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칙주의자 소아청소년과 의사입니다.
2개월 예방접종 하러 온 엄마가 나가려던 문을 붙잡고
“선생님! 언제부터 이유식을 시작하면 되나요?”
“선생님! 수면 교육은 언제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선생님! 치아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생님! 공갈젖꼭지는 언제까지 가능한가요?”
글이 빼곡히 적힌 종이를 꺼내 질문을 쏟아낸다.
쏟아지는 질문에 AI처럼 머릿속을 헤집어 답변을 쏟아낸다.
마치 수학공식을 말하듯 이유식 4-6개월, 수면 교육은 신생아 시기부터, 치아 관리는 치아 나기 전 거즈에 물을 묻혀서 잇몸 닦기부터, 공갈젖꼭지는 6-12개월 사이에 끊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줄줄 읊어대기 시작한다.
상세히 질문에 답변해 준 후 내심 육아상담을 잘 끝냈음에 뿌듯해하기도 했다.
“선생님, 기저귀 떼기는 언제부터 시작하나요?”
또 머릿속을 헤집으며 18-36개월이라 대답한다.
“저희 아기 36개월인데 아직도 기저귀를 못 뗐어요!”
발달사항 체크 후에 보호자에게 그래도 차근히 시도해 볼 것을 권유한다.
이로써 내 몫은 끝났다. 난 정답을 알려줬고 이후에 시행하는 것은 오롯이 보호자의 몫이다.
지금 생각하면 감정 1도 없는 챗GPT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건 내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였다.
내가 출산을 하고 육아전선에 뛰어든 후 나는 감정 한 스푼이 추가된 아니 감정 한 바가지 업그레이드된 챗GPT가 되었다.
아니다. 그냥 좌충우돌 육아에서 허덕이고 있는 가운만 입은 동네 언니가 되었다.
2개월 예방접종 하러 온 엄마가 종이를 꺼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이제는 그 질문이 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엄마의 불안과 걱정이 버무려진 결과물임을 안다.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힘들죠? 지금이 젤 힘들 때에요. 잘 자지도 못하고 잘 먹지도 못하고…
아버님~ 엄마 많이 도와주세요~100일 전 지금이 젤 힘들 때랍니다!”
엄마의 눈이 붉어지더니 눈물이 고였다.
그 후 질문에 답을 하고 엄마를 토닥여줬다.
“엄마~ 조금만 견뎌요~ 100일만 지나도 좀 나을 거예요~”
그 후, 그 엄마는 나가며 감사하다고 연신 눈물을 훔치며 인사한다.
아이를 낳기 전 모든 것에 정답이 있듯 육아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을 원칙에 준하여 치료하고 상담하였기에 내 아이도 그 원칙에 따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편차를 고려한다 해도 표준편차 안에 내 아이가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착각은 보기 좋게 무너져 내렸고 내 아이는 내게 ‘내려놓음’을 철저히 훈련시키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훈련의 시작은 아이가 내 배에서 나오자마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