화는 농다리가 기울어지면 받침대로 쓰이거나 급하게 휴지가 필요할 때 찢어서 쓰는 용도로.. 흠, 남자는 그런 존재다.  어머니가 조금씩 가르쳐 주신 한글, 어느 날 갑자기 만화책 말풍선 속에 글자가 읽히기 시작했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나는 만화로 한글을 땠다. 그걸 독서라고 하기엔 내키지 않는다. 만화책에 대해서는 더 풀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내 생애 처음으로 '독서'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따로 있다.


내 위로 누나가 둘 있다. 누나 방에는 책이나 그릇을 두는 찬장이 있었는데, 제일 아래 칸은 서랍 문이 부서져 뻥뚤려 있었다. 마치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2층 침대 아래 벙커 공간처럼 말이다. 반에서 제일 몸집이 작았던 내겐 그 공간이 꽤 넓게 느껴졌다. 누나들이 보던 책이었겠지만 누나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 일단 주인 없는 책이라 치자. 쓰레기 더미처럼 책이 쌓인 벙커 안에서 배를 깔고 그중 한 권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펜화로 그려진 삽화가 어쩌다 한번씩 있는, 만화와는 거리가 아주 먼 위인전이었다. 그 책의 제목은 ‘안창호’였다. 국민학교 2학년, 동화책 한 권 읽지 않고 만화책에서 바로 글 많은 위인뎐으로 건너 뛴 도약의 순간이었다. 그저 이런 책도 집에 있었구나 하며 읽기 시작했다. 꽤나 흥미진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글이 영상으로 둔갑하기 시작했다. 글자는 그림이었다가 만화였다가 영화로 바뀌었고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장단 고저가 살아나 물 밖의 물고기처럼 뛰어다녔다. 도미 시절 강도 짓을 한 청년들이 같은 조선인인 것을 알고 용서하며 깨우쳐 주는 장면에 이르러, 나는 안창호 선생님 곁에서 그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슴엔 커다란 인생의 기둥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때!

“야! 도대체 뭐 하는데 불러도 대답을 안 해?”

작은누나가 나를 흔들었다.

“밥 먹으라고, 옆에서 불러도 말이 없냐?”


깨어났다고 해야하나? 마치 꿈에서 돌아온 듯 나는 고개를 들어 알았다고 대충 넘기고 이제 겨우 몇 장 남지 않은 책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어라?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늦은 저녁, 방안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해는 이미 오래전에 지고 작은 골방에 볕이라곤 들지 않는 캄캄한 시간이었다. 조금 전까지 살아 뛰어놀던 글자는 어둠에 젖은 여백과 분간이 되지 않았다. 글자는 모두 어둠 아래 숨어버렸다. 엉거주춤 벙커에서 기어 나와 노란 백열등에 물든 마당으로 나갔다. 이상한 체험이었다.


이 날이 내 생애 첫 독서라고 생각한다. 이후 같은 체험을 한 적이 없다. 책을 읽을 때마다 그 순간이 그립다. 업무시간을 쪼개 빈틈을 내어 책을 읽는다. 버스에서, 식사 중에,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을 할 때도, 당연히 화장실에서도 책을 손에 놓지 않는다. 간혹 손이 비어있을 땐 동료들이 ‘오늘 왜 책이 없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날의 경계에 서 본 적이 없다. 만약 다시 그와 같이 독서를 한다면 참, 먼 길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 것 같다. 흐트러진 마음이 다시 동심으로 돌아온 것을 다독여주며. 고단한 인생에서 독서가 준 기쁨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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