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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Nov 06. 2018

리뷰) 최고의 이혼 1

부부? 남이니까.

"남이니까." 리메이크 드라마 <최고의 이혼>이 말하는 부부갈등의 원인이다.

남이니까, 우리는 서로의 24시간을, 각자가 어떤 마음으로 울고 웃었는지를, 알 수 없다. 위안받고 지지받고 싶은 우리의 기대는 자주 어긋나고, 때론 서로의 심장을 정조준한 채 상처라는 화살을 꽂아 넣는다. 그래서 부부는, 혹은 가족은 가깝지만 어려운 관계다.


그렇다 해도 이런 마음이 든다. 남이니까, 불통은 당연한 것일테지만, 이 서글픔은 어디에 호소하리오!


지나고보면, 누구의 잘못이 아닐 때가 더 많다. 우리는 참느라 버둥거렸을뿐, 어디 대고 풀 데가 없어서 꾸역꾸역 삼키고 돌아왔을뿐. 밥을 빌어먹고 자식을 키우고 가족을 지키는 많은 순간에 울거나 악쓰지 않고 '어른답게' 참아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일 뿐이다.


어른인 척하는 미숙한 이들이 부대껴, 누군가는 참아야 하도록 정교히 구조화된 사회는, 목소리가 크고 더 많이 가지거나 그렇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지고 들어가줘야 하는, 목소리 작은 누군가를 기억해주지 않는다.


참는 것도 억울한데, 기억조차, 편조차 들어주지 않는다. 아주 작은 위로와 편들어줌, 마음 읽어줌이 없는 퍽퍽한 세상이 미워서, 누군가는 울고 있다.


물론 부부간의 불화는 이런 구조화된 갑을관계 때문만은 아니다. 다 크지 않은 소년 소녀라는 자아로 둘의 관계가 시작하기 때문에, 사회라는 정글 앞에서 서로를 지켜주지 못하고 나 자신부터 속수무책 무너진다.


소년과 소녀. 우리라는 사람들의 시발점이 된 소년과 소녀의 그림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꿈과 사랑이다. 소년과 소녀는 소중한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사랑하고 지키고 싶어 하는 것에서 유년은 시작되고 끝난다.


그 유년기의 꿈과 사랑을 온전히 충분히 인정받고 소통하지 않으면, 우리의 인격은 자라지 못하고 비뚤어지고 잘려진 상태로 어른이란 외피를 두르게 된다.


그리곤 먹고 사는 것에 치어서, 맹렬히 나날이, 그 무겁고 맞지 않는 껍데기를 참아내려 애쓸 것이다. 그래서 벗어던지고픈 욕망을 감춘채 그 욕구불만의 분노의 대상을 새로 만난 배우자와 그 아이들에게 퍼붓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주고받고도, 상처받은 줄도 준 줄도 모르고 대충 덮어놓고 피하면서 살다가 어느 순간 빵! 숨이 안 쉬어져서 죽음이 턱까지 왔다고 느껴질 것이다.


성격 차이. 중요한 건 성격이 아니라 차이 부분이다. 서로 다른데 그 다름이 인정이 되지 않고 보듬어지지 않을 때.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엄한 짓으로 변형되어 되돌이킬 수 없어 이러다 죽을 수도, 서로 죽일 수도 있는 병이 되겠다 싶을 때. 정말 어찌할 수가 없어서, 이러지 않고는 서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도장을 찍으러 가는 것일 테다. 일단 살고는 봐야 하니까.


사실, 이혼의 본얼굴 속엔, 젠체하는 말로 푼 썰보다 훨씬 잔혹하고 끔찍한 학대가 있었을 것이다. 정서적 육체적 학대. 드라마라는 화장기를 벗겨낸, 삶의 맨얼굴을 본 많은 이들에겐, 불편하고 가슴 아파서, 차마 볼 수 없는 드라마일 것이다.


드라마는 삶을 반영한다지만, 삶과 거리가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면에선, 삶이 아프고 너무 자극적이라,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어이없는 남의 이야기로 생각을 축소하고 조작하여, 퍼퍼 웃으며 이 시기를 뚫고 가고픈 것이, 가슴에 피멍든 이들의 공통된 심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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