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류는 수많은 재난을 겪었음에도 코로나19를 완벽하게 예측하지 못했을까?
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수백만 명이 죽는 또 다른 재앙을 맞아야 했을까?
여러분 코로나19 다음에 덮쳐올 재난이 무엇일까요?
21세기 최고의 경제사학자이며, 폴 크루그먼과 조지 프리드만의 최대 경쟁자라고도 불리는 – 영국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만약 인류가 또다시 지나간 재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코로나19보다 더 큰 재앙을 낳을 것이라 경고합니다. 현대 문명사회의 시스템을 폐부를 꿰뚫는 책, 둔Doom-재앙의 정치학을 소개합니다.
“재앙에 보다 냉철하게 대응하기 위한 문명사적 고찰”_더 타임스
<책 소개>
니얼 퍼거슨은 <증오의 세기>, <시빌라이제이션>, <광장과 타워> 등 기념비적인 작품을 줄곧 내고 있는 최고의 역사 스토리텔러입니다. 니얼 퍼거슨이 역시나 이번에도 엄청난 벽돌책을 냈습니다. 출판사는 21세기북스입니다.
니얼 퍼거슨은 기존의 주류 역사학의 시각이 많은 부분 잘못되었다고 보고, 역사를 재해석하는 ‘수성주의’ 학자입니다. 예를 들어 주류사학계는 아메리카 식민지 과정을 다루면서 ‘신대륙’이란 표현을 쓰며 인디언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은 반면, 수정주의 역사는 콜롬버스가 범죄자이자 학살자였음을 기술하는 것이죠.
이 책은 단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지진과 화산과 같은 지질학적 재난, 기후이변과 전쟁, 기술이 만들어낸 재난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참사에 대한 역사를 다루는 책입니다.
둠 재앙의 정치학에서 논지의 전제가 되는 네트워크와 전염병의 관계는 전작인 <광장과 타워에서>에서 언급된 내용이고, 제국주의와 세계전쟁, 그리고 한국전쟁 등 피로 물들었던 20세기를 고찰하는 <증오의 세기>에서는 전쟁과 전염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왔던 사례를 다루었습니다. 그러니 <둠Doom 재앙의 정치학>은 코로나19라는 핫이슈에 편승에 급히 쓰인 책이 아니라 문명사 관통하는 저자의 오랜 연구가 축적되어 시의적절하게 출간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이론을 5가지로 요약했는데요.
첫째는 재난이란 본질적으로 예측불능이며, 불확실성의 영역에 속한다.
둘째, 천재와 인재, 즉 자연적 재난과 인공적 재난이란 식으로 이분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셋째, 대부분의 재난에서 가장 결정적인 실패지점은 명령을 하는 최상층이 아니라, 그 아래 어딘가에서 생긴다.
넷째 병원균으로 인한 전염병이 일어날 때, 정신적 전염병이 상호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매뉴얼을 준비하는 식의 관료적인 방식보다는 호들갑을 떠는 즉 과하게 대응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논지를 전제로 11개의 개별 주제를 다룹니다.
한 두 가지 이론을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해볼께요.
첫째, 재앙은 절대로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
과학으로 대표되는 근대 이후의 이성주의는 자연의 모든 것을 측정가능하고 인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전제로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성은 현실에 빈번히 참폐를 당하고 있습니다. 교통, 통신, 물류, 정치 세계화는 더 빨라지고, 세상은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없을만큼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지진, 화산폭발, 기후이변, 팬데믹은 여전히 미리 완벽히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복잡계에 대한 책으로 마크 뷰캐넌의 <우발과 패턴>이 있는데요. 대중에겐 다소 어려운, 물리학도들에게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반면 니얼 퍼거슨의 <둠: 재앙의 정치학>은 복잡한 네트워크의 세상에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책이 아닐까 한다.
두 번째, 천재와 인재를 이분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인류는 늘 크고 작은 재난이 일어날 수 있는 위태로움 속에 살아가고 있고, 만약 어느 임계지점에 도달해 있다면, 작은 모래알 하나 만으로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모래알, 불씨를 던지는 존재가 사람이더라는 것이죠. 세계1차 대전의 시작은 사라예보의 자기도 모르게 쏜 우발적인 한발의 총알에서 시작되었고, 첼린저호 참사는 엔지니어의 경고를 무시했던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대규모의 재난을 경험한 인류가 그 피해를 또다시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거기에는 반복된 잘못된 판단, 문제의 방관, 실수가 불씨 역할을 합니다.
<처음읽는 정치철학사>의 저자 그레임 개러드는 정치만큼 인간의 최선의 모습과 최악의 모습 양면을 모두 잘 보여주는 분야는 아마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치는 사람의 모든 지혜와 능력이 모아 펼치는 장이고, 정치의 핵심은 판단과 선택입니다.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하게 만드는 구조와 시스템은 반복해서 마른 산에 불쏘시게를 던지게 만드는 꼴이니까요. 정치는 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는 무대이니까요. 이 책의 제목이 <재앙의 정치학>이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니얼 퍼거슨이 내놓은 해답은 결국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회복재생력과 위기를 딛고 더 강해지는 안티프래질임을 강조합니다. 안티프래질이란 ‘블랙 스완’이란 개념을 창시한 나심 탈레브가 “어떤 사람, 국가, 시스템은 곤경에 처했을 때, 극한에 몰렸을 때 오히려 더 큰 힘을 이끌어 내고, 완전히 새롭게 도약하더라. 이들을 묘사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개념입니다. 이런 책도 있었지요. 그래서 저자는 만약 우리가 코로나19가 던진 과제를 긍정적으로 풀어낸다면 머지않아 새로운 전염병이 닥쳤을 때에는 인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라면 어떻게 될까요? 위드코로나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다시 과거로 라이프스타일로 돌아갈 것인가, 근본적으로 새롭게 변화할 것인가를 통찰하게 하는 시의적절한 책입니다. 만약 코로나19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 이런 책을 내는 것이 너무 이른 것이 아니냐고 비판한다면,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지 않는냐, 그렇다면 차리리 우리의 실수와 오류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이다고 저자는 합니다.
그러게요, 언제 어떻게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건 어리석은 일일 겁니다.
네 벽돌책이에요. 참고문헌을 빼고도 648페이지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니얼 퍼거슨은 최고의 이야기꾼입니다. 사실을 다루는 논픽션이지만, 소설 같이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작가의 탁월한 글재주에 반하게 될 겁니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코로나19에 잘 대처한 국가로 한국과 대만을 들었고, 그렇지 못하고 있는 나라로 미국, 영국을 들었습니다. 니얼 퍼거슨은 트럼프 전대통령을 많이 혼냅니다. 여전히 코로나19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부른 평가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한국은 위기 속의 강국, 시스템이 아주 잘 갖춰진 나라란 인식을 세계에 심어주었지요.
저자도 2020년에 가장 뛰어난 대응을 한 국가는 단연 대만과 한국, 그리고 초기의 이스라엘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니얼 퍼거슨은 오랜 시간 다양한 위협들, 특히 인접국들로부터 생존과 연관된 위협을 자주 받아온 나라들이 재난과 위기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고 분석합니다. 일리가 있죠?
맞아요.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인에겐 안티프래질이 민족 정서에 각인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안티프래질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복잡계로 보는 관점도 한국인에게 아주 익숙하죠. 혼동 속의 질서, 질서와 질서 사이에 엉킴, 무작위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지점을 한국인들은 어중간함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연의 법칙은 엄정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늘 다르다는 것, 우리의 현실은 예측하기 힘든 비바람과 폭풍이 늘 몰아닥칩니다. 봄 여름이 지나면 결실의 가을이 온다는 것은 알지만, 그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현실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대자연의 법칙은 봄에는 내고 가을에는 거두는 춘생추살이 있을 뿐입니다. 엄정한 질서 속에 모든 변수들이 서로 되먹임작용을 하는 복잡한 현상세계는 마치 거대한 시공간의 물레방아와 그 안에 물결치는 소용돌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음양오행의 법칙을 동양의 프랙탈이라고 비유하기도 하는데요. 동양문화에서는 예언이란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 일어날 수도, 안 일어날 수도 있는 식의 예언이란 없습니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되, 그 결과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 인사에 달린 문제이죠. 그래서 참여가 중요합니다. 타의에 의한 참여가 아니라, 자발적 참여 말이요. 니얼 퍼거슨이 말한 회복재생력과 안티프레질은 천지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이벤트의 중심에 사람을 두는 한국인에게는 오랜 된 지혜입니다.
예전에 애청자 한분이 제게 안티프래질을 한번 소개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는데, 안티프래질을 한국인의 관점에서 풀어볼까? 아니면 나심탈레브의 책 그대로 정리를 할까 고민하다 때를 놓쳐 버렸지요. 마침 이 책 덕분에 복잡계와 안티프래질을 간단히 짚어보았습니다. 이 두꺼운 책 읽으시는데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각장의 주제만 간략히 정리해 볼까 합니다.
1장의 주제는 죽음의 의미입니다. 당연하겠지요. 첫 장에서 이 주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만약 자신이 영원히 사는 존재, 죽음이 비켜가는 존재라면 이 주제에 아무런 감응이 없을 겁니다. 동시에 그런 사람은 실존적 고뇌도 없을 겁니다.
현대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었다 하다라도 인간은 언젠가 죽는 존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5900만 명이 사망합니다. 그 수를 보면 죽음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옛날 사람들과 달리 이를 낯선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와 무수한 세속적 이데올로기들이 한 시대, 혹은 인류의 문명,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또 아주 가까이 와있음을 이야기하는데, 저자는 진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대규모 재난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인류 역사상 벌어진 대규모 재난들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팬데믹과 전쟁이었음을 강조하는데요. 팬데믹과 전쟁, 병란과 전란이란 두 코드는 이 책 전체에 걸쳐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결론장을 제외하고 마지막 장인 11장은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을 다루고 있는데요. 이 책의 서평을 쓴 여러 사람이 왜 굳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런 불확실한 주제로 이 책을 끝맺느냐고 비판했다고 해요. 아마 이 책을 처음 출간한 영국이나 미국의 서평가들인가 봐요. 하지만 저는 저자의 답변이 이 책의 백미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펼치고) “이들은 인류 역사상 초과사망률을 올리는 가장 큰 두가지 원인인 팬데믹과 전쟁은 발맞추어 함께 오든가 아니면 서로의 뒤를 바로 이어서 따라올 때가 많다는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발행된 이번 주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만을 사이에 두고 두 강대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요. 서로 한발 물러서든, 표면적으로 화해와 협력의 제스춰를 취할 순 있지만.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의 위치를 고수하고 중국이 팍스 차이나, 신중화주의를 꿈꾸는 한 결국엔 충돌을 피할 순 없을 겁니다. 인류에게 두 나라의 군사적 충돌은 어쩌면 인류의 마지막 재앙이 될지 모릅니다. 아시다시피, 두 나라의 첫 대결은 한국전쟁이었고, 여전히 휴전 중이란 사실, 그리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것.. 어, 순서가 바뀌어서 11장을 먼저 설명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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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의 제목은 순환주기들 그리고 비극입니다. 여기서 비극은 그리스 신화 카산드라의 비극을 말합니다. 2장에서는 순환론적 역사이론에 대해 설명합니다. 동서양의 많은 지식인들이 역사의 흐름, 왕조의 운명에는 자연의 법칙처럼 순환주기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고대 서양철학에서는 스토아학파가 대표적이고요. 국부론을 쓴 애덤스미스, 니체, 슈펭글러, 토인비도 순환론을 바탕으로 경제사, 국가의 흥망사를 해석했습니다. 자연의 순환법칙에 근거를 둔 순환론적 역사관이 통찰력을 주지만, 지리, 환경, 경제, 문화, 정치와 기술 등의 다양한 변수의 상호작용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요, 저자는 순환론적 역사관으로도 재난, 재앙을 완벽히 예고하고 대비하지는 못한다는 관점입니다.
저자는 재래드 다이아모드의 저서 <대변동>과 <문명의 붕괴>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요. 위기에 대응하는 인간 개개인의 행동과 국가와 같은 정치체를 대비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만 붕괴는 자연현상만큼이나 사회적 정치적 현상이라는 지적은 공감하는데요. 이 점을 트로이 목마 신화에 등장하는 ‘카산드라’를 예로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책 펼치며)
“참사는 본질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순환론적인 역사 이론들도 이러한 문제를 넘어서지 못한다. 재난이란 그것을 예언하고자 하는 이들도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마는 비극의 형태에 가깝다. 카산드라와 같은 이들이 예언하는 재난들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을 때도 많을 뿐 아니라 그런 예언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인지편향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예언을 듣는다고 해도 불확실성에 시달리다가 결국 ‘설마 나까지 참사의 희생물이 되기야 하겠냐’는 생각으로 이를 무시해버리고 만다.”
인간의 행동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우리에겐 다양한 인지편향이 있습니다. 2장에서 카산드라의 경고를 무시, 외면, 왜곡하는 우리의 인지편향은 무엇인지 꼼꼼히 짚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3장 회색 코뿔소, 검은 백조, 드래건 킹 등 미래학이나 경제학에서 자주 보게 되는 재앙에 관한 여러 용어들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미 눈앞에 있지만, 모두가 못본 척 외면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검은 코끼리까지 들어가면 좋겠네요.
세계인구의 대부분은 쓰나미의 위험을 고스란이 받을 수 있는 해안가, 지진과 화산의 위험이 상존하는 단층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재난을 당한 이후에 또다시 고향을 찾아 돌아오죠. 이런 점에서 보면 어떤 재난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도 볼 수 있겠습니다. 혹시 책에 등장하는 여러 술어들이 낮설다면 우선 3장을 먼저 읽는 것도 개념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4장의 주제는 네트워크의 세계입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네트워크를 맺게끔 되어 있는 존재이고, 역사이래 무수히 많은 네크워크를 형성해왔음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재난의 규모를 규정하는 것은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넓게 그 피해가 전파되는가하는 문제겠죠. 병원균 뿐만 아니라 정치 이데올로기, 거짓뉴스도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사회의 네트워크 구조가 어떠한가는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겠지요. 4장은 이런 네트워크 과학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장이고요. 이 내용은 그의 전작인 <광장과 타워>에서 다룬 네크워크 과학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a기 때문에 한 책으로 2개 책을 읽는 일석이조의 이득이 있는 챕터입니다.
5장 과학의 미망은 과학의 한계에 대해 냉정히 평가하는 장입니다.
현대는 의학이 발달한 동시에 세계는 글로벌화가 되었습니다. 기술의 발달한 만큼 우리는 더 가까워졌고 그만큼 전염병에 취약해진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이렇게 보면 과연 세상은 진보하고 있는가? 더 나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겠지요. 과학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환경 파괴는 더욱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의학이 발달하는 동시에 대량 살상무기도 개발되었습니다.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변종 바이러스들이 나타나고 항생제를 개발했지만, 내성이 생긴 박테리아가 나타납니다. 다음에 올 전염병은 어떤 녀석일까요?
앞에서 이 책을 전개하는 여러 이론들을 5가지로 정리했는데요. 6장에서 9장까지 정치, 경제, 복잡계 이론 등 크고 작은 재난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8장은 4장의 네크워크와 더불어 복잡계의 중요한 개념인 프랙탈 이론이 어떻게 재난 발생에 적용되는지 살펴볼 수 있고요. 9장 역병들은 제목이 암시하듯 바이러스 만큼이나 우리 사회를 파국을 가져오는 인포데믹, 거짓뉴스, 음모론의 사례를 다룹니다.
10장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결과들을 분석합니다.
코로나19 초기 때에 많은 나라들이 여유만만하게 대응하다가, 팬데믹이 선언되고, 봉쇄로 이어지면서 세계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과연 봉쇄가 올바른 해결책이었을까? 그렇다 해서 제대로 된 검사와 역학조사도 하지 않은 채 봉쇄를 해제한 미국의 선택이 현명했을까? 그 결과는 예측한데로 전염병의 폭발적인 재확산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책이 작년 트럼프 재임기에 쓰여졌으니까요. 당시의 불안한 사회 경제 상황, 그리고 저자의 우려, 일어나지 않길 바랐던 일들을 이야기하는데요. 1년이 지난 지금 그 차이를 비교하며 읽으면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11장 삼체문제
삼체란 류츠신의 SF소설 삼체에서 가져온 제목입니다. 세 개의 태양이 있는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는 소설인데요. 니얼 퍼거슨은 이 스토리라인을 2020년의 코로나19와 중국에 비유해서 풀어나갑니다.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던 것처럼 만약 21세기가 아시아의 세기로 판명난다면 이번 팬데믹이 바로 그 전환점으로 기억될 것이다”는 로런스 서머스의 말이 중국의 부상, 미국의 쇠퇴를 진단하는 여러 견해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하면서 비평 겸 독자로서 저의 의견을 말씀드릴까 해요.
종말론적 세계관과 순환론적 세계관을 설명하며 둘 다 재앙을 예측할 수 없다는 논지로 펴는데요. 저는 저자가 동양의 순환론에 대해 이해가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시공간의 변화에 치열하게 탐구했던 동양의 우주론, 음양오행론이나, 상수철학에 대해 전혀 무지한 게 아닐까? 재앙은 자연의 섭리에서 필연적으로 오는 대재앙이 있고, 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변수들이 상호작용해 일어나는 갖가지 파생적인 재난들이 있습니다. 왕조의 흥망성쇠나 동서양의 문명 주도권 경쟁은 이런 파생적인 사건에 해당됩니다. 구분이 있어야 해요. 자연의 순환법칙은 인간이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느냐 모르냐의 문제거든요. 우주론이 부재한 서양철학과 기독교 사유체계에서 동양의 순환론을 같이 묶어 퉁 쳐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어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등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즉 사막에서 탄생한 종교는 계절의 변화, 순환법칙을 깨닫기에는 환경적으로 취약하지요. 그래서 탄생 혹은 창조에서 파괴, 종말로 가는 직선적 세계관을 가집니다. 여기에서는 구원과 믿음, 메시아의 도래가 중요하게 되는 것이죠. 타자적 입장에서 구원을 받는 입장이 되고 선민의식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본래 고대 그리스나, 고대 유럽인들은 순환적 시간관을 갖고 있었지만, 그 변화의 법칙을 체계적으로 밝히지 못했고, 서아시아 사막지역에서 생겨난 기독교가 서구유럽에 들어가면서 창조에서 종말로 이어지는 직선적 세계관과 자연의 변화 법칙과는 별개의 초월적 하느님관이 자리 잡게 됩니다. 비록 근대 이후 과학이 발달하면서 종교적인 종말론에 대해서는 덜 이야기하게 되었지만, 이 직선적 세계관은 서양인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학과 이성이 자연의 법칙을 제대로 밝혔는가, 그것도 아니었어요. 더구나 과학만능, 이성만능주의는 1,2차 세계대전, 환경문제, 핵무기 등 인간이 자신의 손으로 종말을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죠.
반면 동양은 시간의 순환성, 자연의 변화법칙, 변화과정에 더 주목합니다. 비록 종말적 사건은 있지만 종말이란 동양의 사고방식에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시간, 시대가 끝이 나면 그 다음의 시대가 이어지고. 이 시간과 공간의 변화 마디를 개벽이라고 합니다. 개벽이란 새롭게 열린다는 의미지요. 그러니 변화의 이치를 깨닫고 혁신하는 자세, 변화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깨달음, 나심 탈레브의 개념으로 보면 안티프래질이 더 중요하게 됩니다. 구원의 주체가 나 자신이 되고, 사회적 책임감, 참여가 강조됩니다.
한국인들이 서구에 비해서 방역지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유교나 왕조시대의 습성이라고 보는 시선들이 있는데요, 제가 그런 시선이 아주 얄팍하고 자기혐오적인 생각이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저자가 국가나 조직에 감시권력을 부여하는 것,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봉건사회, 전체주의를 경험한 서구의 역사가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이테크 판옵티콘이라고 불리는 세계적 차원의 감시국가는 전체주의로 가는 길이며, 이것 또한 세계적인 재앙이라고 표현합니다. 인류에게 닥친 위협을 맞서기 위해 전 세계 국가들에게 단결하라고 외치는 이들은 단결 그 자체가 훨씬 더 큰 위협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주장하는데요. 일단 공감을 하지만, 통제와 자유 사이의 적당한 정도가 무엇인지는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자율이니까요.
또 하나는. 저자가 도출한 재생회복력과 안티프래질이란 답은 자연의 대재앙이든 인재든 어차피 복잡계 세계에서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으니 다만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자는 관점에서 도출한 결론이 아닐까?
만약 재난, 재앙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차원이 다른 방법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그 때에도 저자의 주장이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저라면, 그리고 여러분이라면 어떤 공부를 하실 건가요?
제가 오늘 이 책을 소개하면서, 특히 한국의 사상, 동양의 철학을 몇 차례 의도적으로 비교하고 강조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면, 사상의 파도가 치는 이 지성사에서 여기서 말하면 그런 줄, 저기서 누가 말하면 또 그런 줄 알고 휩쓸려 다니기 마련입니다. 이 책을 읽을 때에도 판단의 닻을 잘 내릴 수 있도록, 또 비평적으로 읽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니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자주 예를 드는 카산드라의 비극은 다른 사람을 설득할 능력을 잃어버린 예언자에 대한 이야기에요. 태양의 신 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한 댓가로 설득하는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많은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태양은 문명,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에, 결국 계시와 영적 체험이 세상 속에서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문명사적으로 과학으로 이치적으로 설명해야하고 또 책과 여러 미디어를 통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본디 저는 벽돌책 싫어합니다. 벽돌책들이 다루는 주제가 대개는 현상에 대한 해석들이고, 사실 그건 끝이 없는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저자가 엄청난 사례와 문헌들을 분석해서 이 벽돌책을 낸 것은 바로 결국 여러분을 설득하기 위해서일 거에요. 카산드라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아폴론의 지혜를 빌려오고자 한 니얼 퍼거슨의 역작, 둠Doom 재앙의 정치학을 여러분께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