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T, 어디까지 겪어봤니?

극 T형 남편과 상담실 문을 두드리다!

by 닥터루미

고구마를 100개 먹은 채로 늘 끝나는 대화로 결국 부부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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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긴장한 채 주변을 둘러보던 내게 상담사 선생님의 맑은 목소리가 적막을 깨며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상담사 김소통입니다."

간단한 소개 이후 우리에게는 한 장의 종이가 건네졌다.

부부에 대한 조사와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적힌 종이였다.

'부모님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우리 부부에 대해 상담하러 온 건데 왜 부모님에 대해 이리 상세히 조사하는 걸까 의구심을 가지며 설문에 답을 써 내려갔다.


소통선생님은 우리의 설문지를 찬찬히 읽어내려가더니 따스한 눈빛으로 우릴 보며

"부부 이마고에 대해 아시나요?"

질문을 던졌다.

부부 이마고(Imago)? 글쎄 낯선 단어였다. 네이버인 남편에게도 이 단어는 입력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이마고는 심리학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이상적인 배우자상을 의미해요. 이건 우리가 부모님한테 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되죠."


이마고에 대해 설명들은 내 머릿속에는 의문으로 가득했다.

남편은 우리 부모님과 전혀 다른 타입이라 어떤 연계성도 가지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에 대한 상처였다.

아버지는 외향적인 성격의 남편이셨다. 음주는 안 하셨으나 가무에 능하셨고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다. 물론 여자친구도 많으셨다. 아버지의 '외도'로 어머니와 싸움이 잦으셨고 그것이 문제가 되어 직장생활에도 문제가 생기셨다. 그 일로 평온하지 못했던 가정은 내 중고등시절 우울함의 원인이 되었다.


이마고 이론에 따르면 종종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동기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된다.

김소통 선생님은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때 내 머리를 스친 한 단어가 있었다. '정직'


내 눈에서 이유 모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렇다! 아버지의 '외도'를 극복하고 싶었던 난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남편의 우직한 '정직함'에 끌렸던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신 그 이유에 남편분은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남편은 공감을 잘 안 해주는 극 T이지만 결혼 생활 내내 '정직'이라는 그 기준에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모든 면에서 '정직'해서 탈이었지만 말이다.

이게 '내팔내꼰'인가? 내 팔자 내가 꼰다는???


"이제 남편분은 본인에게 어떤 존재라고 생각이 드세요?"

상담실 문을 두드리기 전에는 나올 수 없었던 그 단어가 내 입 밖으로 나왔다. '축복'

그 단어를 듣자 남편은 흠칫 놀란 눈치였다. 도저히 못 살겠다며 상담실로 끌고 온 부인이

자신을 '인생의 축복'이라고 말하다니......

그러나 '정직'이라는 덕목에서 남편은 최상의 남편이었기에 내겐 축복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남편은 어떤 이마고를 가지고 날 만난 것일까?

남편은 아버지의 모습을 딱 빼닮은 나를 선택한 것이었다. 엄격하셨던 본인의 아버지에 대해 거부하면서도 그와 닮은 배우자를 찾아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꿈꿨나보다.


서로가 서로를 택한 이유를 이제 알았으니 우리 결혼생활의 출발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아직 고구마가 다 소화되진 않았으나 첫 상담을 통해 서로의 이마고에 대해 알고는

조금씩 고구마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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