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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Mar 06. 2020

너야말로 공포심을 없애고 자신만만하게 굴어야 해!

먼지 쌓인 편지함을 꺼내보며 1 -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내 사랑하는 아들, 꼬물꼬물 작은 아가였던 네가 벌써 다섯 살의 장난꾸러기 형아란다. 엄마는 그동안 널 키우고, 수업을 하고, 살림을 하느라 통 쓰지 못했던 편지를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어. 너의 사랑스럽고 놀라운 성장 모습과 엄마의 하루하루 일상을 남겨두고 싶어 졌거든.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겠지만, 그래도 이 순간의 시간과 공간을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풀어보는 거야.


 그제는 엄마가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없애는 이로운 곤충'이라고 나오는 과학책을 읽어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네가 이렇게 말하더구나.


"엄마, 그러면 개미는 나쁜 곤충이네. 개미는 진딧물을 키우잖아.”


 엄마는 개미에 대해 말해준 적이 없었기에 네가 그걸 알고 있다는 것도 그 사실을 통해 네가 스스로 추론을 하고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는 것도 기특하고 놀라워 사랑스러운 너를 꼭 안아주었단다.


 엄마는 요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낸 책인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있단다. 재미있는 사실은 두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이 하나로 통하는 인생의 진리라는 거야.

반 고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단다.


"후회하는 사람은... 충실한 훈련은 게을리한 채 승리자가 되려고 허겁지겁 달려왔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사는 사람은 오직 그 하루만 사는 사람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지루하게 생각하는 공부를 즐겁게 할 정도로 신념과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면 계속 노력할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기 세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문구를 읽으니까 마치 고흐가 살아나 엄마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단다.


“후회하는 사람은 결과만 보고 허겁지겁 달리는 사람이야.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왔는데 그 결과를 얻지 못할까 봐 두려운 거야. 넌 그래서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거야.”


 아들아, 너희 아빠의 성공을 바라며 묵묵하게 뒷바라지하겠다던 엄마의 의지와 신념은 곤궁한 삶에 치여 흩어져버린 지 오래란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그 성공을 얻지 못할까 봐, 아니면 얻지 못한 성공의 대가로 너의 삶도 곤궁해질까 봐 너무나 두려웠단다. 하지만 승리하는 단 하루가 아니라 주어진 인생의 하루하루를 모두 행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실하게 살아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두려움이 한결 가벼워지는구나.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커다란 청새치를 잡은 노인이 그 고기의 뼈만 남겨 항구로 돌아갔던 것처럼 엄마도 그렇게 뼈만 남긴 인생을 살게 될까 두려웠단다. 하지만 노인이 스스로에게 외친 것처럼 엄마도 외쳐보려고 한다.


"너야말로 공포심을 없애고 자신만만하게 굴어야 해, 이 늙은이야."

"나는 녀석에게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줄 테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할 테니 우리의 인생은 결코 뼈만 남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2015년 7월 17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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