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한 장이라도 읽고 자야지

책 읽는 이유

by 오후의 책방

아침이면 화약머리가 화르르 타오르다가, 밤이 되면 성냥개피의 마지막 끄트머리까지 까맣게 태우며 사그라드는 것 같다. 내 하루를 표현하자니 딱 그렇다. 그렇게 골아떨어진다. 불혹을 넘기며 ‘살아가기 위한 운동’을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하겠구나 다짐했다. 젠앤장. 나를 실망시키는 건 남이 아니라 늘 내 자신이다. 아직 그것 하나 습관을 들이지 못했다. 고갤 들어보니 지천명이 저너머 보이는 중간즈음이다. 내게 핀잔을 들었던 흰머리 배불뚝이 선배가 내 배를 보며 씩 웃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저 바라보면', 초코파이 BGM이 아련이 맴도는, 참 안타까운 공감대가 생긴거다.


양치질도 하기 귀찮을 만큼 피곤에 절어 있던 내가 1년 전부터 유튜브를 시작했다. 그것도 북튜브로. 말이 안되는거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굳이 하겠다면, 맛집을 찾아 다니든, 운동으로 변화해가는 배불뚝이 아저씨 컨셉을 하든. 그도 아니면, 13년차 베테랑 PD 아닌가. 전문성을 생각하면, 비디오아트나 편집 채널을 만드는 게 더 나을 거다. 그런데 하필 유튜브 안에서도 최고의 '레드오션'이라는 북튜브라니. 휴~


가장 좋아하는 일, 자신이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주제

유튜브를 시작할 때 들었던 공통된 조언이었다. 그럼 당연히 독서지, 고민할 건덕지도 없지. 혹시 몰라 친구, 후배, 그리고 아내에게도 물었다. 역시 "책이지. '독서' 좋아하잖아."라는 대답이 이구동성 돌아왔다. 때마침 다음카페 <독서클럽>의 운영자께서 유튜브를 한번 해보자고 연락이 왔다. 독서모임이 예전같지 못하다고, 이제 읽는 독서가 아닌 시청하는 독서로 트렌드가 바뀐 것 같다는 견해였다. 공감했다. 오디오북 시장은 더 커질 것이고, 줄거리를 요약하고 핵심을 뽑아주는 과외같은 독서가 앞으로 대중의 큰 니즈가 될 것이라 생각해왔던 차였다. 아니나다를까, 요 1~2년 사이, <책 읽어드립니다>와 같은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밍기적뭉기적 나를 망설이게 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유튜브 선배들의 또하나 조언, "남과 차별성을 갖고, 더 잘할 수 있는 주제인가" 때문이었다.


독서, 그게 뭐라고. 그게 남들과 차별성이 있을만한 주제인가? 미처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다. 더구나 세상엔 나보다 더 독서에 미친 사람들이 많을텐데. 도서관깨기-한 도서관의 소장책을 모두 읽는-를 한 사람, 1년에 천권, 1만권을 읽은 사람-옆나라 일본에서는 1만권 독서를 한 사람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책읽기에 관한 책을 낸 저자들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주제로 잡았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또한 모두 같다.

에른스트 카시러의 <상징형식의 철학> 서두에 이런 말이 있다.

'상징형식의 철학은 상징형식(언어, 신화, 예술) 각각에 특수하고 고유한 특정한 굴절을 보여주려고 하는 시도다', 이어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앎은 하나다]라는 말처럼, 철학은 감각들이 제공하는 다채로운 현란한 광경의 배후에서 또한 상이한 여러 사고형식의 배후에서 순수인식의 굴절되지 않은 빛을 찾아야 한다는 경고의 소리이자 각성을 촉구하는 소리였다.' 라 했다. 아이구, 이게 무슨 소리야!


독서-글을 읽는 행위로 대입해서 쉽게 풀어보자. 저자는 하나의 앎, 주제를 자신의 경험, 인식과정을 거쳐 문체, 문장, 어휘 - 즉 글로 드러낸다. 여기에 굴절이 일어난다. 같은 앎, 주제라도 저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니까 말이다. 책을 읽는 독자는 자신의 경험, 감정, 판단으로 '글'을 읽는다. 그런데 그 해석은 천차만별이다. 여기서 또 다시 굴절이 일어난다.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더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출처는 모르겠다. 어디서 주어들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어쩌면 내 생각이 뒤섞였을지 모른다. 그냥 그렇다고 치자.

내가 할 수 있다면, 능력이 허락한다면, 그 굴절의 과정과 구조를 설명해주고, 굴절되지 않은 빛을 드러내 주고 싶다는 바램이다. 책 읽는 사람 모두가 다 해석이 다르다. 그러나 굴절을 걷어내는 고뇌의 과정을 넘고 나면, 하나의 앎에 귀결하게 된다. 그것을 세심히 밝히고 싶은 바램이었다. 레드오션인 북튜버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


쉽고 재밌다는 건, 그만큼 잘 안다는 뜻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한 영상이 폭발적으로 조회수가 오르며, 일주일 사이에 7~800명이 구독하는 경우가 2차례 있었다. 지금의 구독자 수는 그 덕분이다. 운이 좀 작용을 한 게 아닐까?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유튜브가 의도적으로 노출시켜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쨌든 좋은 컨텐츠라는 의미니 비록 성장이 더디더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었다. 여러 지인들이 내 채널이 재미도 없고, 어렵다는 지적을 해주신다. 고맙게도, 지난번에 얘기해준 적이 있었는데, 다시-자주 이야기해주신다. 고맙게도....

쉽게 변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나의 깨달음이 얕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블랙홀 박사님이라 알려진 박석재 前천문연구원 원장님이 이런 이야길 하신 적이 있다.

"이PD, 사람들이 내가 쉽게 이야기하면 '에이~'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있어. 그런데 쉽게 이야기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잘 몰라. 천문학이 다 수학이야. 그걸 그대로 말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 그리고 난 강의할 때 어쩔 수 없이 고유명사가 아니면, 절대로 영어를 안 써, 어렵게 말하는 건 아직 잘 모른다는 거야."

맞는 말씀이다. 굴절되지 않은 그 하나의 빛을 이야기하는 것이 나는 아직 무척 어렵다. 그 하나의 빛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을 꺼내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또 몰입해서 들을 수 있도록 재미있고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고민거리다.


그래도 한 장이라도 읽고 자야지

성냥개피에 마지막 온기가 막 꺼지기 직전이다. 내일 아침 [독서명상]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유익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까. 세상은 시시각각 변화해가고, 배우고 익힌 지식과 지혜를 날것으로 말하기엔 아직 나도 세상도 덜 익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예쁜 악세서리에 저절로 손이 가듯,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잘 전해야한다. 성냥개피의 남은 마지막 온기로 책 한 장이라도 더 읽고 자야지. 깨달음의 깊이가 더해져 담박한 이야기가 되도록, 손이 저절로 가는 예쁜 핀처럼, 혹은 사람들이 '에이~'하고 무시할만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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