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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May 21. 2020

성당 가는 길

[스물 아니고 마흔] 세 번째 이야기

어린 시절 나는 성당 주일학교에 다녔다. 군 단위 마을에서 소도시로 전학을 간 후 친구가 많지 않았는데 버스를 타야 하는 '성당 가는 길(마을버스 구간 정도였을 것이다)'을 함께 하며, 동네 친구가 여럿 생겼다.


토요일 오후면 단독주택에 살았던 친구네에서 함께 점심 먹고 놀다가 버스정류장으로 신나게 달려가던 길이 생각난다. 이제 막 주택단지가 조성되며 타지인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하던 동네엔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공사장이었을 정도였다. 군데군데 널린 철골들을 요리조리 헤치며 먼지 수북한 길 한편에 핀 들꽃을 꺾어가며, 나는 성당에 갔다.


성당에 들어서면 앞마당엔 꽃에 둘러싸인 성모상이 있다. 당신 집을 찾은 손님처럼 공손히 인사를 한다. 정말로 날 보고 계시나, 하는 의구심에 얼굴 표정을 자세히 본다. 어딘지 미소 짓는 입매지만 눈동자는 땅을 향하고 있다. 눈을 마주칠 수 없어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지도 읽히지 않는다. 뭔가 슬픔을 안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앞에서 까불고 장난쳐선 안될 것 같은 맘이 든다.


성전문을 열면 오래된 나무향과 온몸을 관통하는 시원한 공기가 가득하다. 고요한데 꽉 차있는 무언가로 압도되는 느낌은 단지 기분 때문인지. 대형 십자가보다 제대 오른쪽 붉은 불빛에 먼저 눈이 간다. 언젠가 신부님이 저 불빛이 예수님의 심장이라며, 그래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탓이다(기억이 정확하진 않다). 정말일까. 예수님이 저기 계시다고?


어린 나는 한동안 그 불빛이 정말로 꺼지지 않는지, 매의 눈으로 관찰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불빛이 꺼질까 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 말이 거짓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성당 관리인이 실수로 전기코드를 빼거나 그 안에 든 촛불이 꺼진 줄도 모르고 있으면 어쩌나, 그런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나. 꺼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 그곳에 정말 신이 계셨으면 하는 간절함의 다른 얼굴이었을지 모른다. 그 불빛이 진짜 예수님이기를, 기도했을지도.


불빛은 성령을 형상화한 것일까. 아직도 그 성령의 의미를 나는 헤아릴 수 없다. 성당 가는 길, 성당에서의 일상... 그곳에서 지낸 유년의 기억은 내가 가진 믿음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가슴속에 깊이 박혀 있다. 마당, 뒤뜰, 사제관, 성전 안팎 구석구석에 친구들의 얼굴이 봄꽃처럼 퍼져 있다. 배시시 웃으면 실눈이 되던 까무잡잡한 신부님 먼 곳에서 손을 흔드는 그곳에, 내 유년은 숨 쉬고 있다.


그 후 스물이 넘고 마흔에 이를 때까지 나는 꽤 긴 세월 동안 성당을 찾지 않았다. 대륙과 대양 너머의 나라로 국내 주요 관공서와 도심 한복판의 시위 현장으로, 삶은 기대한 것보다 날로 커지고 두터워졌지만 웬일인지 나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하찮아졌다. 여기저기 가시처럼 찔렸지만 누가 왜 어떻게 찌르고 있는지는 분간할 수가 없었다. 더 잘하고 더 근사해 보이고 싶은 내가 초라하게 서있었다.


해가 고 달이 울어 소중한 사람이 죽고 서, 나는 이십 년 만에 성당에 갔다. 하느님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죽은 사람에게 전할 말이 있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어서였다. 허망한 땅 속에 재가 된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춥고 어두운 땅에 그를 홀로 두고 고 싶지 않았다.


밝은 곳에, 사람이 많이 오는 곳에, 착한 사람들이 착한 말을 하는 곳에, 아버지의 영이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꺼지지 않는 불빛과 함께, 아버지의 영이 머물기를 바랐다. 언젠가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성당 안의 붉은 빛에 아버지가 함께 있길 기도하고 싶었다. 그 빛이 눈에 보이든 그렇지 않든 이제는 중요치 않다. 살았던 아버지의 육신이 더는 보이지 않아도, 죽은 아버지의 영이 내 삶에 함께 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성찬 전례문 제2양식)




영화 <저 산 너머>. 고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담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갔을 저 산 너머에,

내 아버지도 함께 갔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운 아버지를 만나러 성당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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