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된 냉이 철학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 계절, 이 겨울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유자차가 지나가고 나면 냉이가 온다. 시골 출신의 친정엄마는 나물 반찬을 좋아했고 그러므로 자주 밥상에 올라왔다. 콩나물, 고사리는 물론이고 시금치, 냉이, 달래, 고추찜, 고들빼기, 가지나물뿐 아니라 이름도 모르던 들풀 같은 나물들은 밥상에서도 사계를 담고 있었다. 그중에 냉이 나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물 중 하나였는데 생긴 모양도 괴상하고 뿌리까지 함께 먹어야 하며, 그 씁쓸한 향은 ‘완전히 어른의 맛’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혼자서 남매를 보살피는 일과 가장으로서 일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때 마침 외할머니께서 외삼촌 그러니까 당신의 아들과 합가 하는 문제로 외숙모에게 푸대접을 받고 ‘고부간의 갈등’으로 전쟁이 발발했다. 나의 엄마는 당신의 엄마에게
“엄마, 눈치 보지 말고 우리 집에 와있어라, 남이랑 홍이 밥도 좀 챙겨주고, 내 밥도 해주고, 사위도 없는데 편하게 있어라.”
대장부 같은 말로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다. 외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은 그래도 7-8년 남짓이었지만 외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고 같이 자고,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되었을 때 그래도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사랑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노인대학 한글반에서 한글을 몇 년간 배우고 외손자 친손자 합이 15명의 손자녀들 중에 장손도 제치고, 첫 손주도 제치고, 유일하게 할머니의 전화번호 수첩에 ‘김경남이’라고 적어 놓은 손글씨에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정도면 내가 필요했던 부모의 부재도, 아들 부부에게 상처받은 당신의 어떤 마음도 우리는 서로 감싸 안으며 살았던 것 같다.
아직 땅이 언 3월 초입이었다.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평생을 살아왔던 마을 언저리, 선산에 묻고 돌아오던 날. 전날 미리 주문해 놓은 시골 동네 초라한 밥집에서 장례식에 참여한 가족, 친지들과 먹었던 정식. 그중에 냉이된장국. 그 쌉싸름하면서도 아주 슬픈 그리고 향긋한 봄 내음 같은 냉이의 향. 냉이된장국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 냄새가 났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난 냉이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느끼게 했다.
잊을 수 없는 맛.
그리고 영원히 적응할 수 없는 맛.
조금 슬픈 맛.
그동안 엄두가 나지 않았던 맛.
그 맛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시장에 들러 냉이 한 소쿠리를 샀다. 찬물에 담가 놓고 인터넷에서 찾은 손질 방법대로 뿌리를 칼로 살살 긁어내고 잔뿌리를 다듬는다. 냉이를 다듬다 보니 이렇게 예쁘고 향긋한 식재료가 있을까 싶다. 아마도 스물다섯의 나와 마흔 살의 나는 좀 달라졌을 것이다. 냉이는 우리네 삶과도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생에 전환기를 맞은 나에게 냉이가 이렇게 애처로운 것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품고 있어서일까, 나의 취향이 변해서일까.
냉이는 어떤 환경에서도 강인하게 자란다. 냉이는 척박한 땅, 길가, 논밭 어디에서나 자라난다. 따로 보살펴주지 않아도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봄이 오면 싱그러운 잎을 피운다. 사실 요즘은 수요에 따라 냉이밭을 만들기도 하지만, 노지에서 땅의 힘을 받고 자라나는 채소는 숨겨진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남해에서 시금치와 마늘을 키우며 알아낸 철학인데 겨울을 겪어야만 단단한 뿌리를 가질 수 있으며, 그 인내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반드시 봄은 온다는 것. 척박한 땅에서도 스스로 버티고 성장하는 모습이 나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냉이 이렇게 슬픈 채소였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실을 다진 냉이는 이파리부터 뿌리까지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채소 중 하나이다. 땅속에서 보이지 않게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바닥에 딱 붙은 이파리 때문에 거친 바람에도 쉽게 뽑히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싹을 내고 깊은 곳으로 뿌리를 내려 때를 기다린다. 냉이는 화려한 꽃을 피우지도, 크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지도 않는다. 서두르지도, 조급해하지도 않고 자신의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삶에도 적절한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급해하지 말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언젠가 냉이꽃처럼 작더라도 바람에 몸을 맡겨 흔들리는 고고한 하얀 꽃을 피우는 순간이 올 것이다. 냉이 꽃말은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라고 한다. 겨울을 이겨내고 겨우 만난 봄에 당신께 모든 것을 드리는 마음. 냉이는 단순한 봄나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강인함, 겸손함, 기다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 담겨 있다.
그런 냉이 나물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냄새가 난다. 외할머니와 같이 있지 않지만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때는 하지 못했던 냉이 요리를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이가 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치열했던, 젊고 서툰 날들을 지나고 나니 이제야 조금 성숙해져서 ‘완전히 어른의 맛’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묻어나는 약간의 그리움. 엄마의 엄마가 딸에게 전해주었던 것처럼, 마흔 살이나 되어서야 겨우 궁금해진 외할머니 레시피. 이 모든 것을 마음에 담아 전화를 걸었다.
“엄마, 그 냉이 나물 무침 어떻게 하는 거야? 그거 있잖아 왜 가루 묻은 거,”
1. 냉이는 뿌리를 칼로 긁어 껍질을 벗기고, 잔뿌리와 무른 잎은 다듬는다.
2. 찬물에 조물조물 씻어 채반에 거르고 날콩가루를 듬뿍 묻혀 온기가 오른 찜기에 살짝 쪄낸다.
3. 한 김 식힌 냉이에 국간장, 맛간장, 간 마늘 조금, 멸치액젓 조금, 참기름, 깨를 갈아 넣어 취향에 따라 조물조물 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