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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J씨 Mar 03. 2024

이별 후 X 년이 지났다.

어느 날 갑자기 1.




"결혼은 안 해도 연애는 해야지."


연애 (戀愛)

명사: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귐.

유의어 - 로맨스, 사랑, 애련

- 네이버 어학사전.


집안 어른들, 직장 상사들, 오래된 친구들. 심지어 안 지 얼마 안 된 모임 사람들까지.


"지금이 제일 예쁠 때인데 연애해!"


난 대한민국 33살 여자 사람이다.

나는 오늘도 연애하려고 노력 중이다.








핸드폰 진동에 사무실 책상이 요란하게 떨린다. 화들짝 놀라며 얼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전화 진동이 이렇게 큰지 몰랐다.


"여보세요?"

"바빠?"

"어…. 아니. 괜찮아. 잠깐만."


주변을 한번 쓱 둘러보고 조심히 일어나 사무실을 나왔다. 전화를 한 친구는 대학 동기로 졸업 후에도 종종 만나고 있다. 살짝 들떠 보이는 목소리를 보니 자랑거리가 있나 보다고 지레 짐작했다. 점심 먹고 살짝 졸렸던 터라 적당히 들어주고 사무실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내가 어제 윤호 오빠랑 연락했는데 말이야."


뜬금없이 나온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성도 가물가물한 그는 두 번 학번 위로 군대를 갔다 와 복학을 해 같이 3학년을 다녔다. 한 학년을 같이 다녔지만 전공 수업보다 다른 분야에 관심이 많아 수업시간에는 거의 보지 못했던 사람이다.


'얘가 그 사람이랑도 친했구나.'


내 친구 또한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던 애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사람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재잘재잘 떠들다가 이게 본론이라는 듯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최민우가 말이야…."


쿵. 심장이 쿵하고 떨어진다.


"아, 그렇구나."


나조차도 소름 끼치게 담담한 목소리다. 


"너 괜찮아?"

"그럼 괜찮지. 헤어진 지 오래되었잖아."

"그렇지. 걔 너랑 헤어지고 나서 바로 다른 여자랑 사귀었잖아."

"그랬지."

"나쁜 놈. 근데 대박이지 않냐? 엄청 잘 살 줄 알았는데."


재잘재잘 떠드는 친구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대학교 1학년때 최민우를 처음 만났다. 잔뜩 움츠려있던 나와 달리 최민우는 어디서든 당당했다. 

말도 잘하고 행동도 과감해 금방 눈에 띄었다. 선배들부터 교수님들까지 최민우를 알기까지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 아니꼽게 보던 남자 선배들도 그와 몇 번 술자리를 같이 하더니 그를 자주 찾았다. 어떻게 그렇게 한순간에 사람들 호감을 살 수 있나 신기할 정도였다.


"민주야! 민우 어때?"


어느 날 뜬금없이 누군가 물었다. 누가 물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동기들과 같이 어울리는 술자리였다.


"어…. 민우 멋있지."


예의상 한 말이었다. 최민우는 나에게 그저 신기한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솔직하지 못한 게 잘못이었다.


"그렇지?! 민우 멋있지?! 역시 너도 민우한테 호감이 있을 줄 알았어!"

"호감?! 얘기가 왜 그렇게 튀어?!"

"야야, 부끄러워하지 마. 민우 진짜 괜찮은 애야. 남자가 봐도 멋있어." 


스무 살이었다. 대학교 1학년. 혈기가 왕성하다 못해 사랑에 미친 스무 살 애송이들만 있었던 시절이었다. 신중하지도 재지도 않았다. 약간의 호감만 있으면 고(go)할 수 있었던 나이었다.


"둘이 정말 잘 어울려!"


성격도 취향도 입맛도 뭐 하나만 맞으면 얽히고설키는 거다. 재치 있고 활발한 남학생과 얌전하지만 웃음이 많았던 여학생은 그렇게 어디를 가도 만나게 되었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는 순간 옆에 있게 되었다. 우주가 연애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귀자."


흔하디 흔한 고객 멘트였다. 특별할 게 있다면 항상 당당하고 여유 있던 최민우 얼굴이 빨간 홍시 같아졌다는 것. 


'얘 정말 날 좋아하는구나.'


그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첫 연애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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