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요가.
요즈음 내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바야흐로 돌밥의 시즌.
엄마들이 몹시도 두려워한다는 아이들 방학 기간이다.
그나마 우리 집엔 제법 자란 십 대 아이 한 명뿐이니 이런 불평을 대놓고 할 처지도 못되지만 두 달을 내리 쉬는 길고 긴 겨울 방학은 이제 겨우 절반 즈음 지났을 뿐이고, 이번 방학 수학만큼이나 중요한 목표가 식사일 정도로 평소 먹는 양이 적고 키가 작은 아이를 키우다 보니 밥에 관해 누구보다 진지하다.
그런데 꽤 오랫동안 이 밥이 문제였다.
이 밥만 생각하면 괴로웠고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다. 친정엄마를 밥숟갈 들고 쫓아다니게 만들 정도로 원래 먹는 덴 관심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퇴근 후 인테리어 하듯 가끔 요리를 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니 달랐다. 아이 키가 작은 게 영양분이 부족해선 아닌지 신경 쓰였다. 아이의 아토피가 혹시 인스턴트나 간식을 너무 많이 먹여 그런 건 아닌지 괴로웠다. 내가 아이의 인생에 이렇게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무서웠다.
그 막중한 책임감을 회피할 수 없어 열심히 밥 지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즐겁진 않았다. 하루 종일 메뉴 고민만 하고 있는 데 자괴감이 들었고 시간이 아까웠다.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해 결과물도 초라했다. 한국 상차림은 한 두 개 밑반찬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으니까. 요령을 피운다고 한꺼번에 넉넉히 만들어 두었다 냉장고에 들어갔던 음식은 아무래도 맛이 떨어지고 입 짧은 아이는 그 반찬에 다시 손을 대지 않았다.
끊임없이 냉장고를 채우고 다시 절반 즈음이 썩어나가고 살아남아 식탁 위에 올랐던 나머지도 다시 반 즈음은 끝내 버려졌다. 혼자 있거나 주말이 되면 주방을 닫고 해방감에 딱히 맛있지도 않은 배달 음식을 시켜 다 남기고 버리는 실패들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어쩐지 고요하다. 하루 세끼 고민을 하는 상황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냉장고는 늘 적당히 채워져 있고 대부분 버리지 않고 매 끼 약간 다른 형태로 상 위에 올라간다. 먹고 치우고 다시 메뉴 고민을 하는 일이 전만큼 부담스럽거나 괴롭지 않다.
손도 좀 빨라지고 아이가 자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요가 덕분이다.
수련과 밥 짓는 일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둘 다 습관처럼 매일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여간해선 티가 잘 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묵묵히 해야 한다. 너무 무리해서 스스로 방전되지 말아야 하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불평불만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날 해야할 일을 하는 편이 현명하다.
물론 밥을 꼭 직접 해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다. 원하지 않으면 사 먹거나 굶어도 된다. 하지만 난 이제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수련이든 집 밥이든 시간과 정성이 들일 가치가 있다는 걸 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그 미세한 차이를 아니까. 차곡차곡 쌓인 이 양분들이 다시 내일을 살아갈 용기와 힘을 준다는 걸 믿으니까 오늘도 내일도 기쁘게 수련하고 정성껏 밥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