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코로나 검사를 했다. 확진이 의심돼서 한 것은 아니다. 병원에 입원하기 위한 절차로 검사를 했다. 작년 10월에 디스크에 금이 가서 급하게 응급실에 실려온 후 또 같은 상황이다.
4일째 병상에 누워 꼼짝도 못 하고 있으려니 참 별 생각이 다 든다. 상상 속에서 나는 악을 무찌르고 세상도 구하고, 춤추는 달토끼랑 괴상한 춤도 추고, 기도를 하다가 제 풀에 감격해 엉엉 울기도 한다. 한마디로 총체적 주접이다. 꼬박 10시간을 누워 잠도 못 자고 잡념을 머리가 터지게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옆자리 모녀가 참 재미지다. 70대 후반의 할머니와 50대 초반인 따님의 티키타카를 구경하는 게 잡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다.
“엄마, 고집대로 하지 말고!”
“뭐가.”
“난 진짜 어쩔 수 없어서 여기 있지. 엄마 꼴 보기 싫어!”
“아가, 사랑한다.”
대화만 들으면 늙은 어미 구박하는 나쁜 딸년이다. 하지만 난 그 따님의 효심에 감복했다. 7번째 수술의 병간호를 위해 만사 제쳐두고 형제도 많은데 혼자서 병수발을 들고 있단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어머니 입맛도 취향도 보통 고급이 아니다. 나는 너무 맛있어서 허겁지겁 퍼먹은 병원밥이 입에 맞지 않으시단다. 그분의 따님은 매 끼니를 공수해오신다. 콩국수, 갈비, 잔치국수... 매 끼니 어머니가 주문하신 메뉴를 배달의 민족다운 솜씨로 준비해 한 숟가락이라도 더 드시라고 성화다. 끼니 중간중간에 어머니 입맛에 맞는 과일이며 간식을 준비하신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서 발이 시려운 병실에서 혼자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어머니를 모신다. 심청이 뺨따귀를 후려칠 효심이다.
“엄마, 당 조절해가면서 드셔야 하는데 믹스커피를 왜 자꾸 마신다고 해요. 커피 좀 그만 자셔!”
그러면서 손에는 어머니를 드릴 커피를 들고 계신다.
“야, 얼마 안 먹었어. 이게 얼마 만에 먹는 건데 그래.”
“아후, 그렇게 고집대로 할 거면 나 정말 엄마 안 봐! 엄마가 자꾸 그러니까 나한테 구박을 받는 거잖아! 내가 괜히 구박해?”
“야, 니가 나 구박한 거 여기 병실 사람들이 다 증인 설 거다.”
그러면서도 두 분은 웃고 계신다. 뭐지? 50년간 미운 정 고운 정으로 끈적끈적하게 뭉친 모녀 지간이기에 가능한 모습인가? 다른 자리에 환자분이 웃으며 응대한다.
“아이고, 세상에 저런 효녀가 어디 있어요!”
따님이 대신 대답을 한다.
“내 엄마니까 하지. 시어머니한테는 이렇게 못해요.”
속으로 뜨끔하다. 나는 시어머니는 고사하고 내 엄마한테도 그리 못했다. 늘 받기만 했다. 내가 입덧으로 고생하던 여름, 그렇게 수박이 먹고 싶었는데 남편은 어차피 다 못 먹을 거고 무거우니까 그냥 참으라 했다. 엄마는 1km 거리에 있는 과일가게에서 가장 큰 수박을 골라 그 땡볕에 그 무거운 걸 들고 와서 나를 먹였다. 물도 못 삼키던 내가 앉은자리에서 수박 반 통을 먹는 걸 보면서 너무 좋아하시며 눈물을 훔치셨다. 생각해보니 남편이 얄밉다. 이제라도 달라졌을까? 남편에게 전화를 해본다.
“남편, 나 배고파. 빵 좀 사다 줘.”
“참아.”
우라질 놈. 내 허리가 다 나아도 니 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