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유치원 친구 중에 과학 영재가 아닐까 싶은 친구가 있다. 지금부터는 아이들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글쓰기 편의를 위해 가명을 쓰겠다. 수업할 때 내가 사용하는 가명은 항상 ‘김개똥’과 ‘최말똥’이다. 그러므로 내 아이는 김개똥, 아이의 친구는 최말똥으로 쓰겠다. 일곱 살 때 김개똥과 최말똥을 비롯한 몇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기구가 있는 놀이터에서 만나 논 적이 있다. 그런데 말똥이 혼자 뱅글뱅글 돌아가는 허리 돌리기 기구 앞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 물었다.
“말똥아, 여기서 혼자 뭐해?”
“이거 꼭 원심분리기 같아요.”
“뭐? 원심...넌 원심분리기를 어떻게 알아?”
“과학책에서 봤어요.”
“그래서 원심분리기가 뭔지 알아?”
“네. 원심력을 이용해서 성질이 다른 두 물체를 분리하는 거예요.”
“우와! 원심력...그럼 원심력이 뭔지도 알아?”
“네, 원운동을 하는 물체에 관성력이 생기는데....”
어쩌고 저쩌고 설명을 하는데 내가 잘 모르니 그 이상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허허허. 그저 아들이랑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엄마, 유치원 차 탈 때 말똥이랑 같이 앉으면 힘들어.”
“왜?”
“말똥이가 자꾸 어려운 걸 물어봐.”
“어려운 거 뭐?”
“막 ‘삼백팔십구 곱하기 오십이가 몇인 줄 알아?’ 같은 걸 물어봐.”
“흐흐흐흐흐 그래서 말똥이는 답을 알아?”
“응. 어쩌고저쩌고 막 답도 말해주던데...”
“우와! 그럼 말똥이 답이 맞아?”
“모르지. 내가 답을 모르는데 걔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 그렇네. 하하하하하하하!”
“말똥이네 엄마는 일하느라 바빠서 말똥이랑 못 놀아주니까 말똥이는 공부만 하나 봐.”
“말똥이네 엄마도 말똥이가 어려운 책 좀 그만 보고 놀았으면 좋겠대. 말똥이는 세종대왕 같은 어른이 될 어린이 인가보다.”
“세종대왕?”
“응. 세종대왕도 어릴 때 책만 봐서 세종대왕 아빠가 책을 막 뺏었대. 책 좀 그만 보고 나가서 놀라고.”
“아!”
그렇게 세종대왕 같은 아이가 될 떡잎을 보이던 말똥이라는 친구와 내 아들 개똥이는 서로 다른 초등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그래도 점점 끈끈해지는 우정을 만들고 있는 단짝 친구다. 둘이 있으면 참 행복해 보인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쫑알쫑알 수다 삼매경에 빠져 깔깔대고 웃는다. 같이 모래놀이를 해도 재밌고, 레고 놀이를 해도 재밌고, 게임을 하면 밤을 새울 지경이다. 그 친구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개똥이는 점점 과학에 관련된 물음이 늘었다. 어느 날인가는 원소가 뭐냐고 묻길래 그건 또 어디서 들었냐고 되물었다. 역시나 말똥이다. 원소를 뭐라고 답해줘야 할까 난감해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쉽고 재밌는 초등 영재 플랩북, 원소와 주기율표>
일단 화려한 색감과 다양하게 숨겨둔 원소 캐릭터들이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아주 적절하다. 개똥이도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틈 날 때마다 펴보았다. 친구 말똥이에게 자랑도 했다. 말똥이가 자기도 가지고 있는 책이란다. 그런데 같은 책을 본 두 아이의 다른 반응이 참 재미있다. 말똥이는 원소기호를 다 외우고 그 특징을 줄줄 꿰고 있다면 개똥이는 원소들의 캐릭터를 가지고 스토리를 짠다.
아이들이 다르니 반응도 참 천지차이다. 이러니 아이들에게 책을 안 보여 줄 수 있나..허허허.
다음엔 개똥이가 만든 스토리도 올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