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이른 아침부터 머릿속에서 들리는 정인의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아침 9시 45분경. 대서의 위엄을 자랑하는 땡볕은 이른 아침부터 강렬하게 등을 쪼아대고 아이는 열과 아픔과 더위에 지쳐 울면서 매달린다. 아이가 체중을 실어 매달릴 때마다 허리의 통증이 묵직하게 짓누른다. 코르셋처럼 꽉 조이고 있는 두꺼운 척추보조기는 땀에 젖어 무겁다. 우리의 앞에는 아직 넘어야 할 고개가 남았다. 오르막. 아, 저 오르막.
새벽에 왜 잠에서 깼는지 모르겠는데 깼다. 언제 깼는지도 모르는 채로 누워서 꿈인지 상상인지 모를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4시 40분. 화장실에 다녀와서 더 자야지 했지만 결국 아침까지 잠을 못 자고 뒤척이다가 까무룩 잠이 들려는 찰나.
엄마, 나 귀가 아파. 이 쪽 귀가 소리가 안 들려.
“응? 갑자기? 왜?”
“나도 몰라. 귀가 너무 아파.”
“벌레가 들어갔나? 귀지가 고막에 붙었나?”
불빛이 나는 귀이개로 귓속을 들여야 보아도 깨끗한 것 같다. 왜 그럴까?
“아무렇지도 않은 거 같은데. 아직 병원 문 열 시간도 아니고. 조금 있다가 병원에 가보자.”
병원에 남편을 보냈어야 했다. 새벽에 잠에서 깬 나 때문에 덩달아 뒤척인 남편이 조금이라도 더 자고 가라고 내가 간 게 실수였다. 며칠 전 시술을 받고 내내 누워있다가 제법 먼 거리의 이비인후과로 첫 외출을 했다. 척추 보조기를 하고. 쉬엄쉬엄 천천히 걸어갔다 오면 괜찮겠지... 라고 내 몸뚱이만 생각했다. 아이의 체력은 생각하지 못했다. 죽을 뻔했다. 찜통처럼 뜨거운 공기, 힘들다며 울면서 매달리는 아픈 아이, 땀에 젖은 척추보조기, 오르막. 아, 저 오르막.
아이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도 운전 좀 해.”
“미안하다.”
“엄마, 운전면허증도 있잖아. 용기 좀 내봐.”
“아, 그래. 오늘은 정말 엄마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엄마는 대체 운전이 왜 무서운 거야?”
나의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였다. 마치 정기행사처럼 2,3년에 한 번씩 대형사고가 났다. 사고 소식을 들으면 아빠가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까 봐 무서웠다. 다행히 아빠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면 엄마는 사고를 수습하느라 들어갈 목돈을 걱정했다. 엄마는 차 수리비를 걱정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아빠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새벽에 나간 아빠를 다시는 못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우리가 깨지 않게 아빠가 살금살금 현관문을 열고 나간 어느 새벽, 나는 잠에서 깨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숨이 막혔다. 그게 불안 장애라는 건 30년쯤 지나서 알았다. 그저 울면서 기도를 하면 조금씩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지금이야 공황장애라는 말이 너무나 흔해빠진 말이 되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건 치료를 받아야 할 불안장애로 인한 공황발작이었다. 그게 장애라는 것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몰랐기에 -알았다 해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았을 거다- 나는 그저 기도를 했다. 기도가 우리를 살려줄 거라 믿었다.
고3이 된 어느 날, 엄마가 이상한 표정으로 분주했다. 그건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뭐랄까. 길모퉁이에 숨어있던 흉하고 불길한 인생의 불한당에게 싸대기를 후려 맞고 영혼이 털린 표정. 엄마는 그 멍한 표정으로 장례식장에 가야 한다고 했다. 엄마의 사촌동생, 나의 사촌 이모가 사고로 죽었다고. 이모는 밤샘 기도회를 마치고 혼자 운전을 하며 집으로 가던 새벽길에 사고를 당하셨다. 어떻게 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믿는 도끼에 찍힌 발등이 너무나 아팠다.
사촌 이모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었다. 보라색 마녀라는 별명을 가진 나의 고1 때 담임 선생님과 지인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보라색 마녀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보라색 마녀는 만날 때마다 이모의 안부를 물었다. 이모의 장례식을 치르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보라색 마녀와 또 마주쳤다.
“이모 잘 지내시지?”
‘아직 사고 소식을 듣지 못했나 보다. 뭐라고 대답을 하지? 이모가 돌아가셨어요 라고 말을 하고 당황스러운 이 슬픔을 나눠야 하는가?’
“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던 나는 그저 ‘네’라고 대답하고 도망치듯 뛰어갔다. 상냥하게 웃으며 제자에게 인사를 전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며 이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전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아니 너무 어리지 않았기에 이모의 죽음을 전하지 못한 것일까?
나는 면허도 있고 연수도 받았지만 운전을 못한다. 면허를 주는 아저씨도 연수를 해주던 아저씨도 나에게 말했다.
“운전을 꼭 해야겠어요?”
“다들 하잖아요.”
“다들 00 씨처럼 하진 않잖아요. 00 씨는 너무 겁이 많아서 운전을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그래 가지고 운전 못해요.”
운전하는 여자들은 너무나 멋져 보인다.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차에 타서 운전대를 잡고 웃으며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여자들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부럽다. 운전하는 남자보다 어쩐지 운전하는 여자들이 더 멋져보인다. 나의 환상이다. 그런데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세상 모든 차들이 나를 향해 돌진하는 것 같다. 차선이 내 차를 피해 달아나는 것 같다. 그래서 운전을 포기했다.
“엄마, 진짜 운전할 거야?”
“엄마도 하고 싶어.”
“치, 그럼 안 한다는 거네.”
“몇 년 만 더 있으면 자율주행 차가 나오지 않을까?”
“엄마는 그래도 안 할 거 같아.”
“미안해.’
아이는 엄마도 운전을 하길 바란다. 엄마가 운전을 하면 비가 올 때나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이동을 하기 수월하다. 자동차를 타고 근교로 휙 바람을 쐬고 오기도 좋다. 허리를 다치기 전에는 아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등하교를 했다. 아이는 우비를 입고 폭우를 맞으며, 살을 에는 한겨울 찬바람에 벌벌 떨며, 한여름 땡볕에 헉헉거리며 말했다.
“엄마, 운전 좀 해!”
오늘은 진짜 엄마도 운전을 하고 싶다. 헉헉거리며 간 병원에서 아이가 중이염이라고 한다. 비염이 중이염까지 악화되었나 보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를 데리고 이 더위에 걸어오면서 나에게 묻는다.
‘이래도 운전이 겁이 나니? 용기 좀 내보면 안 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