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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May 23. 2020

30평대 아파트가 아니어도 좋아!

코로나가 바꾼 나의 가치관

 와우! 벌써 100일이다. 코로나 때문에 일을 쉰 것이 말이다. 단 두 달을 쉴 수가 없어 둘째를 못 가졌는데... 이렇게 백일이나 쉴 줄 알았다면 2월쯤 늦둥이를 볼 수 있게 임신이라도 했다면 좋으련만.. 허허.. 헛된 꿈이로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먹고살며 집에서 많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꿈이었으나 비록 한 아이만 돌보았지만 100일간 꿈꾸던 삶을 비슷하게 살아보았다. 하여 100일간의 일장춘몽이 나에게 준 깨달음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하나. 내가 돈을 벌지 않아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다.


 대학에 입학을 한 이후 일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성적 장학금과 학보사 일을 하며 받은 근로 장학금으로도 부족한 학비와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해야 했다. 카페, 편의점, 백화점, 레스토랑, 고깃집, 학원, 유치원 보조교사, 텔레마케터, 스크립터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소록도에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단 2달만 쉬었을 뿐 늘 일을 했다. 안 벌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백일이나 일을 안 했는데 아직 굶어 죽지 않았다!

 물론 아이 학교도 학원도 보내지 않았으므로 아이에게 들어가는 큰 지출이 없었다. 올해부터 대출이 변동금리로 바뀌기 때문에 지난 5년간 악착같이 원금을 갚아 대출이자도 많이 줄여두었다. 원통하게도 이자를 아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전히 태산 같은 대출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재난지원금도 주었다. 그래서 통장잔고가 0과 100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위태로운 100일간의 삶을 유지해왔다. 내가 돈을 벌지 않아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다. 풀칠만! 할 수 있다. 아이 입에 소고기를 넣어주고, 대출 원금을 갚고,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 보내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둘. 아이랑 함께 있는 시간은 초광속으로 흘러간다.


 어떤 엄마는 온라인 개학을 한 후에 화병이 생겼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을 왜 본인이 대신하고 있고 월급은 선생님들이 받아가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해했다. 나는 그 엄마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내 집에 있는 내 아이를 돌보는 것은 내가 할 일이지 선생님이 하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온라인 학습이나 주 1회 등교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떤 학교는 주 2회 라는데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주 1회다.) 아니면 선택사항으로 해주었으면 한다. 아이와 집에 있으면 함께 하고 싶었던 일이 많아서 시간이 부족한데 학교에서 주는 숙제가 너무 많아 아이도 나도 불만이다. 아이와 함께 하고 싶던 일은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물론 100일이나 시간이 있었으니 그동안 뭘 했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먹고 자고 싸고 숙제하면 밤이라 놀고 싶은 것도 다 못 놀았다고요!
다 놀고 나서 하려고 했는데 아직 다 놀지도 못해서 시작을 못했을 뿐이라고요!


 아, 글을 쓰다 보니 알겠다. 나는 그냥 뽀로로다. 노는 게 제일 좋은 중년의 아줌마가 비겁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와 하려던 일은 이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2차 유행으로 또 코로나 난리가 나지 않는 이상 7월부터는 일을 하게 될 듯하니 그때까지 약 40일가량 시간이 남았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초광속으로 흘러가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꼭 해야겠다. 그런데 아이와 노는 시간은 어쩌자고 이렇게 달콤할까?



셋.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좋은 점이 있구나.


 내 소원은 30평대 아파트에 사는 것이다. 낡은 곳이라도 좋으니 30평대 아파트에서 살아보고자 했다.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놀고 싶은 마음에 채찍질을 해대며 대출금을 갚을 돈을 벌었다. 그 와중에 아파트에 살 수 없는 내 팔자를 참 많이 탓했다. 남편을 탓하고 양가 부모님들을 탓하고 누구보다 나 자신을 탓했다. 이제 그 소원은 소원이’었’다. 100일간의 일장춘몽은 그 소원을 눈깔사탕 빨아먹듯 녹여내 사라지게 만들었다. 아들과 노는 시간의 달콤함과 함께 나는 아파트가 아닌 빌라의 장점을 발견했다. 아니 깨달았다. 바로 옥상이다. 아이랑 해보고 싶었던 여러 가지 중 하나가 바로 직접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채소를 길러보는 것이다. 집에서 놀면 뭐하니 이거라도 해보자며 화분, 흙, 비료, 씨앗, 모종삽을 사다가 상추와 고추, 봉선화, 멜론 씨앗을 심었다. 이제 아침에 눈뜨면 가장 먼저 ‘화분에 물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오늘은 어디로 수업하러 가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상추쌈을 거부하던 아이도 직접 키운 상추는 먹는다. “상추야 미안해.”라며 우는 시늉을 하고 쩝쩝거리며 먹는다.


 옥상의 장점은 또 있다. 빨래를 탁탁 털어 널어두면 쨍쨍 내리쬐는 햇빛에 바삭바삭 말라가는 그 쾌적한 느낌이 참 좋다. 실제로는 미세먼지를 옴팡 뒤집어쓰고 다시 더러운 빨래가 되겠지만 어쩐지 기분에는 햇빛에 살균 소독까지 끝마친 것 같은 느낌이다. 화창한 햇살을 거나하게 마시면 미세먼지 걱정도 잊고 빨래를 널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 취기 탓에 아이 아빠와 아이의 옷을 널고 개는 그 시간이 헤롱헤롱 즐겁다.

아이가 더 어릴 땐 오줌싼 이불을 널어도 몇 시간만에 보송보송 말려주는 햇빛이 너무 고마웠더랬다.


 화분에 물을 주며 또는 빨래를 널거나 걷으며 보는 하늘도 참 좋다. 좁고 답답한 집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 탁 트인 옥상에서 심호흡을 하면 어쩐지 없던 여유도 생겨나는 듯하다. 뷰가 더 좋은 넓고 높은 아파트에서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해야 하나 싶다.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한데 더 욕심을 부려야 하는 걸까?


파노라마로 보는 옥상 뷰도 좋고


아이가 마구 찍어댄 사진마저 예술이고


붉게 물든 노을은 정말 감탄이 나온다


 큰일 났다! 내가 깨달은 것들을 묶어놓고 보니 게을러지기 위한 핑계의 총체적 집합이다. 그야말로 난국이로다. 다시 악착같이, 다시 이를 악물고 살아낼 수 있을까?

과연 그렇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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