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일의 B컷 #001
1. 어제 와이프랑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웠다. 술에 취해 정신 줄을 놓은 것 같아 보였는데, 평소 같았으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텐데 왠지 모를 현타가 왔다. '나도 저러지 않았을까?'
2. 연초에 만난(?) 악성 두드러기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으나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은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고 주사를 맞는다. 우연히(어쩌면 그간에 업보인지도...) 만성 지병을 가지게 된 내가 술에 취해 사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3. 올해 8월부터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10월부터는 달리기도 조금씩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같은 시간을 자고 일어나도 술을 먹은 다음 날은 확실히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이제야 하고 있다. 술을 실컷 마시고 다시 술 깨는 약을 먹고, 그 이후에 몸을 챙기는 영양제를 삼키고 있는 내 모습이 정말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4. 아버지가 담배를 끊으신 지 20여 년이 더 지났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버지는 정말 담배를 많이 피우셨는데, 담배 심부름은 언제나 내가 도맡아 했고 모든 담배 가격을 줄줄 외웠던 기억이 난다. 보너스로 남은 잔돈을 용돈으로 얻을 수 있었던 담배 심부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금연 선언은 한편 으론 아쉽고 다른 한 편으론 호기심이 일었었다. 아버지는 처음 담배를 피울 때, 마흔까지만 담배를 피우고 끊을 생각이었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툭'하고 담배를 끊으시곤 여전히 금연 중이시다.
5.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서른에 8이 붙는다. 나도 아버지처럼 어느 날 갑자기 술을 끊으려 한다. 여전히 힘들게 운동하고 집에 돌아오면 맥주가 생각나고, 기름진 음식 앞에선 소주가 생각나는 사람이지만 술을 핑계 삼아 투덜대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던 2~30대 내 모습은 이제 흘려보내고 싶다.
6. 첫 직장에서는 내 마음대로 술을 조절해서 마실 수 없었다. 마시라면 마셔야 했고, 구역질이 올라와도 참고 또 참으며 술잔을 들이켜야 했다. 술 마시는 게 그리 몸에 맞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이어지는 강권에 배겨낼 장사가 없더라. 회사를 옮기고 직책을 옮겼을 때도 늘 술은 나를 따라왔다. 늘 술 앞에서는 거절하는 게 어색했고 힘들어도 마시는 게 나와 상대를 위한 예의라 생각했다. 시끄러운 분위기, 술에 취한 몽롱한 느낌, 그 속에 우리가 있었고 일이 있었던 것 같다.
7. 술을 끊는 게 앞으로 술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 다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거절하고 절제하며 조절하는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부디 이런 내 작은 선언이 오래도록 이어가서 언젠가 이 날의 선언을 뿌듯하게 돌아보는 순간이 오길.
#장규일의B컷 #술을끊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