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용기

프로젝트 한 달 / 그땐 그랬지 008

by 회사원 장규일

"도대체, 지금 제가 뭘 하고 있는지를 모르겠어요."


후임의 입에서 이 말을 들었을 때, 신기하게도 처음 스노클링 했을 때가 생각났다.


아마 외국 휴양지 해변이었을 거다. 이왕 휴가 온 김에 스노클링도 한 번 도전해보잔 생각에 처음으로 큰 마스크와 오리발을 끼고, 뒤뚱거리며 바닷물에 몸을 적셨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해류를 따라 서서히 깊은 바닷속으로 떠내려갔다. 처음 보는 물고기와 산호초에 눈이 팔려, 정신없이 헤엄을 치다 문득 '내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를 자각할 때쯤, 난생처음 느껴보는 무서움이 밀려왔다.


나는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도 않는 심해 한가운데에 혼자 헤엄치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 사실도, 주변에 나를 도와줄 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말 편하고 즐겁게 헤엄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다. (글을 적으며 생각해보니 당시 나는 수영을 할 줄 안다며, 같이 온 일행을 보다 먼저 물속으로 들어갔었다.)


호흡이 꼬이면서 입속으로 비릿한 바닷물이 들어왔고, 버둥거리던 팔과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왔던 방향의 반대쪽을 향해 계속 헤엄치길 반복했다. 겨우 출발지로 돌아온 나는 메슥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쓰러질 듯 해변에 누워 패잔병처럼 "..... 살았다.... 살았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30여분 정도 지나고 모두가 출발지로 모였다. 어떤 이는 신기한 물고기 때를, 누군가는 바다 거북이를 봤다며 열 올리며 이야기하기 바빴지만, 난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했고, 다시는 스노클링 따윈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여전히 TV 속 시퍼런 바닷물은 내게 공포요, 내 풋내 나는 애송이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10년 전, "이 일을 맡겨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를 외치던 직장 초년생의 입에서, "선배, 도대체 제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나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을 이 글을 통해 부끄럽게 고백한다.


'수영이나 스노클링이나 매한가지 아니겠냐?'며 호기롭게 들어갔다, 떡실신이 된 내 모습처럼 첫 직장 생활의 내 모습 또한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모든 일이 생소했고, 눈앞에 과제들은 필요 이상으로 크게만 보였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다양한 상황들, 속을 알 수 없는 인간관계들에 매일 지치고 숨 막혀 갔다.


12라운드는커녕 3 라운드도 채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흰색 타월을 던지고 쓰러진 채 씩씩거리며 "상대랑 체급이 안 맞아, 심판이 너무 일방적이야, 어젯밤에 잠을 설쳐서 그래, 글러브가 안 좋아, 주먹을 감은 붕대가 낡았어..."라고 갖은 핑계를 대는 아마추어 복서.


어쩌면 모든 것이 '나'로 인해 시작된 것임에도,

속으론 알면서도 겉으론 모른 척하며 피하는 게,

그저 제일 쉽고, 편한 방법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죽을 거 같이 힘들'다고 느껴졌던 일들은 대부분 별 것 아니었고, 그 순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문제들도,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답은 물론이고, 더 효율적인 방식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윽박지르던 상사와 수화기 넘어 죽일 듯 소리치던 고객들, 속으론 '도대체 어떻게 이 일을 하면 되는 거지?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미치겠네, 정말'이라고 외치던 그 순간. 사실 '처음 보는' 일 앞에 굳어진 몸과 마음이 '맘대로' 부풀려버린 두려움을 냉정하게 마주할 용기와 경험이 부족했음이리라.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달려들어 하나씩 하니씩 착실히 배웠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내가 되지 않았을까? 혹 꿈에서라도 그때의 나를 다시금 만날 수 있다면, 한 번쯤 이 이야길 해주고 싶다.


물론 그 순간의 나는, "직접 해보세요. 얼마나 힘든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요?"라고 하며, 들은 척도 안 하겠지만.


#프로젝트한달 #그땐그랬지 #마주하는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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