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하신 대학 은사님을 위해 제자들이 모여 추모집을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각자 가진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 그분의 삶과 업적을 그려내고 싶다는 바람이었지요. 제 기억만으로 스승님의 모습을 그려내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좀 더 많은 기억들을 모아두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선후배들께서 보내준 글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교수님의 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자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셨는지, 스승님의 크기가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후배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후배가 긴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지 몰라. 너와 내가 한 가지 일을 겪었다고 하자. 나는 너를, 너는 나를 그때의 인상으로 하나의 점을 찍어두자. 하나의 경험, 하나의 대화, 하나의 사건, 관찰들이 늘어갈 때마다 하나씩 더 점을 찍어보자. 그리고 그 선들을 모두 이어봐. 그렇게 점을 이은 선들이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을 안다는 것 참 섣부른 단정입니다. 하지만 그런 과오를 우린 참 쉽게 하고 있지요.
신혼 때,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만약 우리가 늙어 헤어져야 할 때가 되면, 아마도 난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아. '한 평생 당신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다 알지 못한 것 같아. 부디 다음 생에도 당신과 만나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어.'라고”
아내는 조금 좋아하는 눈치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다시 그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좋아하긴커녕 분노의 눈빛으로 “절대 싫다.”라고 할 것 같아서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같은 생각입니다. 여전히 날마다 새로운 아내의 모습에 놀라고 있습니다. 조금 호랑이 같기도 하고, 곱고 선하던 연애 때 모습과는 조금 다릅니다.....음.. 많이 다른가? 음.. 어쨌든 저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합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교수님을 떠날 준비를 하던 마지막 학기에
문득 교수님께서는 제게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는 그 물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늘 곁에 계실 것 같았고, 그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늘 그 자리에 계실 분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건강이 좋지 않아도 단 한번 의지를 꺾은 적이 없으셨기에 그렇게 강인한 분이셨기에 병조차 이겨내실 거라고, 반드시 그럴 거라고 믿었었나 봅니다. 그것이 제겐 후회로 남았습니다.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것에 헌신해야 하네.
만일 저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뽐내려고 애쓰는 중이라면 관두게. 어쨌든 그들은 자네를 멸시할 거야. 그리고 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뽐내려 한다면 그것도 관두게. 그들은 자네를 질투하기만 할 테니까. 어느 계층에 속하느냐 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가 않아. 열린 마음만이 자네를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동등하게 만들어 줄 거야.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중에서
지난주 교수님 묘소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교수님께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요즘 제가 하는 고민들, 해결해야 할 과제들 마음으로 조언을 구했지요.
“이 선생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읽어봤어요?” 마지막 교수님께서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제가 좀 더 기억하고 남겼으면 하는 스승님에 대한 편린들, <모리와 함께 한 일요일>은 늘 가슴 한편을 아프게 누르는 책입니다.
우리가 가진 기억의 편린, 사람에 대한 편린, 조금은 보류해 두어도 좋을 듯합니다. 아직은 좀 더 서로를 알아야 하고, 더 기억을 모아야 하고, 섣부른 판단으로 관계를 그르치기보다는 조금 더 인내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아마 그렇게 점 들이 더 많아지면, 더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면-
"우린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