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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Apr 30. 2020

그래도 한 장이라도 읽고 자야지

책 읽는 이유

아침이면 화약머리가 화르르 타오르다가, 밤이 되면 성냥개피의 마지막 끄트머리까지 까맣게 태우며 사그라드는 것 같다. 내 하루를 표현하자니 딱 그렇다. 그렇게 골아떨어진다. 불혹을 넘기며 ‘살아가기 위한 운동’을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하겠구나 다짐했다. 젠앤장. 나를 실망시키는 건 남이 아니라 늘 내 자신이다. 아직 그것 하나 습관을 들이지 못했다. 고갤 들어보니 지천명이 저너머 보이는 중간즈음이다. 내게 핀잔을 들었던 흰머리 배불뚝이 선배가 내 배를 보며 씩 웃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저 바라보면', 초코파이 BGM이 아련이 맴도는, 참 안타까운 공감대가 생긴거다.


양치질도 하기 귀찮을 만큼 피곤에 절어 있던 내가 1년 전부터 유튜브를 시작했다. 그것도 북튜브로. 말이 안되는거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굳이 하겠다면, 맛집을 찾아 다니든, 운동으로 변화해가는 배불뚝이 아저씨 컨셉을 하든. 그도 아니면, 13년차 베테랑 PD 아닌가. 전문성을 생각하면, 비디오아트나 편집 채널을 만드는 게 더 나을 거다. 그런데 하필 유튜브 안에서도 최고의 '레드오션'이라는 북튜브라니. 휴~


가장 좋아하는 일, 자신이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주제

유튜브를 시작할 때 들었던 공통된 조언이었다. 그럼 당연히 독서지, 고민할 건덕지도 없지. 혹시 몰라 친구, 후배, 그리고 아내에게도 물었다. 역시 "책이지. '독서' 좋아하잖아."라는 대답이 이구동성 돌아왔다. 때마침 다음카페 <독서클럽>의 운영자께서 유튜브를 한번 해보자고 연락이 왔다. 독서모임이 예전같지 못하다고, 이제 읽는 독서가 아닌 시청하는 독서로 트렌드가 바뀐 것 같다는 견해였다. 공감했다. 오디오북 시장은 더 커질 것이고, 줄거리를 요약하고 핵심을 뽑아주는 과외같은 독서가 앞으로 대중의 큰 니즈가 될 것이라 생각해왔던 차였다. 아니나다를까, 요 1~2년 사이, <책 읽어드립니다>와 같은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밍기적뭉기적 나를 망설이게 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유튜브 선배들의 또하나 조언, "남과 차별성을 갖고, 더 잘할 수 있는 주제인가" 때문이었다.


독서, 그게 뭐라고. 그게 남들과 차별성이 있을만한 주제인가? 미처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다. 더구나 세상엔 나보다 더 독서에 미친 사람들이 많을텐데. 도서관깨기-한 도서관의 소장책을 모두 읽는-를 한 사람, 1년에 천권, 1만권을 읽은 사람-옆나라 일본에서는 1만권 독서를 한 사람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책읽기에 관한 책을 낸 저자들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주제로 잡았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또한 모두 같다.

에른스트 카시러의 <상징형식의 철학> 서두에 이런 말이 있다.

'상징형식의 철학은 상징형식(언어, 신화, 예술) 각각에 특수하고 고유한 특정한 굴절을 보여주려고 하는 시도다',  이어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앎은 하나다]라는 말처럼, 철학은 감각들이 제공하는 다채로운 현란한 광경의 배후에서 또한 상이한 여러 사고형식의 배후에서 순수인식의 굴절되지 않은 빛을 찾아야 한다는 경고의 소리이자 각성을 촉구하는 소리였다.' 라 했다. 아이구, 이게 무슨 소리야!


독서-글을 읽는 행위로 대입해서 쉽게 풀어보자. 저자는 하나의 앎, 주제를 자신의 경험, 인식과정을 거쳐 문체, 문장, 어휘 - 즉 글로 드러낸다. 여기에 굴절이 일어난다. 같은 앎, 주제라도 저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니까 말이다. 책을 읽는 독자는 자신의 경험, 감정, 판단으로 '글'을 읽는다. 그런데 그 해석은 천차만별이다. 여기서 또 다시 굴절이 일어난다.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더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출처는 모르겠다. 어디서 주어들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어쩌면 내 생각이 뒤섞였을지 모른다. 그냥 그렇다고 치자. 

내가 할 수 있다면, 능력이 허락한다면, 그 굴절의 과정과 구조를 설명해주고, 굴절되지 않은 빛을 드러내 주고 싶다는 바램이다. 책 읽는 사람 모두가 다 해석이 다르다. 그러나 굴절을 걷어내는 고뇌의 과정을 넘고 나면, 하나의 앎에 귀결하게 된다. 그것을 세심히 밝히고 싶은 바램이었다. 레드오션인 북튜버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


쉽고 재밌다는 건, 그만큼 잘 안다는 뜻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영상이 폭발적으로 조회수가 오르며, 일주일 사이에 7~800명이 구독하는 경우가 2차례 있었다. 지금의 구독자 수는  덕분이다. 운이  작용을   아닐까?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유튜브가 의도적으로 노출시켜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쨌든 좋은 컨텐츠라는 의미니 비록 성장이 더디더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었다. 여러 지인들이  채널이 재미도 없고, 어렵다는 지적을 해주신다. 고맙게도, 지난번에 얘기해준 적이 있었는데, 다시-자주 이야기해주신다. 고맙게도....

쉽게 변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나의 깨달음이 얕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블랙홀 박사님이라 알려진 박석재 前천문연구원 원장님이 이런 이야길 하신 적이 있다.

 "이PD, 사람들이 내가 쉽게 이야기하면 '에이~'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있어. 그런데 쉽게 이야기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잘 몰라. 천문학이 다 수학이야. 그걸 그대로 말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 그리고 난 강의할 때 어쩔 수 없이 고유명사가 아니면, 절대로 영어를 안 써, 어렵게 말하는 건 아직 잘 모른다는 거야."

맞는 말씀이다. 굴절되지 않은 그 하나의 빛을 이야기하는 것이 나는 아직 무척 어렵다. 그 하나의 빛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을 꺼내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또 몰입해서 들을 수 있도록 재미있고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고민거리다.


그래도 한 장이라도 읽고 자야지

성냥개피에 마지막 온기가 막 꺼지기 직전이다. 내일 아침 [독서명상]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유익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까. 세상은 시시각각 변화해가고, 배우고 익힌 지식과 지혜를 날것으로 말하기엔 아직 나도 세상도 덜 익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예쁜 악세서리에 저절로 손이 가듯,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잘 전해야한다. 성냥개피의 남은 마지막 온기로 책 한 장이라도 더 읽고 자야지. 깨달음의 깊이가 더해져 담박한 이야기가 되도록, 손이 저절로 가는 예쁜 핀처럼, 혹은 사람들이 '에이~'하고 무시할만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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