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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R과 코로나19의 상관관계, "멈춰라"

by 오후의 책방

https://youtu.be/qZzmd5Sm8Ek

“침묵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나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활동을 포기하는 것이다.”

가톨릭의 영성가 안셀름 그륀의 말입니다.


자, 우리 한 가지 실험을 해볼까요? 지금부터 잠깐 침묵하기, 아무 말 하지 않기에요.

30초 뒤에 돌아오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

.....



자, 혹시 이 30초 동안 눈을 감고 계셨지 않나요?

아마 십중팔구 눈을 감았을 겁니다. 우린 안타깝게도 눈꺼풀은 있지만 귀꺼풀은 없네요.

입은 다물고, 눈은 그냥 감아버리면 되지만, 소음에는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침묵하는 동안,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오히려 주변의 소음이 더욱 적나하게 드러났을 겁니다.


캐나다의 작곡가이자 소리연구가인 머레이 쉐이퍼는 도시의 시끄러운 소리, 서로 뒤섞이고 혼합된 소음과 하나하나의 소리가 분명히 구분되는 깊고 명확한 소음을 구분했어요.


갓 내려 쌓인 눈을 밟는 뽀드득 소리, 펜촉이 종이를 스치는 사각사각 하는 소리, 뜨거운 커피를 내릴 때 커피가 부풀어 오르는 거품소리, 당연히 잘 구분되는 섬세한 소리가 영혼에는 확실히 더 유익할 겁니다. ASMR이 인기를 얻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죠.


혹시 이 짧은 30초 동안 서로 뒤엉켜 구분되지 않았던 잡음들이 하나하나 개개의 것으로 분리되고, 각각의 소리가 의미를 가지는 것을 알아챈 분 계신가요? 그렇다면 아주 ‘밝은 귀’, 아니 그보다는 덜 지친 귀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쉐이퍼는 듣는 법을 다시 배우거나, 더 잘 듣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어 클리닝’이라는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직접 간단히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하루 동안 침묵하는 겁니다. 아! 쉽진 않겠죠?

차라리 혼자 있는 게 좋을 수 있고요. 스마트폰과 TV는 당연히 안되고, 심지어 책도 포기해야 합니다. 침묵한다는 것은 ‘사회적 침묵’을 의미하는 것이니 사람을 만나선 안 되겠지요. 그러고 보니 완벽한 묵언 수행이네요.


작곡가 존 케이지는 <silent prayer>라는 곡을 작곡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곡이 연주되는 4분 33초 동안, 어떤 악기도 연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악장이 침묵이 연주되는 동안 악기 대신 곡을 채우는 것은 기침소리,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 숨소리, 이 당혹스러운 연주에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대신합니다. 누군가는 무슨 터무니없는 장난이냐고 하겠지만, 사실 이 작업은 그가 평생에 걸쳐 공부한 공허함 속에 충만함을 발견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스틸니스]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는

“정보를 제한하고 소리를 작게 줄여야 우리 삶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더욱 깊이 알 수 있다. 침묵을 구해보라. 째깍거리는 손목시계의 바늘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들려준다. 우리는 이 소리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귀 기울여 듣기 위해 멈춰 섰을 때 비로소 들리는 것들이어야 말로 세상에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요. 온종일 침묵을 하진 못해도, 10분 명상, 3분 명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 가능하지요.


어쩌면 말이에요. 코로나19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경각 소리가 아닐까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한 대로, 코로나19는 우리의 사회가 만들어온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 준 브레이크가 아닐까요? 종교 정치 이데올로기 집단의 이기심, 과학만능주의가 저지른 자연파괴, 자본주의의 횡포, 돈 돈 돈, 돈에 대한 갈망들. 굉음을 내며 폭주하던 세계라는 기차를 강제로 멈춰버린 브레이크 말이죠.


먼지가 걷어진 하늘, 맑아진 강, 되돌아온 야생동물, 코로나19가 일깨워준 일상의 소중함,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 취약한 사회 소외계층, 빈곤 국가, 이 작은 바이러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제 대결이 아닌 공존, 끝없는 욕구보다는 일상의 행복, 고립보다는 이타심과 인류애가 가장 옳은 시대라는 호된 채찍질, 너만 생각하지 말고 세상에 귀기울여보라는 ‘잠깐 멈춤’의 시간 말이죠.


침묵하라고 했는데, 오늘 조금 말이 많았던 오후의 책편지였습니다.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슬라보에지젝, #침묵하기, #ASM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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