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T(사고형)인 남편과 살아가는 법
"선생님, 저 질문 있는데요. OOO 환자가 있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처치해야 하나요?"
내가 인턴 때 그는 내과 레지던트 고년차였다.
의사로서는 햇병아리 시절, 무언가 물어보면 친절히 대답해 주는 그는 내게 든든한 네이버 같은 존재였다.
그 든든함은 내게 인생을 나눌 수 있는 든든함으로 여겨졌고 그 오빠는 나의 '남편'이 되었다.
그러나 남편이 된 순간 나의 네이버는 더이상 제 기능을 하지 않았다.
아니 제 기능을 하고 있었으나 F형(감정형)인 내게는 '아~ 그랬구나. 속상했겠다.' 해 주는 감정이 있는 네이버가 필요했다.
아니다. 이제는 더이상 네이버는 필요없고 그저 내 감정에 동의해 주는 AI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건 과욕이라는 걸 결혼생활 내내 처절히 깨달았다.
"여보, 내가 오늘 라라네 다녀왔는데 집이 너무 예쁘더라~ 전원주택이었는데......"
"전원주택 맞아? 타운하우스 아니고?"
"아니 그것까지는 모르겠고 앞에 작은 마당이 있고 집에 난로가 있더라구."
"전원주택은 개개인의 집이 있는거고 타운하우스는 서로 연결되고 있고..."
네이버는 또다시 작동했다. '전원주택'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그 단어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네이버는 더이상대화가 되지 않는다.
"아니 그게 중요해?? 내가 그 집이 연결되어 있는지 안 되어 있는지 볼 시간이 어딨어?"
또 대화가 중단되었다. 결국 내 볼멘소리로 대화는 마무리 되었다.
내 말들은 점을 찍지도 못한 채 흐지부지 흩어져 버렸다.
"여보, 코코네가 이번에 하와이 다녀왔는데 거기서 스킨스쿠버가 너무 재미있었대!"
"스킨스쿠버라니! 그거 콩글리쉬라는거 몰라?"
"아니 그걸 꼭 지적해야해? 그게 뭐가 중요해?"
"중요하지! 너 그런 말 쓰면 남들이 우습게 봐! 그러기 전에 내가 고쳐주는 거야!"
이번에는 스킨스쿠버가 문제였다.
스킨 다이빙과 스쿠버 다이빙으로 정확히 표현하지 않았던 게 나의 오점이었다.
그 단어에서 걸린 남편은 하와이에서 정말 좋은 추억을 가졌다는 코코네의 이야기를 더이상 못 들었다.
F(감정형)인 나는 이미 감정이 상했고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T형 남자는 해결책을 중요시 하고 단어 하나하나 정의가 중요하다.
이 극 T형(사고형) 남자랑 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이 고구마를 먹으며 노후까지 이 사람이랑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고구마 100개 먹은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난 진짜 네이버를 서치하기 시작했다.
'부부상담' '부부 대화법'
"저 OO 부부 상담실이죠? 부부 상담이 가능할까요?"
난 결국 부부상담을 예약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려야 한다. 아니 또 설득시켜야 한다.
난 마지막 무기를 꺼내기로 했다.
"나 여보랑 대화가 안 돼서 넘 답답해. 정말 이혼을 하고 싶을 정도야. 그래서 마지막으로 부부상담이라도 했으면 좋겠어!"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똥그래졌다. 네이버는 '이혼'이라는 단어는 전혀 입력되어 있지 않은 듯 했다.
난 결국 극 T형 남자를 끌고 부부상담실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