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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장규일 Apr 24. 2022

장발 남자로 살아가기(5)

장발 일기 #005

장발 덕분에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쭈욱 어머님의 활력 넘치는 잔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님의 삶에 하나의 재미 요소를 선사해준 나의 이 장발 선언은 어쩌면 새로운 효도의 형태인지도 모르겠다. (장발 일기 #004 편에 이어)


이번 일기는 지난 한 주간 머리가 길어서 겪은 에피소드들 몇 가지 정리해본다. 


1. 엘리베이터 스피치


"목표가 어디까지 인지 물어봐야 할 거 같은데..."


퇴근길에 함께 승강기에 탄 임원 분께서 내 장발을 보며 나지막이 물으셨다. 침묵이 흐르는 엘리베이터 안. 뭐라도 한 마디 남기지 않으면 잘못될 거 같은 그런 분위기. 

도대체 왜 머리를 기르는 건인지, 30초 이내로 답하시오!!

"... 딱히 목표를 가지고 어디까지 기르겠다고 시작한 건 아닙니다만, 말씀을 들어보니 귀가 길에 한 번 세워봐야겠습니다."라는 답을 하고 내렸는데, 버스 좌석에 앉아 생각해보니 내가 기르고 싶어 기르는 머리까지 목표를 세우고 공유해야 되나 싶더라. 

 

과연 나의 분기, 반기별 장발 KPI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2. 샴푸 향


만원 지하철 속으로 또 사람들이 밀려들어올 때, 본의 아니게 앞 옆 사람들과 간격이 좁아지고 서로의 향이 뒤섞이곤 하는데, 출근길 지하철에선 유독 샴푸 향이 전해질 때가 많다. 길거리를 걸어가다가도 한 무리(?)의 여성분들이 지나갈 때면 바람에 샴푸(+향수) 향이 날리는데 그럴 때면 향이 지나는 곳을 잠시 쳐다보곤 한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아니 내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근데 나 역시 머리를 기르다 보니 문득문득 내 머리에서도 샴푸+린스 향이 나는 게 아닌가!! 그런 향기는 여성의 머리에서만 느껴지는 전설(?)의 향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머리를 기른 채 잘 감고 다니면 누구에게나 나는 거였구나 싶다. 이런 멍청한 장발러를 봤나.



3. 지하철 문틈에 끼인 머리


손, 발, 가방 말고 머리도 끼일 수 있으니 조심하자.

100% 실화다. 9호선을 자주 애용하다 보니 늘 지옥철을 맞닥뜨리는데, 밀리고 밀려 타다 보면 문틈에 딱 끼인 채로 탈 경우가 많다. 근데 엊그제 내 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갑자기 머리가 안 움직이는 게 아닌가? 당황하나 나머지 눈을 들어보니 머리가 문 틈에 끼였더라. 그 당황스러운 와중에 '와! 이건 꼭 SNS에 적어야겠다!'라고 생각한 나는 뭘까. 다행히 다음 역까지 가는 와중에 별 탈 없이 잘 뽑을(?)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탈 때도 머리를 잘 묶고 다녀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장발남자로살아가기 #남자머리 #장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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